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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경산

경산 자인의 계정숲(慶山 慈仁의 桂亭숲).한장군(韓將軍)의 묘. 경산자인단오제(慶山慈仁端午祭)

노촌魯村 2016. 8. 20. 22:39




경산 자인의 계정숲(慶山 慈仁의 桂亭숲.경상북도 기념물 제123호.경북 경산시 자인면 서부리 68번지 외 12필지)

경산 자인의 계정(桂亭)숲은 구릉지에 남아있는 천연숲으로 경상북도는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보기 드문 자연숲이다.
현재 숲은 이팝나무가 주종을 이루며, 말채나무, 느티나무, 참느릅나무 등이 함께 자라고 있다. 계정숲 안에는 한장군의 묘와 사당, 한장군놀이 전수회관이 있고, 조선시대의 전통 관아인 자인현청의 본관이 보존되어 있다.
경산 자인의 계정숲은 과거 경산시 일대에 어떤 나무들이 있었는지를 말해 주는 자연유적지이며, 우리 조상들의 자연사랑과 보호의 사상을 엿볼 수 있는 숲이다. 또한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천연숲으로 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출처:문화재청)


이팝나무



한장군(韓將軍)의 묘

한장군(韓將軍)의 전설 : 한장군은 신라 혹은 고려시대 사람이라고만 전해올 뿐 확실한 연대는 알 길이 없고 이름도 모르지만 전설이 아닌 실존했던 인물로 고을의 수호신이다. 당시 왜가 도천산에 진을 치고 백성들을 괴롭히자 장군은 이를 해결할 방도를 마련하였다.

 도천산 밑 버들못 둑에서 장군은 여자로 가장하여 그의 누이와 함께 꽃관을 쓰고 춤을 추었다. 꽃관을 쓰고 춤을 추는 광대가 둘러서서 놀음을 벌리고 풍악을 울려 흥을 돋구고, 못에는 화려하게 꾸민 배를 띄웠다. 둘레에는 어느덧 구경꾼들이 몰려 들었고 춤과 가락은 한결 흥겨워졌다. 이것이 곧 지금까지 전해져 오고 있는 여원무이다.

 장군의 뜻대로 구경꾼 중에는 도천산에서 내려온 왜구의 무리도 섞여 있었다.

 왜병은 흥겨운 여원무에 정신을 잃고 구경을 하고 있었다. 이 때 장군은 미리 준비했던 칡으로 만든 그물로 얽어 한꺼번에 쳐서 없애고 또 칼로 찔러 죽였다. 아름다운 꽃춤의 주인공이 무서운 장군으로 바뀌었다. 무당과 구경꾼들의 손에도 모두 비수가 번쩍였다. 그물에 휘말린 왜구의 무리들은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차례로 쓰러져 갔다. 춤추던 이도 모두 한장군이 미리 배치해 두었던 무사들이었으며, 칡으로 만든 그물을 미리 깔아 두었던 것이다. 그들은 몰죽음을 당했고 못 물은 피로 물들었따.

 지금도 못뚝에는 한장군의 칼흔적을 지니고 있는 바윗돌이 있는데, 사람들은 이를 참왜석 또는 검흔석이라고 부른다. 한장군의 사당은 자인면 서부리와 원당리, 진량면 마곡리, 용성면 송림리에 있었다. 이 중 용성면 송림리의 경우 옛날 바구나무 숲에 한장군 사당이 있었으나 일제 말 기독교인들이 이를 철거하여, 지금은 돌무더기만 남아있다.

 한장군을 기념하는 한장군제와 여원무가 음력 단오날 단오행사와 함께 성대하게 매년 실시되어 왔으나 근래에 와서는 농번기 일손부족으로 격년제로 실시되고 있다.

 단오날 오전 8시가 되면 자인면 서부리 서림숲 한장군 사당에서 대제의 막이 오르고 제전집사에 의해 제사가 모셔진 뒤, 한장군놀이와 여원무, 팔광대놀이, 가장행렬, 씨름, 윷놀이, 농악놀이, 무녀굿, 노래자랑, 그네뛰기 등 다채로운 행사가 진행된다. 이날 모이는 관중은 수 만명을 넘어 자인고을은 온통 인파로 뒤덮이고 도천산 아래 버들못은 붉게 핏빛으로 물든 것처럼 보인다. (발췌 - 경산문화유적총람)




한장군놀이 전수회관




진충묘(경북 경산시 자인면 서부리 69)

임란 때 왜구가 到天山에 웅거하자 장군이 누이동생과 함께 여장을 하여 女圓舞를 추어 왜군들을 유인한 다음 왜적을 섬멸한 韓將軍의 충의를 사모하여 1917년에 자인면 서부리 계정숲에 건립한 사당이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의 맞배기와집인데, 내부는 通間으로 구성하였다. 기둥은 모두 圓柱를 사용하였는데, 기둥의 上部에는 三翼工으로 장식하였다. 처마는 홑처마이며, 지붕의 측면에는 風板을 설치하였다.(출처: 경산시청)

화관

여원무

도천산성에 기거하며 자인현 주민들을 괴롭히던 왜구들을 산 아래의 버들못(柳堤)으로 유인하기 위해 한장군이 그의 누이와 함께 꾸며낸 춤을 여원무라 한다. 읍지에 의병을 일으킨 하나의 수단으로 평가한 것을 보면 많은 인원이 동원된 독특한 놀이판이 었음을 알 수 있다.

한장군이 왜구를 유인할 때는 야생화로 높이 3m의 거대한 화관을 만들어 꼭대기를 연꽃으로 장식하고, 화관가에 오색 종이를 드리웠는데, 자인 단오제에서는 시작때부터 조화를 사용했다고 전한다. 한장군은 여장을 하고 그의 누이와 같이 각자의 화관을 들고 춤추었고, 주위에는 배우로 가장한 주민들이 잡희(雜戱)를 꾸몄는데, 이 화관무와 배우잡희가 현존되고 있는 여원무와 자인 팔광대의 전신이다.

놀이판을 구경하느라 왜구들이 넔이 빠졌을 때 한장군과 주민들이 칼로 쳐 섬멸하였다니 상세한 기록은 없어도 춤의 신기함과 흥의 정도는 가히 짐작할 만하다. 이 작전을 꾸민 한장군은 무(武)와 예(藝)를 겸비한 사람이며 여원무와 배우잡희는 한장군의 지략과 구민의 충정이 응집된 것이다.

특히, 한장군놀이 전, 여원무에 사용하는 여원화에는 접근하지 않았고, 이 놀이가 끝나는 파장에 가서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꽃송이를 따가기에 혈안이 된다고 한다. 이 꽃송이를 몸에 품고 가서 집에 두면 풍년, 제액, 치병 등의 효험이 있다는 믿음에서다. 결국 마지막에는 도리깨로 타작하여 여원화는 완전히 형식마저 없어진다는 것이다.

여원무는 제 10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1969)에서 국무총리상을 수상했다.(자료제공 : (사)경산자인단오제 보존회)


경산자인단오제(慶山慈仁端午祭.국가무형문화재  제44)

경산자인단오제는 경상북도 경산시 자인면에서 전승되고 있는 단오행사를 말한다. 자인마을의 전설에 의하면, 신라 때 혹은 고려 때 왜적이 침범하여 마을사람들을 괴롭히자, 한 장군이 꾀를 내어 여자로 변장하고 누이동생과 함께 화려한 꽃관을 쓰고 광대들의 풍악에 맞추어 춤을 추어 왜병들을 무찔렀다고 한다. 이후 한 장군이 죽은 다음 자인마을 주민들이 한 장군의 사당을 짓고 해마다 단오날이면 제사를 지내고 성대한 놀이를 즐겼다고 한다.
경산자인단오제는 제사와 가장행렬 여원무로 이어진다. 옛날에는 전쟁터까지 가서 여원무를 추고 사당에 올라가 제사를 지냈으나, 지금은 시장의 넓은 광장에 모여 한 장군 묘를 향해 행렬을 하는 데서 시작된다. 가장행렬의 순서는 동서남북과 중앙을 뜻하는 오방기가 맨 앞에 서고 농기, 여원화관, 무부들, 희광이, 여장동남, 군노 사령, 까치사령, 포군, 영장, 기생, 중군, 익공, 통인, 일산, 도원수, 수배 등이 열을 짓는다. 가장행렬은 묘소를 한 바퀴 돌아 광장으로 내려가고, 제사를 주관하는 제관들은 제사를 지낸다.
경산자인단오제는 여느 민속놀이와 달리 이색적인 가장행렬로 이루어졌으며, 화관의 높이가 3m나 되고 춤사위도 매우 독특해서 예술적인 가치가 높고, 오랜 역사를 지니면서 주민들의 확고한 신앙이 놀이의 정신적 지주가 되어 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출처: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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