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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밀양 부은암(父恩庵, 현 부은사父恩寺) 및 밀양 부은사 석조아미타불좌상 (密陽 父恩寺 石造阿彌陀佛坐像)

노촌魯村 2017. 1. 1. 19:59

낙동강과 삼랑진 마을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천태산 중턱에 암자 하나 있으니 ‘부은암(父恩庵, 현 부은사父恩寺)’이다. 가야국의 2대 왕 거등왕이 아버지 김수로의 은혜를 기리고자 지은 암자다.

부은사에서 본 낙동강과 삼랑진 마을

약사여래

임진년(1592) 당시 왜병들은 삼랑진 부근(지금의 검세리)의 작원관지(왜적의 침공을 방비하던 요새지)로 침입해 육로를 확보한 후 밀양을 공격하려 했다. 조선의병 300여명은 왜적 1만8000명을 상대로 결연하게 맞섰는데 그만한 이유가 있다. 삼랑진(三浪津)은 밀양, 김해, 양산 접경지. 여기가 뚫리는 순간 세 지역은 동시에 위험해 처해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던 의병들은 결사항전을 벌였다. 왜적들은 방향을 틀어 천태산을 넘어 진입하려 했는데 이마저도 녹록치 않았다. 패전의 분함을 참지 못했던 것일까. 왜적들은 부은암을 불태워 버렸다.(법보신문)

천불보전

내부에는 비로자나불을 주존으로 좌보처에 약사여래불, 우보처에 석가모니불을 봉안하고 주변에 천 불을 봉안하였다.

영산전

좌우에서 미륵보살과 제화갈라 보살이 협시하는 석가모니 삼존불과 그 좌우에 18나한상을 봉안하였는데 석가모니불 앞쪽에는 상아로 조성한 듯한 아주 작은 18나한상도 봉안되어 있다.

삼성각

요니 석물

용왕탱과 관세음보살상을 봉안한 용왕당 옆쪽에는 맷돌 모양의 요니석물이라는 돌이 놓여 있다. <요니>는 인도 힌두교의 시바 신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자의 음부를 뜻한다고 한다. 이 석물의 재료는 허 왕후가 인도에서 가져왔다는 파사석탑과 같은 재료로 우리나라에서는 나지 않는 돌이라 부은암(父恩庵)이 가락국 때 창건되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유물이라고 한다.

위에 올려져 있는 돌은 남자의 성기를 상징하는 것으로 원래의 것은 도난당하여 다른 돌을 올려놓았다고 한다.

자손이 없는 사람이 이곳에서 기도하면 자손을 얻게 된다는 설화가 전한다.

석조

용왕단

영산전 뒤편의 폭포

마고석굴 가는 길

마고석굴(麻姑石窟)

부은사 뒤편에 있는 천연석굴 마고굴(麻姑窟)은 원효대사와 사명대사가 정진수도 했던 곳으로 전해올 뿐만 아니라. 이곳 천태산은 나반존자가 늘 상주하는 도량으로 병고에 시달리는 사람이나 사업성취, 학업성취, 득남성취, 운수대통 등의 소원을 빌면 꼭 들어주는 영험 있는 도량으로 소문이 나 전국에서 불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밀양 부은사 석조아미타불좌상(密陽 父恩寺 石造阿彌陀佛坐像.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76호)

부은사 극락전의 주존불로써 양측에 관음과 세지를 협시로 한 삼존불의 형태로 봉안되어 있다. 양측의 불상은 양식적인 특징이 본존불과 달라 다른 작가에 의해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군의자락의 도드라진 면이나 뒷면 대의 끝단 등에 도금이 탈락되어 있으며, 이를 제외하면 상태는 비교적 양호하다. 복장공은 상의 저부바닥으로부터 비스듬이 파내고, 무릎정도의 높이에서 입구가 二段으로 이루어진 좁고 깊은 방형의 복장공이 마련되어 있으며, 복장공이 열려 있은 이유 때문에 목좌대를 최근에 와서 덧붙인 것으로 추정된다.
사찰측의 전언에 따르면 본 불상은 양산통도사 포교당에 봉안되어 있는 석조관음보살상의 본존불로 알려져 있으며, 그 보살상에서 발견된 복장발원문을 근거로 1688년작으로 밝히고 있다. (출처:문화재청)

천태산 부은암(父恩庵)의 옛 극락전

부은암(옛 극락전) 가는 길

부은암(父恩庵)은 밀양시 삼랑진읍 천태산 중턱에 위치하고 있다. 가야국 제2대 거등왕(居登王)이 부왕인 수로왕(首露王)의 은혜를 기리기 위하여 200년 무렵에 세웠다는 가야 고찰이다.

임진왜란 때 왜병들이 삼랑진을 공약하기 위하여 작원관지(고려시대부터 왜적의 침공을 방비하던 요새지)로 침입하였으나 의병들의 막강한 저항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천태산을 넘어서 오다 부은암이 있어 불태워버렸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부은암은 조선 말경 1860년(철종11년)에 동화사 학송스님이 옛 부은사지에 부은암을 복원하였다고 전한다.

1906년 농산화상(聾山和尙)에 의해 옛 절터보다 조금 아래에 극락전과 요사체등의 중창불사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농산화상이 중건한 사찰은 현재 폐허 상태로 남아있다.

현재 부은사는 옛 절터보다 윗쪽에 태고종 대종사인  태우(泰宇)주지스님에 의해서 대불사가 이루어졌다.

 

1981년에 조성된 오층석탑(자비보탑)

 

 극락전은 현재 굳게 닫힌 상태이다.

극락전 현판은 구한말의 명필이었던 아석(我石) 김종대(金鐘大, 1873~1949)의 글씨라고 한다.

굳게 닫힌 극락전의 창살 사이로 보이는 불상

영안당(永安堂)??? : 靈安堂??? : 靈安室??? !!!

연꽃 타고가는 모습

지혜의 배 반야용선(般若龍船) : 극락정토로 가는 배

영안당 내부

부도군

1906년 농산화상(聾山和尙)에 의해 중창된 부은암(극락전)과 현재의 부은사 사이에 있는 옛 부은암 절터로 추정되는 축대

폐허된 부은암 극락전 축대 아래에 핀 동백꽃

 

<동백화(冬栢花)>

-  이규보《동국이상국전집》-

桃李雖夭夭

복사꽃 오얏꽃 비록 아름다워도

浮花難可恃

부박한 꽃 믿을 수 없도다

松柏無嬌顔

송백은 아리따운 맵시 없지만

所貴耐寒耳

추위를 견디기에 귀히 여기도다

此木有好花

여기에 좋은 꽃 달린 나무가 있어

亦能開雪裏

눈속에서도 능히 꽃을 피우도다

細思勝於栢

곰곰 생각하니 잣나무보다 나으니

冬栢名非是

동백이란 이름이 옳지 않도다 

 

 소나무() 잣나무() 嚴冬雪寒에도 추위를 견디어 낸다는 점에서는 冬柏과 같이 귀하게 여길 만합니다. 그러나 소나무() 잣나무()에게서는 겨울에 꽃을 피우는 모습을 볼 수 없지만 동백은 겨울철인 11월부터 다음 해 5월까지 피고지기를 반복하며 심지어 눈 속에서도 아름다운 꽃을 피웁니다.

 빨간색 동백꽃의 꽃말은 "누구보다 그대를 사랑한다!" 입니다.

 2016丙申年은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일 년이었습니다.

 2017丁酉年은 어려움 속에도 나라에 忠誠하고 사랑하고 信義를 지키기는 冬柏처럼 아름다운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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