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지혜와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마음의 눈으로 보고자, 눈에 보이는 것은 물론 보이지 않는 것까지 기록하고자합니다.

기타/각종정보

‘용인 심곡서원’ 사적 지정 예고

노촌魯村 2014. 11. 25. 18:19

 

‘용인 심곡서원’ 사적 지정 예고

 

문화재청(청장 나선화)은 경기도 용인시에 있는 ‘용인 심곡서원’(龍仁 深谷書院)을 국가지정문화재인 사적으로 지정 예고한다.

  

‘용인 심곡서원’은 조선 중종 때 사림파의 영수였던 정암 조광조(1482~1519년)를 주향(主享)으로 하는 서원이다. 용인은 조광조가 부친의 시묘(侍墓)살이를 한 곳이자 조광조의 묘소가 있는 지역으로, 1605년 그의 묘소 인근에 사우(祠宇)가 조성되었다. 이 사우가 조선 효종 원년(1649)에 ‘심곡(深谷)’이라는 이름과 현판, 토지, 노비 등을 받으면서, 사우를 현 위치로 옮기고 강당(講堂) 등을 중창한 것이 현재의 심곡서원이다.

주향(主享): 서원에 신위를 봉안할 때 가운데에 첫 번째로 모시는 것을 말하며, 두 번째 이후로 봉안하는 것은 배향이라고 함

※ 사우(祠宇): 선조(先祖) 또는 선현의 신주(神主)나 영정(影幀)을 모셔 두고 연 수차례에 걸쳐 제향을 행하는 장소

 

강당이 전면에 위치하고, 사우가 뒤쪽에 배치된 전학후묘(前學後廟) 형식을 춘 심곡서원은 조선 시대 서원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심곡서원은 1871년 흥선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 시 조광조를 모신 서원 중 유일하게 훼손되지 않고, 현재까지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어 가치가 있다.

※ 전학후묘(前學後廟): 강학 공간이 전면에, 제향 공간이 후면에 배치된 구조

 

사우와 강당은 각각 1636년과 1657년 작성된 상량문(上樑文, 건물을 새로 짓거나 고친 내력을 적은 글)이 최근 발견되었으며, 우암 송시열이 지은 심곡서원 강당기(講堂記, 강당 건축을 기념하여 지은 기문 / 1673년)를 비롯하여 ▲ 심곡서원 학규(學規, 서원 등에서 독자적으로 정하여 지키고자 한 규칙 / 1747년) ▲ 숙종 대왕 어제(御製, 임금이 지은 글 / 1740년) 등이 전하고 있어 심곡서원의 역사와 내력을 알 수 있다.

 

아울러 경내에는 조광조가 직접 심은 것으로 알려진 수령 500여 년의 느티무가 남아 있어 그 의미를 더하며, 서원 인근에 있는 ‘조광조 묘 및 신도비’(경기도 기념물 제169호)를 통해 심곡서원의 가치와 위상을 확인할 수 있다.

 

문화재청은 30일간의 예고 기간을 통해 의견을 수렴한 후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지정 여부를 최종적으로 확정할 예정이다.

 

사적 지정 예고 개요

 

□ 지정명칭: 용인 심곡서원(龍仁 深谷書院)

□ 지정종별: 사적

□ 소 재 지: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심곡로 16-9 등

□ 지정면적: 7,862

- 문화재구역 1,071㎡, 보호구역 6,791㎡

□ 관리단체: 심곡서원

□ 지정가치

조선 중종 때 사림파의 영수였던 정암 조광조(1482~1519년)를 주향(主享)으로 하는 심곡서원은 강당이 전면에 위치하고 사우가쪽에 배치된 조선 시대 서원의 전형적인 전학후묘(前學後廟) 형식을 갖추고 있으며, 1871년 흥선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 시 조광조를 모신 서원 중 유일하게 훼손되지 않고 현재까지 존속되고 있음

최근 이루어진 사우와 강당의 중수 시, 각각 1636년과 1657년에 성된 상량문(上樑文)이 발견되었으며, 심곡서원 강당기(1673년, 송시열)와 심곡서원 학규(1747년, 이재), 숙종대왕 어제(1740년, 민진원) 등이 전하고 있어 심곡서원의 역사와 내력을 알 수 있음

ㅇ 경내에는 조광조가 직접 심은 것으로 알려진 수령 500여 년의 느티나무가 남아 있으며, 정암집 등 관련 고문서가 장서각에 보관되어 있고, 현재 매년 춘추향사와 매월 삭망(朔望) 분향 의식을 거행하고 있음. 아울러, 서원 인근에 있는 ‘조광조 묘 및 신도비’(경기도 기념물 제169호)를 통해 심곡서원의 가치와 위상을 확인할 수 있음

 

<글.사진 출처 :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