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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순천 금둔사지 석조불비상(順天 金芚寺址 石造佛碑像)

노촌魯村 2018. 9. 5. 22:56



순천 금둔사지 석조불비상(順天 金芚寺址 石造佛碑像. 보물 제946호. 전남 순천시 낙안면 상송리 산2-1번지 금둔사)

전라남도 승주군 낙안면 금전산의 서쪽에 있는 절터에 삼층석탑과 함께 있다.『동국여지승람』에 ‘금전산에 금둔사(金芚寺)가 있다’고 하여 이곳으로 추정하고 있다.
지붕 모양의 보개(寶蓋)와 대좌(臺座)를 갖춘 이 불상은 직사각형의 평평한 돌 한쪽면에 불상을 조각하여 마치 거대한 비석의 형태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민머리의 정수리 부분에는 낮은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솟아있고 얼굴은 원만한 형태이다. 신체는 우아하게 굴곡이 있어 부피감이 느껴지며 단아해 보인다. 양 어깨에 걸쳐 입은 옷에는 평행의 옷주름이 형식적으로 새겨져 있다. 양 손은 가슴 위로 올려 양 손의 엄지와 검지의 끝을 맞대어 설법하는 모양을 하고 있다.
불상의 뒷면에 글이 새겨져 있는 것으로 보이나 마멸이 심해서 읽어내기 어려운 상태이다. 뒷면의 윗부분에는 보살상을, 아랫부분에는 코끼리상을 조각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보개는 탑의 지붕에 해당하는 옥개석과 모습이 비슷하다. 대좌에는 아래로 향한 연꽃잎과 위로 향한 연꽃잎이 새겨져 있다.
다소 엄숙해진 인상, 투박한 옷자락 등의 표현은 9세기 현실적인 사실주의 양식의 특징을 보여주는 귀중한 예라고 할 수 있다.(출처 : 문화재청)

뒷면의 윗부분에는 보살상을, 아랫부분에는 코끼리상을 조각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금둔사지석불은 낙안면(樂安面) 면소재지에서 북쪽으로 약(約) 2km 떨어진 금전산(金錢山) 서록(西麓) 폐사지내(廢寺址內)에 있다. 불상(佛像)의 후면(後面)은 암반을 배경으로 하고 후면(서편(西便))에는 약 5m 떨어져 삼층석탑과 배례석(拜禮石)이 있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금전산(金錢山)에 금둔사(金芚寺)가 있다」고 하여 이곳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불상은 신부(身部), 보개석(寶蓋石), 대좌석(臺座石)이 각각 분산되어 있었던 것을 1979년 7월 복원하였다.

구조형식 살펴보면 보개(寶蓋) 대좌(臺座)를 갖춘 이 석불입상은 독립상이 아닌 장방형(長方形)의 대형 판석(板石) 전면에 불상이 양각(陽刻)되어 있어 마치 대형(大型) 비상(碑像) 형태로 되었다.
보개는 석탑의 옥개석(屋蓋石)과 같은 형태로서 하부는 2단의 각형(角型) 층급(層級)이 있고 저부(底部)의 후면쪽으로 이 판석(板石)을 끼울 수 있는 홈을 파서 불상 판석을 끼웠다. 낙수면(落水面)의 하단선(下端線)은 수평(水平)이며 낙수면도 완만한 경사에 네 귀에서 가볍게 올려 전면(前面) 석탑 옥개석과 동일한 양감(量感)을 준다. 정상(頂上)에는 2단의 각형(角形) 층급(層級)이 각출(刻出)되었다.

 전면의 불상은 원만한 상호이며 소발(素髮)의 머리에 육계(肉계)가 낮게 솟았고 이마에 백호공(白毫孔)이 있다. 목에는 3도(道)가 있으며 두광(頭光)이 선각(線刻)되었다.
단아한 모습과 우아하게 굴곡진 양감(量感)을 보이는 신체이며 법의(法衣)는 통견(通肩)으로 의습(衣褶)은 평행단상(平行段狀)이나 형식화(形式化)되었다. 하부의 군의(裙衣)는 무릎 부분에서 1단이 겹쳐있고 양 발끝이 노출(露出)되었다.
수인(手印)은 양손을 가슴위로 들어 전법인(轉法印)을 결(結)하고 있다.
후면(後面) 상부(上部)에는 명문(銘文)이 음각(陰刻)되어 있는 것으로 보이나 풍화(風化)가 심하여 판독이 어려운 상태이며 상단(上端) 중앙부에는 연화좌(蓮花座)에 무릎을 꿇고 지팡이를 든듯한 보살상(菩薩像)으로 추정된다.
하단부에는 코끼리상이 약하게 조각되어 있다. 대좌 앙련석(仰蓮石), 복련석(覆蓮石) 및 방형지대석(方形地臺石)을 갖추고 있으나 중대석(中臺石)이 있었는지의 여부는 아직은 확인되지 못하였다

현고(現高) 3m, 입상고(立像高) 2m, 삼층석탑과 나란히 서 있는 이 석불입상은 비상형태(碑像形態)로 조성된 특이한 수법을 보여주고 있으며 판석 후면에 코끼리상과 명문이 조각되어 있는 것과 보개석(寶蓋石)의 수법 등도 희귀한 예이다. 장방형(長方形) 판석에 양각되었으며 양감이 풍부하고 세부표현이 정교하나 다소 딱딱해진 인상, 투박한 옷자락 등의 표현으로 9세기의 현실적인 사실주의 양식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출처 : 금둔사) 







천년고찰 금둔사 : 금둔사는 해발 679m의 금전산 서쪽에 위치한 금둔사는 신동국여지승람(新東國與地勝覽) 낙안조(樂安條)의 기록과 보물 제946호인 금둔사지석불비상과 제 945호인 금둔사지 삼층석탑으로 보아 금둔사의 창건연대를 통일신라때로 추정해오다 순천대학교 박물관(관장 조원래)은 최근 금둔사 지층 120∼150㎝에서 창건 당시 건물지 지층을 발견, 발굴을 통해 지금까지 유구층에서 4동의 건물지를 확인했고, 초석·기단·연화문 숫막새·주름문늬병 등의 유물을 발굴했다. 또 박물관측은 발굴유물을 토대로 금둔사는 9세기경 창건된 사찰임을 확인했다.

이후 1979년 7월 10일 완전 도굴되어 흩어져 있는 삼층석탑을 복원하고 1984년부터 지허 선사가 대웅전과 일주문 선원, 약사전, 요사채, 홍교 등을 복원 중창 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출처 : 금둔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