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지혜와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마음의 눈으로 보고자, 눈에 보이는 것은 물론 보이지 않는 것까지 기록하고자합니다.

경상북도/영천

오회공종택(五懷公宗宅)

노촌魯村 2017. 2. 22. 11:11


오회공종택(五懷公宗宅.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72호.  경북 영천시 자양면 성곡리 산78번지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활약하여 영천·경주 전투에서 큰 공을 세운 정수번의 셋째아들인 호신이 결혼하여 살던 집이다.
조선 광해군 12년(1620)경에 지었으며, 효종 6년(1655)에는 사당을 세웠다. 1977년 영천댐 건설공사로 인해 지금의 위치로 옮겨졌다.
앞면 5칸·옆면 1칸 규모로,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다. 사당은 앞면 3칸·옆면 1칸 규모이며,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집이다. (출처:문화재청)


정호신[1605~1649] :  본관은 영일, 자는 덕기(德基), 호는 삼휴정(三休亭)이며, 임진왜란 때 영천·경주 등지에서 큰 공을 세운 정세아(鄭世雅)의 손자이며, 역시 정세아와 함께 공을 세운 아들 정수번(鄭守藩)의 셋째 아들이다. 정수번은 아들인 정호신을 분가시키면서 이 주택인 오회공 종택(五懷公 宗宅)을 건립했다(출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오회공 종택 : 문화재 이주 단지길 두 번째인 하천재 다음에 남동향에 있다. 배치는 방형의 토석담장을 두르고 정면 좌측에 난 사주문을 들어서면 마당 우측에 치우쳐 ‘一’자형 살림집이 있고, 좌측 뒤로 별도의 공간을 마련해 사당을 살림집과 나란히 배치시켜 놓았다.

집은 정면 5칸, 측면 1칸으로 중앙의 대청 두 칸을 중심으로 좌측에 한 칸 온돌방[멀방 또는 건너방], 우측에 한 칸 온돌방[안방]에 연이어 정지를 둔 영남 지방의 일반적인 ‘一’자형 살림집 평면이다. 방과 대청에는 벽장, 쪽마루 등이 없는 단촐한 평면을 취하고 있어 꾸밈과 가식이 없는 반면 매우 정갈한 느낌을 준다. 창호는 청방간에 외여닫이문을 통해 방으로 출입하고 대청 뒤로는 쌍여닫이 판창을 두었다. 방의 전면에는 쌍여닫이 세살창을 두었고 배면과 측면에는 외여닫이세살창호를 두었다. 정지는 전면의 쌍여닫이문을 들어서면 부뚜막 앞쪽으로 박과 통하는 쪽문을 두었다. 구조는 세벌대 자연석기단 위에 덤벙주초를 놓고 방형기둥을 세워 삼량가의 가구를 완성했다.

기둥 상부는 간결한 장혀수장으로 처리했고 지붕은 홑처마에 맞배지붕으로 처리했다. 특히 맞배지붕 양 측면에 풍판대신 가적지붕을 덧붙이고 그 아래를 방과 정지로 활용한 점은 독특한 평면구성이다. 영천 지역에서는 이런 평면과 지붕형태가 간혹 보인다.

살림집 좌측 뒤로는 별도의 방형 담장을 두르고 정면 3칸, 측면 1칸의 사당을 독립배치 시켰다. 사당은 정면의 중앙부에 있는 사주문을 통해 드나든다. 영천댐으로 수몰되기 전에도 이런 형식의 문과 배치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일반적인 사당 진입 구성과는 다르다. 사당은 정면 어칸에만 쌍여닫이 굽널문을 달고 좌우에는 외여닫이로 처리했다. 지붕은 맞배지붕에 한식기와를 이엇다.(출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