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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이재호李在鎬 노래비

노촌魯村 2017. 3. 2. 10:30


이재호李在鎬 노래비(경상남도 진주시 경남 진주시 판문동 산 171-6: 진양호공원)

1914년에 진주에서 출생하여 어릴 적에 형에게서 트럼펫을 배운 뒤,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고등음악학교 본과 2년을 수료하였다. 지병인 폐결핵이 악화되어 고향인 진주에서 휴양 중 레코드사에 관계하는 친구의 소개로 대중가요 작곡을 하게 되었다.

1956년에 지병이 재발하여 경상남도 마산시에서 요양하던 중 4·19혁명 직후 미발표곡들을 남긴 채 1960년에 사망하였다. 본명은 이삼동(李三童)이다.

일본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한 후 귀국하여, 처음에는 당시 OK레코드사에서 무적인(霧笛人)이라는 필명으로 작사 및 작곡을 해오다가 태평레코드로 옮겨 이재호라는 이름으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였다.

1938년에는 「나그네 설움」으로 가수 백년설(白年雪)을 출세시켰고, 같은 해에 「불효자는 웁니다」와 「꽃마차」를 신인가수 진방남이 취입하여 인기가수가 되었다. 또한 1940년에는 「복지만리」와 「대지의 항구」를 백년설에게 주어 당시 최고 인기가수로 각광받게 하였다.

1942년에는 「황하다방」과 「갈매기 쌍쌍」으로 백난아를 출세시켰고, 1943년 이후 물자결핍으로 인해 레코드 제작이 부진해지자 태평레코드사의 전국 순회공연 무대에서 연주단을 지휘하였다. 1945년 전후에 고향인 진주에서 중학교 음악교사로 봉직하였으며, 6·25전쟁 중에는 부산방송국 전속 악단장으로 취임하였다.

1952년에는 「홍콩 아가씨」를, 1953년에는 「경상도 아가씨」 등을 발표하였고, 환도 직후 「무영탑 사랑」, 「물레방아 도는 내력」, 그리고 「단장의 미아리고개」 등을 발표하여 작품들의 완숙기에 도달하였다. 1957년에는 공보처 제정 국민가요 「고향에 찾아와도」를 발표하였고, 인기가수 남인수에게 「무정열차」와 「산유화」 등을 취입 곡으로 주었다.
대표작으로는「불효자는 웁니다」, 「단장의 미아리고개」, 「산장의 여인」, 「고향에 찾아와도」가 있으며, 그 외에 다수가 있다(출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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