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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청양 상의사(靑陽 尙義祠)-채제공선생영정(蔡濟恭先生影幀)-

노촌魯村 2015. 5. 2. 12:04

 

청양 상의사(靑陽 尙義祠)

 

 

 

 

 

 

 

 

 

 

채제공 초상 일괄-시복본(蔡濟恭 肖像 一括-時服本.보물  제1477-1호.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창룡대로 21-0 (매향동) 수원화성박물관) )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사도세자의 신원 등 자기 정파의 주장을 충실히 지키면서 정조의 탕평책을 추진한 핵심적 인물인 채제공의 초상화이다.
수원시 소장 <시복본(1792년작)>은 채제공 73세상으로 사모에 관대를 한 옅은 분홍색의 관복 차림에 손부채와 향낭을 들고 화문석에 편하게 앉은 전신좌상이다. 우측 상단에 ‘聖上 十五年 辛亥(1791) 御眞圖寫後 承 命摸像 內入 以其餘本 明年 壬子(1792) 粧’이라고 쓰여 있고, 그 아래 ‘畵者 李命基’라고 밝혀 놓았다. 이어서 우측 상단에 채제공이 직접 쓴 자찬문이 있다. 시의 내용대로 정조로부터 부채와 향낭을 선물 받은 기념을 표시하기 위해서인 듯 손을 노출시켜 부채와 향낭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연출되었다. 수원시에 함께 소장되어 있는 유지 초본 3점 또한 중요한 자료이며 향낭도 함께 남아 있다(출처 : 문화재청)

 

채제공 초상 일괄 - 금관조복본(蔡濟恭 肖像 一括 - 金冠朝服本.보물  제1477-2호. 대전 동구)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사도세자의 신원 등 자기 정파의 주장을 충실히 지키면서 정조의 탕평책을 추진한 핵심적 인물인 채제공의 초상화이다.
<금관조복본(1784년작)>은 65세 때 초상으로 왼편에 채제공의 자찬문을 이정운(李鼎運 1743- ?)이 썼다. 서양화법을 따른 명암법을 적절히 구사하여 얼굴을 사실적으로 묘사했으며, 장식적인 금관조복을 금박, 선명한 채색, 명암법 등으로 화려하게 표현했다. 사실성과 장식성을 어우러지게 하여 조선 초상화의 뛰어난 수준을 잘 보여준다. 누가 그렸는지 밝혀져 있지 않으나 입체감이 두드러진 안면과 옷주름의 표현, 그리고 바닥의 화문석 표현기법으로 볼 때 이명기가 그렸을 것으로 추정된다.(출처 : 문화재청)

충청남도 청양군 화성면(化城面) 구재리에 있는 상의사에 봉안되어 있는 이 영정은 비단 바탕에 채색으로 그림 크기는 145×78.5㎝이다. 비단은 올이 약간 굵고 조직이 다소 성근 통견을 사용했다. 아교와 백반을 많이 섞어 반짝임이 많은 편이다. 그리고 정조대의 송식(宋式) 족자 표구이다. 현재 이 영정을 포함한 초상3점, 초본3점, 향낭1점, 함2점이 일괄로 보물 제1477호로 지정되어 있다

 

채제공 초상 일괄-흑단령포본(蔡濟恭 肖像 一括-黑團領袍本.보물  제1477-3호.대전 동구)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사도세자의 신원 등 자기 정파의 주장을 충실히 지키면서 정조의 탕평책을 추진한 핵심적 인물인 채제공의 초상화이다.
<흑단령포본>은 오사모에 쌍학흉배의 흑단령포를 입은 전신의좌상으로 본래 夫餘 道江影堂에 모셔져 있던 것이다. 그 안면의 기색으로 볼 때 부여본은 앞에 살펴본 73세상과 흡사하다. 안면과 옷주름의 입체감 표현, 투시도법에 의한 화문석과 족좌와 의자의 사선배치는 역시 이명기의 초상화법이다(출처 :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