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지혜와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마음의 눈으로 보고자, 눈에 보이는 것은 물론 보이지 않는 것까지 기록하고자합니다.

전남

담양 명옥헌 원림(潭陽 鳴玉軒 苑林)

노촌魯村 2015. 4. 2. 05:48

 






담양 명옥헌 원림(潭陽 鳴玉軒 苑林.명승  제58호.전남 담양군 고서면 후산길 103, 등 (산덕리))

조선 중기 명곡(明谷) 오희도가 자연을 벗 삼아 살던 곳으로 그의 아들 오이정이 선친의 뒤를 이어 이곳에 은둔하면서 자연경관이 좋은 도장곡에 정자를 짓고, 앞뒤로 네모난 연못을 파서 주변에 적송, 배롱나무 등을 심어 가꾼 정원이다.
시냇물이 흘러 한 연못을 채우고 다시 그 물이 아래의 연못으로 흘러가는데 물 흐르는 소리가 옥이 부딪히는 것만 같다고 하여 연못 앞에 세워진 정자 이름을 명옥헌(鳴玉軒)이라고 한다.
주위의 산수 경관이 연못에 비치는 모습을 명옥헌에서 내려다보며 경관을 즐길 수 있도록 조성하여 자연에 순응한 조상들의 지혜를 잘 반영한 전통원림으로 자연경관이 뛰어난 경승지이다. (출처:문화재청)

 

오희도(吳希道, 1583-1623). 자(字)는 득원(得原), 호(號)는 명곡(明谷). 1602년 사마시에 합격하고 1623년(인조 1년) 알성문과(謁聖文科)에 합격하였다. 예문관(藝文館)의 관원으로 천거되었고, 기주관(記注官)을 대신하여 어전에서 사실을 기록하는 검열(檢閱)에 제수되었으나 곧 사망하였다.
오희도(吳希道)의 넷째아들 오이정(吳以井, 1619-1655)이 자연경관이 좋은 도장곡(道藏谷)에 헌(軒)을 짓고 이를 명옥헌(鳴玉軒)이라 이름 지었다. 오이정은 스스로 호(號를) 장계(藏溪)라 한바 장계정(藏溪亭)이란 이름은 여기에서 유래한다. 그 후 100여 년이 지나 정자가 퇴락함에 따라 후손 오대경(吳大經)이 다시 중수하였다.
명옥헌(鳴玉軒)은 정자 앞에 연못이 파여 있고 둘레에 적송(赤松) 및 자미나무 등이 심어져 뛰어난 조경으로 알려졌으며, 장계정(藏溪亭)이란 현판이 걸려 있다. 또는 뒤편에 도장사(道藏祠)라는 사당에 있으므로, 도장정(道藏亭)이라고도 부른다.
명옥헌원림은 주변의 자연경관을 차경(借景)으로 도입한 정사(亭舍)중심의 자연순응적인 전통정원양식이지만 전(前)과 후(後)의 조선시대 전통적인 ’방지중도형(方池中島形)’의 지당부(池塘部)를 도입하였다. 전(前)의 지당부는 명옥헌의 북쪽에 위치하며 그 고저차는 약 6.3m이다. 동서너비 약 20m, 남북길이 약 40m 크기를 갖는 방지의 중심부는 원형의 섬이 있으며 주위에 약 20주의 자미나무(배롱나무.crape myrtle 붉은빛을 띠는 수피 때문에 나무백일홍, 백일홍나무, 자미라고 부르기도 한다)가 심어져 있는데 수령은 100여 년 정도이다. 명옥헌의 동쪽에 자리 잡은 지당(池塘)은 동서 16m, 남북 11m 크기이다. 이 지당은 1979년 여름에 조사 발굴된 것으로 남에서 북으로 흐르는 계류의 물을 끌어 채운 것으로 북과 서쪽에 자미나무가 심어져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의 정자로 실의 구성은 외부로 툇간을 돌리고 그 중앙에 실을 둔 중앙실형(中央室形)이다. 방에는 구들을 두었고 평천장을 하였다. 마루의 외곽에는 평난간을 두었다.(출처:담양군청) 

  

 

 




 

 

 

 

 

 

 

 

 

 

 

 

 

 

 

 

 

 




바위에 새긴 鳴玉軒 癸丑 (명옥헌 계축)

 

배롱나무 꽃 필 때의 명옥헌(사진 출처 : 문화재청)

 

 





2017.7.26 명옥헌










전남 담양군 고서면 산덕리(명옥헌이 있는 마을) 입구의 저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