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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담양 식영정 일원(潭陽 息影亭 一圓)

노촌魯村 2015. 4. 3. 00:30

 





 


 

 

 

담양 식영정 일원(潭陽 息影亭 一圓.명승  제57호.전남 담양군 남면 가사문학로 859, 등 (지곡리))

조선 명종 때 서하당(棲霞堂) 김성원이 그의 장인 석천(石川) 임억령을 위해 지은 정자로, 이곳에서 송강(松江) 정철이 성산별곡, 식영정 20영 등 한시와 가사 및 단가 등을 남겨 송강 문학의 산실이 되었고, 우리나라 고전문학 발전의 기틀을 마련한 곳으로 역사·문화적 가치가 있는 곳이다.
식영정(息影亭)은 주변 무등산과 광주호 등이 있어 자연환경과 조화미가 뛰어나고 주변의 소나무 고목과 송림, 배롱나무 등이 있어 아름다운 경승지이다.(출처 : 문화재청)

 

 정면 2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특이한 것은 한쪽 귀퉁이로 방을 몰아붙이고 전면과 측면을 마루로 두고 있다.
명종 15년(1560) 서하당 김성원(棲霞堂 金成遠, 1525-1597)이 창건하여 장인(丈人)인 석천 임억령(石川 林憶齡, 1496-1568)에게 증여한 것이다. 식영정 바로 곁에 본인의 호를 서하당(棲霞堂)이란 또 다른 정자를 지었다고 하며 최근 복원하였다. 『서하당유고(棲霞堂遺稿)』행장(行狀)을 보면「庚申公三十六歲 築棲霞堂于昌平之星山 爲終老計……」란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서하당과 식영정이 1560년에 지어졌음을 알 수 있다. 제봉 고경명(齊峰 高敬命, 1533-1592), 송강 정철(松江 鄭澈, 1536-1593)등과 함께 ’식영정 사선(息影亭 四仙)’으로 부르기도 한다.
서하당 김성원은 송강의 처외재당숙으로 송강보다 11년이나 연상이었으나 송강이 성산에 와 있을 때 같이 환벽당(環壁堂)에서 공부하던 동문이었다. 송강 정철은 이곳 식영정과 환벽당, 송강정(松江亭) 등 성산 일대의 미려한 자연경관을 벗삼으며『성산별곡』을 창작해냈던 것이다. 또한, 송강은 이곳을 무대로 하여 면앙정 송순(俛仰亭 宋純), 하서 김인후(河西 金仁厚), 고봉 기대승(高峰 奇大承) 등 당대의 명유들을 스승으로 삼았으며 제봉 고경명, 옥봉 백광훈(玉峰 百光勳), 귀봉 송익필(歸峰 宋翼弼) 등과 교우하면서 시문을 익혔다. 이곳은 식영정 외에도 풍광이 수려하여 유상지(遊賞地)로도 이름난 곳이 많은데 자미탄(紫薇灘), 노자암, 방초주(芳草州), 조대(釣臺), 부용당(芙蓉堂), 서석대(瑞石臺) 등이 있었으나 광주호가 생기면서 일부는 물에 잠기고 현재는 부용당만이 최근 새로 지었다.
식영정 옆에는 1973년 송강집(松江集)의 목판을 보존하기 위한 장서각(藏書閣)을 건립하였으며, 1972년에는 부속건물로 부용당, 성산별곡(星山別曲) 시비(詩碑)가 건립되어 있다.(출처 : 담양군청)

식영정(息影亭) : 식영정(息影亭) 이름은 임억령(林億齡)이 지었는데 그림자가 쉬고 있는 정자라는 뜻이다. 

식영정(息影亭) 이름은 장자(莊子)의 제물편에 있는 그림자의 예를 들었다고 한다.

그림자는 욕망을 의미하며 세속을 벗어나지 않고서는 이를 떨쳐버릴 수 없다는 뜻이다.” 

()-장주가 말하기를

昔有畏影者(석유외영자)-옛날 그림자를 두려워하는 자가 있었다.

走日下其走愈急(주일하기주유급)-그는 햇빛 아래에서 빠르게 도망을 가는데

而影終不息(이영종부식)-그림자도 끝까지 쉬지 않고 따라 왔다.

及就樹陰下(급취수음하)-그가 나무 그림자 아래에 들었더니

影忽不見(영홀부견)-그림자는 문득 보이지 않았다.




 


 


   

 

 

 

 

 

 

 

 

 

 

 

 

 

 

 

 

 

 

 식영정 옆의 소나무

 

 

성산별곡(星山別曲) 시비(詩碑)


 





 

 


    

 

부용당(芙蓉堂)

 




 

서하당(棲霞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