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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거창 가섭암지 마애여래삼존입상(居昌 迦葉庵址 磨崖如來三尊立像)

노촌魯村 2014. 9. 21. 00:30

 

 

 

위천면 상천리 금원산(1353m) 지장암골 어귀의 문바위는 가섭사 일주문에 해당하는 바위이다. 절을 수호하는 신장바위인 것이다. 바위 크기를 고층아파트에 비교한다면 아파트 3층 높이쯤 된다. 국내에서는 단독바위로서 제일 큰 바위로 알려져 있다. 바위의 모양새도 아름답고 위엄스러워 가섭사를 지키는 「호신암」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금원산의 한 가지가 문바위 위쪽으로 흘러 내리면서 용머리로 내어 밀고 있어 용머리 앞의 「여의주」라고 부르기도 한다. 바위 밑에는 바위가 서면서 자연적으로 큰 혈(굴)이 생겼는데 액을 면하고 복을 비는 토속신앙의 기도처로 오래도록 자리해 왔다. 이로 인해 붙여진 이름이 「기도암」이다.

바위에는 「달암 이선생 순절동」이라 새겨져 있다. 이는 고려말 판서 달암 이원달 선생과 그 사위 유환 선생이 고려가 조선에 망하자 두나라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는 뜻을 가져 이곳에 숨어들어 여생을 마쳤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고려 충신들이 강원도 정선 땅에 들어가 「아라리」를 이루듯, 달암선생은 그의 부인과 사위를 데리고 금원산으로 들어가 「두문동」을 이루었다. 문바위는 두문동 어귀에 있는 바위라 하여 「두문암」이라 불렀고 두문동 주인공이 된 달암선생과 그의 부인 김씨를 기려 「금달암」이라고도 한다. 고려 불교 면목을 보여주고 있는 보물 530호 가섭암지 마애삼존불이 돋보이는 것은 이 문바위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바위를 「가섭바위」라고도 한다.

비가 올 것 같으면 바위 굴 속에 물방울이 맺혀 비내림을 미리 알려준다 하여 문바위를 「지우암」이라 부르기도 했다. 지우암은 가섭사 앞의 펑퍼짐한 넓은 반석이다. 옛날 가뭄이 들때면 기우제를 올렸던 곳이다. 문바위는 앞에서 열거했듯이 수천년 세월동안 「호신암」, 「용의 여의주」, 「기도암」, 「두문암」, 「금달암」, 「지우암」, 「가섭암」 등 많은 이름들을 걸쳤다. 이 모든 이름들은 조선에서 고려와 관계지어 빚어진 이름들이고 민중속에서 얻어진 이름들이다. 어쩌면 마애삼존불이 새겨진 바위굴이 여성을 상징한 것이라면 문바위는 남성적 상징의 바위가 아닐까 상상의 나래를 펴본다.(출처:거창군청)

 

 

 

 

 

거창 가섭암지 마애여래삼존입상(居昌 迦葉庵址 磨崖如來三尊立像. 보물 제530호. 경남 거창군 위천면 상천리 산6-2번지)

바위면 전체를 배(舟) 모양으로 파서 몸에서 나오는 빛을 형상화한 광배(光背)를 만들고 그 안에 삼존불(三尊佛) 입상을 얕게 새기고 있다.

중앙의 본존불은 얼굴이 비교적 넙적하며, 얼굴에 비하여 작은 눈·코·입, 밋밋하고 긴 귀 등에서 둔중하고 토속적인 인상을 풍긴다. 신체의 표현은 각지게 처리된 어깨, 굴곡 없이 차분한 가슴, 막대 같은 다리와 좌우로 벌린 발 등에서 고려시대의 형식화된 면이 보인다. 좌·우 협시보살은 본존불과 거의 같은 형식으로 조각되었지만 어깨의 표현이 본존불보다는 부드러운 곡선을 하고 있다.

끝이 날카로워진 연꽃무늬 대좌(臺座)와 새의 날개깃처럼 좌우로 뻗친 옷자락 등은 삼국시대의 양식과 비슷하지만, 형식화되고 도식적인 요소가 보인다. 결국 이 불상은 삼국시대 불상의 양식을 계승하면서도 고려적인 요소가 반영된 마애불상임을 알 수 있다. (출처: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