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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흙에서 찾은 불상 - 국립대구박물관 2017 테마전시 -

노촌魯村 2017. 5. 6. 19:34


2017.2.7(화) => 9.10(일)

국립대구박물관 특별전시실

흙에서 찾은 불상


 테마전에서는 소조불상塑造佛像 4점과 동제불상銅製佛像 2점을 소개합니다.
 소조불상은 경북 예천군 남본리유적의 발굴조사에서 출토되어습니다. 이 유적은 開心寺址 오층석탑(보물 제53호)에서 남서쪽으로 150m 정도 떨어진 곳이며, 과거 개심사 내에 속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동제불상은 경북 영양군 산해리 하천변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소형 불상은 중 · 대형 불상에 비해 이동이 쉽고 복제품을 만들기 쉽습니다. 따라서 정확한 출토지와 제작지를 확인하고 불상의 진위眞僞를 파악해야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이 전시품들은 모두 출토지가 분명합니다.
전시에서는 소조불상과 동제불상이 어떻게 발굴 · 발견되었고, 만들어졌는지를 살펴봅니다. 엑스레이(X-ray) 등을 활용한 과학적인 조사결과도 밝힙니다.
 소조불상은 점토粘土로 만든 불상이어서 남아있는 자료가 많지 않습니다.
 동제불상은 고도의 전문기술이 필요해 만들기가 어렵습니다.
이번 전시품은 출토지가 명확한 불교 문화재입니다. 우리나라의 고대불상을 이해하고 제작기법을 살펴보는 좋은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글 출처 : 국립대구박물관)




소조나한상 塑造羅漢像




나한 羅漢(동의어 : 아라한阿羅漢 )

1.불제자 에서 번뇌 끊어서 인간 하늘 중생들로부터 공양 받을 만한 갖춘 사람 이르는

2.이미 생사 초월하여 더이상 배울 만한 법도 없게 사람으로서, 불교 교법 수행하는 성문() 가지 () 에서 가장 높은 지위 성자() 이른다


나한塑造羅漢像(경북 예천 남본리. 고려. 높이 56.0cm. 무게 13.14kg) : 머리는 민머리이며 눈에는 안구를 끼웠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눈섭은 크고 짙게 표현하였고 미간의 주름과 입 주위에 팔자주름은 깊게 파여 있습니다. 몸통 내부 중안에는 폭 6.5cm으나 결실되었습니다. 미간에 주름이 있으며 입은 살짝 벌리고 있습니다. 무언가를 간절히 염원하는 모습입니다. 몸 내부 중앙에는 폭 6.5cm의 각목角木에  줄을 감아 세운 흔적이 보입니다. 그 위로 점토를 여려 겹 발라 형태를 만들었습니다. 마지막에는 가사袈裟 옷주름을 표현하기 위해 고운 점토를 사용했습니다(출처: 국립대구박물관)








나한塑造羅漢像(경북 예천 남본리. 고려. 높이 53.7cm. 무게 16.76kg) : 머리는 민머리이며 눈에는 안구를 끼웠으나 결실되었습니다. 미간에 주름이 있으며 입은 살짝 벌리고 있습니다. 무언가를 간절히 염원하는 모습입니다. 몸 내부 중앙에는 폭 6.5cm의 각목角木에 새끼줄을 감아 세운 흔적이 보입니다. 가사 왼쪽 소매에는 고운 점토가 벗겨져 있어 모시를 감았던 자국이 선명하게 확인됩니다.



가사 왼쪽 소매에는 고운 점토가 벗겨져 있어 모시를 감았던 자국이 선명하게 확인됩니다








    


불상편(소조塑造 불상佛像 편片 : 예천 남본리. 고려)

나발螺髮(부처의 머리털)편


남본리유적에서는 소조불상 파편이 여러점 출토되었습니다. 그 중에는 나발螺髮(부처의 머리털)편도 발굴되었습니다. 개심사에는 나한상 외에 소조불상이 더 안치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나한상의 머리와 옷주름으로 보이는 파편도 확인되고 있어 소조 나한상이 더 있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파편 안쪽을 보면 뼈대로 짚을 사용한 흔적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검게 그을린 흔적은 이곳에 화재가 있었다는 것을 말해주며 그로 인해 소조불상들을 폐기된 것으로 생각됩니다(출처:국립대구박물관)


동제나한상銅製羅漢像

동제나한상銅製羅漢像은 경북 영양 산해리 하천변에서 발견되었습니다. 과거에 자연재해로 유실되었다가 가뭄으로 하천 바닥이 마르면서 불상이 노출되었습니다. 하천 상류에는 연당동 석물좌상(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11)이 있습니다. 하류쪽으로 200m에는 오층모전석탑(국보 제187)이 있습니다. 하천 인근에 대한 조사를 시행하면 다른 불교문화재들이 추가로 발견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아직까지 정식 발굴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번 전시를 위해 처음으로 과학 분석을 실시했습니다. 나한상은 X선 형광분석(XRF) 결과, 구리Cu95% 이상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녹색 빛깔을 띠는 표면은 구리Cu, 칼슘Ca, 공작석이 검출되었습니다. 아마도 구리 표면 위에 백토(칼슘)를 바르고 그 위에 다시 채색안료(공작석)를 칠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동제나한상은 육안으로 성분을 알 수 없습니다. 칠한 나한상이 약 1kg 정도 더 무겁습니다. 하드 엑스레이(Hard X-ray) 촬영 경과, 합장한 나한상의 머리 일부가 결실되었음이 밝혀졌습니다. 무게 차이의 원인은 바로 없어진 부분 때문이었습니다(출처:국립대구박물관)

나한羅漢(銅製羅漢像. 경북 영양 산해리. 조선. 높이 23.7cm. 무게 4.05kg)

 



 

나한羅漢(銅製羅漢像. 경북 영양 산해리. 조선. 높이 23.7cm. 무게 2.98kg)






 


소조나한상 제작기법




 




동제나한상 제작기법









 예천 개심사지 오층석탑(醴泉 開心寺址 五層石塔)

 

 

예천 개심사지 오층석탑 (醴泉 開心寺址 五層石塔.보물 제53호. 경북 예천군 예천읍 남본리 200-3)

고려 전기에 창건된 개심사에 있던 탑이었으나, 절터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고, 현재는 논 한가운데에 서 있다. 탑은 2단의 기단(基壇) 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세운 모습이다. 아래층 기단은 4면마다 둥근 테두리 선을 새기고 그 안에 머리는 짐승, 몸은 사람인 12지신상(十二支神像)을 차례로 조각하였다. 위층 기단은 4면의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새겨 면을 나눈 다음 그 안에 팔부중상(八部衆像)을 새겨 놓았다. 팔부중상은 불법을 지키는 여덟 신의 모습을 새겨놓은 것으로, 통일신라와 고려에 걸쳐 석탑의 기단에 많이 나타난다. 기단의 맨 윗돌은 그 윗면에 몸돌을 받치기 위한 연꽃무늬의 괴임돌을 놓았는데, 이것은 고려시대 석탑양식의 한 특징이다. 사리나 법경을 봉안하는 탑신부는 몸돌과 지붕돌이 한 돌로 되어 있다. 1층 몸돌에는 문고리 모양을 조각하고 그 좌우에 인왕상(仁王像)을 새겨 두었다. 지붕돌은 밑면에 모두 4단씩의 받침을 깎아두었으며, 네 귀퉁이에서 살짝 들려있어 탑 전체에 경쾌함을 실어 준다. 기단에 남겨진 기록을 통해 고려 현종 원년(1010)에 세워진 탑임을 알 수 있다. 전체적으로 체감률이 매우 온화하여 좋은 비례를 보여주는 아름다운 탑이다. (문화재청 자료)

 

 

 

 

 

1층 몸돌에는 문고리 모양을 조각하고 그 좌우에 인왕상(仁王像)을 새겨 두었다.

  

  

 

 

 

 

 위층 기단은 4면의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새겨 면을 나눈 다음 그 안에 팔부중상(八部衆像)을 새겨 놓았다.

 

 

 

 

아래층 기단은 4면마다 안상문을 새기고 그 안에 머리는 짐승, 몸은 사람인 12지신상(十二支神像)을 차례로 조각하였다.

 

 

 

 

 

 

 

 

 

 

 

 

 

 

 

 

 

 영양연당동석불좌상(英陽蓮塘洞石佛坐像)

 

영양연당동석불좌상(英陽蓮塘洞石佛坐像.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11호.경북 영양군 입암면 연당리 361) 

경상북도 영양군 입암면 연당리 마을 한가운데 임시로 지어놓은 건물 안에 모셔져 있는 석불좌상이다. 광배(光背)와 대좌(臺座)를 모두 갖추고 있는 불상으로, 머리와 눈부분이 깨져 있고 광배가 3조각으로 절단되어 있기는 하지만 거의 완전한 상태로 보존되어 있다.
얼굴은 직사각형 형태이고, 사각형의 신체와 반듯한 어깨, 좁아진 무릎 등에서 경직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왼손에 약그릇을 들고 있어 이 불상이 모든 중생의 질병을 고쳐준다는 약사여래(藥師如來)를 표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옷은 양 어깨를 감싸고 있으며, 평행으로 흐르는 물결식의 옷주름이 새겨져 있다.
3단의 높은 8각형 대좌에는 연꽃무늬가 새겨져 있고, 몸 뒤의 광배에도 연꽃무늬와 구름무늬가 화려하게 조각되어 있다. 대좌의 연꽃무늬, 광배의 구름무늬, 그리고 불신의 정돈된 형태와 물결식 옷주름선 등은 통일신라 후기의 조각수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불상의 뒷면에 새겨진 글로 보아 889년에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제작 연대가 확실하다는 점에서 의의가 클 뿐만 아니라, 지방색이 현저한 통일신라 후기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귀중하게 여겨진다. (출처 : 문화재청)

 

 

 

 

 

 

 

 

불상 오른쪽(향 좌측) 아래에 나무 곽 안에 작은 남근석이 있다. 새끼줄을 감아 모시고 있으며 불상에도 새끼줄을 쳐놓았다. 아마 마을 사람들이 풍요와 안녕을 기원한 것 같다.

 

영양 산해리 오층모전석탑(英陽山海里五層模塼石塔)

 

영양 산해리 오층모전석탑(英陽 山海里 五層模塼石塔.국보 제187호.경북 영양군 입암면 산해리 391-6)  

경북 영양군 입암면 산해리 강가의 밭 가운데에 서 있는 탑으로, 이 마을을 ‘봉감(鳳甘)’이라고 부르기도 하여 ‘봉감탑’이라 이름붙여졌었다. 석탑 주변의 논밭에 기와조각과 청자조각이 많이 흩어져 있어, 이 일대가 절터였음을 알수 있다.
탑은 벽돌 모양으로 돌을 다듬어 쌓아올린 모전석탑(模塼石塔)으로, 1단의 기단(基壇)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기단은 흙과 돌을 섞어 낮게 바닥을 깔고, 10여 개의 길고 큰 돌을 짜서 쌓았다. 그 위의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 모두 벽돌 모양의 돌로 쌓았다. 1층 몸돌에는 불상을 모시는 방인 감실(龕室)을 두었는데, 감실 양쪽에 둔 2개의 화강암 기둥과 이맛돌의 섬세한 조각이 장식적인 효과를 더해주고 있다. 2층 이상의 몸돌은 독특하게도 중간정도의 높이마다 돌을 돌출되게 내밀어 띠를 이루고 있다. 지붕돌은 전탑의 양식에 따라 아래윗면 모두 계단 모양의 층을 이루고 있으며, 처마의 너비는 좁아져 있다.
1단 기단의 모습과 돌을 다듬은 솜씨, 감실의 장식 등으로 미루어 보아 통일신라시대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전체적인 균형과 정연한 축조방식을 갖추고 있으며, 장중한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는 우수한 작품이다(출처:문화재청)

 

 

 

 

 

 

 

 

 

  

 

 

 

 

 2,000년 5월 수리 전(사진 출처 : 문화재청)

 

영양 산해리 오층모전석탑(英陽山海里五層模塼石塔)  주위의  꽃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