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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거창 사선대(四仙臺)

노촌魯村 2014. 9. 22. 00:30

 

 

거창 사선대(四仙臺) :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월성리(월성계곡)

거창에서 30㎞거리에 있는 사선대는 옛 원학동 산수의 백미다. 월성에서 황점가는 중간 도로변에서 사선담을 굽어보는 모습은 마치 자연이 창출해 낸 삼층석탑 같다. 석탑의 아래 기단에 해당되는 곳에는 전서체로 사선대라 새겨 있고 곁에 경상감사 김양순의 이름이 새겨 있다. 병자호란을 피해 월성계곡에서 마음을 씻었던 동춘당 송준길 선생이 은거한 곳이라 하여 「송기」 또는 「송대」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1909년 고종의 5남 의친왕 강이 나라가 어지러울 때 전 승지 정태균을 찾아와 머물면서 북상 위천 지방의 우국청년들과 만나 사선대 일대를 뒷날 의병의 근거지로 삼으려고 훈련장과 병사를 만들기 위하여 땅을 사들이게 하다가 들켜 서울로 끌려 갔다. 이런 까닭으로 이 대를 왕실의 선원을 기린다는 뜻이 담긴 사선대(思璿臺)라 부른 것을 대암 포갬이 4층이고 돌 위에서 신선이 바둑을 두었다는 전설로 사선대(四仙臺)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맨 위 바위 모양은 마치 거북 같기도 하고 봉황새 모양 같기도 한데, 그 머리 부분이 남덕유 쪽으로 바라보고 있다. 사선대는 의친왕이 이곳을 찾아 선원을 생각하기 이전에 1905년에서 1910년까지 나라 위해 일본에 대항했던 거창 월성의병들의 독립혼이 잠긴 곳이며 1950년대 덕유산에 준동하던 빨치산들 가운데 가장 세력이 거세었던 거창군당 빨치산 김명식 부대를 섬멸하던 곳이다. 이 보다 훨씬 더 위로 역사를 거슬러 오르면 나제통도(羅濟通道)로서 숱한 사연을 지녔으리라. 백제 서동의 선화공주를 데리고 이곳을 지났을 것 같은 사선대는 옛 화원들의 눈에도 기이하고 보배로웠던 것은 사실이다.

1770년경 진주 근처의 소촌찰방을 지낸 진재 김윤겸 선생이 남긴 진경산수화첩 가운데 수묵담채화로 그려진 송대(사선대)가 동아대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또, 18세기 화가 김희겸(김희성)선생이 그린 송대(사선대) 담채 수묵도가 도쿄 국립박물관에 남아 있다. 이 그림은 95년 6월 8일자 조선일보 제1면 좌측 상단에 칼라사진으로 소개 되었는데 안음(安陰) 송대(松臺)라는 제목의 그림에 표암 강세황이 역기심(亦奇甚:또한 매우 기이하다)이라는 짧은 평을 쓴 31×27㎝가량의 수묵담채화였다.(출처:거창군청)

  

1995년 6월 8일자 조선일보 제1면 좌측 상단에 칼라사진으로 소개 되었는데 안음(安陰) 송대(松臺)라는 제목의 그림에 표암 강세황이 역기심(亦奇甚:또한 매우 기이하다)이라는 짧은 평을 쓴 31×27㎝가량의 수묵담채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