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지혜와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마음의 눈으로 보고자, 눈에 보이는 것은 물론 보이지 않는 것까지 기록하고자합니다.

전남

왕인박사유적(王仁博士遺蹟)

노촌魯村 2017. 12. 5. 22:52



왕인박사유적(王仁博士遺蹟. 전라남도 기념물  제20호. 전남 영암군 군서면 왕인로 440 (동구림리 ))

백제 근초고왕 때의 학자인 왕인의 유적이다. 이곳에는 왕인 박사가 태어난 집터인 성기동과 유허비가 서 있다.
그는 일본 응신왕의 초빙으로 『논어』10권, 『천자문』1권을 가지고 가서 해박한 지식으로 태자의 스승이 되었으며, 군신들에는 경·사(經·史)를 가르쳤다. 이것이 일본 문화를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고, 그의 후손은 대대로 가와치에 살면서 학문에 관한 일을 맡고 일본 조정에 봉사하며 문화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이 밖에도 기술공예, 일본 가요의 창시 등 백제 문화를 전수하여 일본 아스카 문화의 기반이 되었다.
전라남도 영암군 중턱에는 박사가 독서를 하며 공부했다고 전해지는 책굴과 문산재가 있다. 이곳은 그가 일본으로 떠난 후 고향 후학들이 인재를 길러낸 곳으로 매년 왕인 박사의 추모제를 거행하였다고 한다. 책굴 앞에는 박사의 후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석인상이 있다. (출처:문화재청)

 

천인천자문(千人千字文)

 



























월출산의 정기를 받아 태어났다고 전해지는 왕인(王仁) 박사는 일본 아스카[飛鳥] 문화와 나라[奈良] 문화의 성립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백제 사람이다. 왕인이 태어난 성기동(聖起洞)은 성기동 성지골로도 불리는데, 구림(鳩林) 삼거리에서 동남쪽으로 약 800m 거리에 위치한 곳이다. 동남향의 성기동은 약 30호 정도가 자리 잡을 수 있을 만큼 널찍하다. 아늑한 느낌을 주는 성기동은 옛 모습의 자취만 있을 뿐 현재는 인가가 없다. 잡목과 잔디 사이에 남아 있는 주춧돌만이 왕인의 생가 터라는 전설을 전하고 있다.

생가 터 옆에는 왕인이 마셨다는 성천(聖泉)이 있다. 성천에서 목욕하면 왕인과 같은 위대한 인물을 낳는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이곳에는 ‘조암(槽岩)’이라고 새겨진 돌구유가 있고 ‘고 최씨원 금 조가장(古崔氏園今曺家莊)’이라 새겨진 바위도 있다. 성인이 난 곳에는 태를 묻은 곳이란 뜻의 ‘산태골(産胎골)’이 지명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은데 성기동에서 남쪽으로 500m 떨어진 곳에도 산태골이란 계곡이 있다.

성기동 일대는 1976년에 도 지정 문화재 제20호 왕인 박사 유적지로 지정되었다가 1987년에 이 일대를 새로 정비하여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왕인묘王仁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