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지혜와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마음의 눈으로 보고자, 눈에 보이는 것은 물론 보이지 않는 것까지 기록하고자합니다.

나라 밖(국외)/중국

중국 타이위안 면산(綿山) 개자추(介子推) 사당

노촌魯村 2015. 8. 22. 09:31

 

중국 타이위안 면산(綿山) : 중국 산서성엔 해발 2,000미터 높이에 길이 25km에 달하는 협곡을 따라 불교와 도교 사원들이 절벽 동굴에 절묘하게 붙어 있는 공중도시 면산이 볼거리다. 우리나라의 전통 명절 중 하나인 한식이 유래된 곳으로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충신 개자추(介子推)의 일화가 깃든 곳이다. 그런 개자추의 충심과 염원 때문인지 면산 내 깎아지는 듯한 절벽을 따라 염원을 담은 불교사원 운봉사(雲峰寺)와 도교 사원 대라궁(大羅宮), 그리고 고승의 시체 그대로 흙으로 덮은 14존 등신불이 있는 정과사(正果寺) 등이 좁은 협곡을 따라 조밀하게 세워져 있다.

 

 

淸明寒食之

 

개자추(介子推) 동상

 

 

우리 일행의 전세 버스 : 산서성에서 1대 뿐인 30인승 리무진

 

 

 

중국의 충신으로 유명한 개자추(介子推)와 그의 어머니를 모신 사당이다.
개자추(介子推)는 자신이 모시던 진(晋) 나라의 왕자 중이(中耳)가 권력의 암투를 피하여 19년간 망명생활을 하던 시기에 그와 함께 하던 충신 중의 한 명이다. 유랑기간 중 중이가 굶주림으로 죽을 지경에 이르자 자신의 넓적다리 살을 베어 중이에게 먹인다. 이른바 할고봉군(割股奉君)의 고사는 이렇게 탄생한다. 중이는 결국 살아남아 진나라에 복귀하여 왕위에 올라 춘추오패 중의 하나인 진문공(晋文公)이 되었다. 그러자 신하들이 다투어 자신의 공을 내세워 녹을 탐하려 하였고, 중이는 이를 수치스러워 하였다. 또한 진문공이 실시한 논공행상에서 개자추의 이름이 빠졌다. 이에 실망한 그는 벼슬할 뜻을 버리고 청빈한 삶을 꿈꾸며 홀어머니를 모시고 면산에 들어가 은거하게 되었다.
진문공은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개자추을 잊고 있었다는 알게 됐다. 뒤늦게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진문공은 면산으로 사람을 보내 개자추를 산에서 내려오도록 하였으나 개자추는 끝까지 내려오지 않았다. 이에 면산에 불을 지르면 어머니의 안위때문에라도 내려오겠거니 하는 예상으로 불을 질렀으나 개자추는 산을 내려오지 않고 홀어머니와 함께 나무를 껴 앉고 불타 죽어버렸다. 이에 진문공은 크게 슬퍼하였고, 그의 정절을 기려 개자추가 죽은 후 3일간 불을 금하고 찬 음식을 먹으며 그를 애도하였다고 한다. 이것이 청명절(清明節) 직전의 3일 동안 찬 음식만을 먹는 한식(寒湿)의 기원이 되었다. 중국의 절기 ‘한식’은 우리나라로 들어와 설날, 단오, 추석과 함께 4대 명절이 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