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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다솔사(多率寺)

노촌魯村 2017. 3. 2. 10:22


다솔사휴게소(대형차량 주차장.효당 최범술 부도.다솔사까지 800m 16분 소요)에서 다솔사 올라가는 길

이곳은 군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울창한 숲과 경치가 수려하여 삼림욕장으로 각광받고 있다. 신라 지증왕때 창건한 다솔사와, 보안암석굴, 이맹굴, 서봉사지 등이 있어 고고학계의 발길이 잦을 뿐 아니라 300여미터인 봉암산, 천왕산 등을 연결하는 산책로는 등산코스로도 좋으며 정상에 서면 한려해상 국립공원인 다도해를 관망할 수 있어 많은 관광객과 등산객이 찾고 있다. 봉명산은 지도에는 "이명산", 현지 다솔사의 입구 입석에는 "봉명산"이라 되어 있고, 군립 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정상에 오르면 남으로 금오산, 다도해, 서쪽으로 백운산, 서북으로 지리 능선, 웅석봉 등이 시야에 들어온다.
 

산행 기점은 봉명산 자락의 다솔사이다. 다솔사는 응진전, 극락전과 함께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으며 샘물이 맛이 좋아 진주에서 많은 사람들이 물을 길러 오기도 한다. 다솔사에서 보안암으로 빠지는 고개를 통과해 20분이면 봉명산 정상이다. 정자에서 잠시 숨을 돌리고 북쪽으로 2미터 정도 가면 잘 닦인 산책로가 나타나는데 보안암까지 20분 정도 걸린다. 보안암에서 좌우 능선으로 조그만 산길이 나 있다. 암자에서 뒤쪽 봉우리까지 10분이면 되고 서쪽 이명산을 오르는 깨사리고개까지는 10여분 더가면 된다. 깨사리고개에서 정상까지는 30여분 걸린다.


정상에는 원래 용지라는 못이 있었는데 지금은 없다. 정상에서 탁 트인 조망은 일품이다. 아래 등산로에 시루떡을 닮은 바위가 셋이 있는데 제일 위의 시루떡 바위에 불상이 새겨져 있다. 정상에서 이곳으로 내려오면 서쪽으로 200m 오다 갈림길에서 남쪽의 보다 뚜렷한 산길을 택해야 한다. 마애불에서 곧장 능선 아래로 내려오면 작은 고개가 나타나는데 북쪽으로 뻗은 능선을 20분 오르면 계명산 정상이다. 정상에서 동북으로 20분 내려서면 계산마을이고 이 곳에서 북천역까지는 지척이다. (출처: 사천축협)

다솔사多率寺 : 경남 사천시 곤명면 다솔사길 417

다솔사는 511년(신라 지증왕 12) 연기조사(緣起祖師)가 ‘영악사(靈嶽寺)’로 창건하여, 636년(선덕여왕 5) 건물 2동을 신축하고 다솔사로 개칭하였습니다.676년(문무왕 16) 의상(義湘) 대사가 다시 ‘영봉사(靈鳳寺)’라고 고쳐 부른 뒤, 신라 말기 도선(道詵) 국사가 중건하고 다시 다솔사로 이름을 고쳤습니다.
경남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이며 일제시대때 효당 최범술, 만해 한용운과 같은 승려들이 독립운동단체인 만당을 이끌며 차 부흥운동과 독립선언서 초안을 집필한 항일 유적지이기도 합니다.

 

다솔사대양루(多率寺大陽樓.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83호.경남 사천시 곤명면 다솔사길 417 (용산리))

와룡산 기슭에 있는 다솔사는 신라 지증왕 4년(503)에 연기조사가 처음 짓고 영악사라 하였다. 선덕여왕 5년(636)에 절을 늘려 짓고 다솔사라고 부르다가 문무왕 16년(676) 의상대사가 영봉사라 하였다. 경문왕(재위 861∼875) 때 도선국사에 의해 다시 다솔사로 부르게 하였다. 고려와 조선시대에도 여러 번 고쳐지었으며, 임진왜란으로 불타 없어진 것을 조선 숙종 6년(1680)에 다시 지었다. 지금 남아있는 대양루는 영조 24년(1748)에 지은 것이다.
대양루는 다솔사의 본전인 대적광전과 마주보고 있는 위치에 있는 2층 누각으로, 신도들에게 설법을 하고 절의 행사 때 사용하는 도구나 그릇을 보관하기도 한다. 보통 절의 누각은 윗층은 마루·아랫층은 문으로 이용하는데, 대양루는 왼쪽으로 돌아서 들어가도록 되어있다.
앞면 5칸·옆면 4칸의 규모이며, 사람 인(人)자 모양의 단순한 맞배지붕으로 방풍판을 달았다. 대적광전을 향한 쪽은 개방되어 있으나 좌우 양쪽과 뒷쪽에 벽을 설치하여 막았고, 뒷쪽에는 문을 달아 밖의 경치를 내다볼 수 있도록 하였다. 앞마당과 누각 마루는 떨어져 있고 오른쪽 퇴칸 앞으로 돌다리를 걸쳐 출입하고 있다.
다솔사 대양루는 매우 견실한 느낌을 주는 누각건물이다.(출처:문화재청)


1749년(영조 25)에 세워져 지금까지 보존되어 있는 2층 맞배집으로 건평이 106평에 이르는 규모가 큰 건축물입니다.

 

 

대양루의 주춧돌

다솔사대양루(多率寺大陽樓) 2층은 다솔사차(茶)전시관으로 사용되고있습니다.

만해 한용운과 소설과 김동리 등 다솔사와 인연을 맺은 분들의 자료와 함께 반야로차로 유명한 다솔사의 차와 다기들을 전시해 놓은 곳입니다.








 

다솔사 차밭(클릭하시면 원본 크기의 사진이 보입니다)


 

숙종 30년(1704) 세워진 다솔사 중건비입니다. 거북이 몸통같이 생긴 자연석 위에 비신과 이수가 차례로 놓여 있는 이 비석은, "조선국朝鮮國 경상우도慶尙右道 곤양군昆陽郡 북北지리산智異山 영악산嶽山 중건비重建碑"라는 비명이 새겨져 있습니다.





 


다솔사 적멸보궁(多率寺 寂滅寶宮)

본래는 대웅전이었으나, 1978년 2월 대웅전 삼존불상 개금불사를 하는 과정에서 후불탱화속에서 108과의 사리가 발견되어 대웅전을 적멸보궁으로 개축하였던것이다. 다솔사의 적멸보궁 안에는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물게 열반에 들기 직전의 부처님 모습인 와불상이 모셔져 있습니다.


 

 

적멸보궁(寂滅寶宮) 내부

정면의 창으로 사리탑을 볼 수 있으며 우리나라에선 드물게 열반에 들기 직전의 부처님 모습인 와불상이 모셔져 있습니다.

 

 


부처님 사리탑

1978년 2월 대웅전 삼존불상 개금불사를 하는 과정에서 후불탱화속에서 108과의 사리를 모신 부처님 사리탑으로 사리탑을 돌며 소원을 기원할 수 있습니다.






적멸보궁 옆 폐탑


만덕산왕위 萬德山王位

 

다솔사 극락전(多率寺極樂殿.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48호.경남 사천시 곤명면 다솔사길 417 (용산리))

극락전은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지은 것으로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숙종 6년(1680)에 새로 지었다.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으로 꾸몄다.
건물 안쪽에는 아미타불을 모시고 있으며, 건물 앞면 좌우 칸의 창호와 벽체 그리고 난간 형태의 머름 등의 설치가 특이하다. (출처:문화재청)





극락전 벽화







 

다솔사응진전(多率寺應眞殿.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49호. 경남 사천시 곤명면 다솔사길 417 (용산산리))

나한전이라고도 하는 응진전은 신라 선덕여왕 5년(636)에 자장율사가 지었으며,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진 것을 숙종 6년(1680)에 다시 세웠다. 그 뒤 낡은 건물을 1930년 만해 한용운 선생이 보수하여 오늘에 이른다.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건물 안쪽 천장은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천장 속을 가린 우물천장으로 꾸몄으며, 16나한을 모시고 있다. (출처:문화재청)


1979년 응진전에 모신 아미타여래불상 속에서 불사리 108과가 나오자 대웅전을 적멸보궁으로 증개축한 뒤 불사리를 적멸보궁에 모셨습니다.

시인이자 독립 운동가였던 만해 한용운이 머물러 수도한 곳입니다.

 

죽려지실 竹爐之室

(조선시대 서예가 김정희가 쓴 현판. 호암미술관 소장.필사되어 전국에 많이 걸려있는 서각이다)

차를 끓이는 죽로(竹爐.대나무화로대나무로 감싸서 만든 화로)가 있는 방이란 뜻

안심료 安心寮


안심료(安心寮)는 1930년대에 지은 단층의 평범한 요사이지만 만해 한용운이 이곳에 기거하면서 한국 불교의 법맥을 이은 유서 깊은 장소이다. 안심료 앞에는 측백나무 세 그루가 높다랗게 서있는데, 한용운 스님의 회갑 때 지인(知人)들과 함께 심은 것으로 ‘황금측백 나무’라고 부른다. (출처 : 달마넷)

그리고 안심료에서 김동리(1913~1995)선생이 1960~1961년 동안 이곳에 머물면서 ‘등신불’을 집필하여 발표 했던 곳이기도 합니다.

김동리선생은 사는 동안 다솔사와 사천에서 11년을 살았다


안심료 앞에는 측백나무 세 그루가 높다랗게 서있는데, 한용운 스님의 회갑 때 지인(知人)들과 함께 심은 것으로 ‘황금측백 나무’라고 부른다.



 

 다솔사 승탑


어금혈御禁穴 봉표封標 광서光緖11년十一年 을유乙酉 구월九月

봉명산 일대가 명당으로 알려지면서 묘를 쓰려는 세도가가 나타나자 임금이 명을 내려 다솔사 도량에 혈(穴 묘자리)을 금禁하게한 표석이다.

광서11년(光緖11年)(光緖十一年):1885년을유년(乙酉年).고종22년(高宗22年)



효당 최만술 부도


다솔사 주차장 못 미쳐 주 출입로에서 왼쪽으로 약간 들어간 오솔길엔 거대한 남근 소원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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