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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제천 고산사 석조관음보살좌상(堤川高山寺石造觀音菩薩坐像). 제천 고산사 석조나한상군(堤川高山寺石造羅漢像群). 제천 와룡산성(臥龍山城)

노촌魯村 2018. 4. 6. 18:11


제천 고산사 응진전


제천 고산사 석조관음보살좌상(堤川高山寺石造觀音菩薩坐像.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94호.충청북도 제천시 덕산면 월악로9길 113)

고산사는 제천시 덕산면 와룡산에 위치한다. 이 사찰은 신라 헌강왕때 창건되었고, 고려 시대에는 혜소대사가 중창하였으며 조선 시대에 이르러 효종 4년(1653)송계대사가 중수하였다고 전하는데 현재 신라와 고려 시대에 조성한 유적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사찰에 1920년대에 제작한 중수기가 전하는데 이 기록에 의하면 신라말 고려 초에 도선국사가 창건한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경내에서 수습되는 기와편, 청자편 등으로 볼 때 고려~조선 시대의 유물들이 주종를 이루고 있다. 응진전내에 관음보살좌상을 봉안하였는데 조선중엽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관음보살좌상은 보관이 정제되고 상호와 동체의 각 부분이 균정하나, 양어깨가 위축되고 턱이 크게 숙여지는 등 후대의 양식을 지니고 있다.(출처 : 제천시)

 


제천 고산사 석조나한상군(堤川高山寺石造羅漢像群. 충청북도 지방유형문화재 195호. 충청북도 제천시 덕산면 월악로9길 113)

와룡산의 고산사 응진전에 봉안된 나한상(羅漢像)이다. 나한이란 아라한(阿羅漢)의 준말로, 소승불교의 수행자 중 가장 높은 지위에 있는 성자를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경주 석굴암의 10대 제자상이 걸작으로 손꼽힌다.
사찰의 기록에 의하면 고산사는 신라 말 고려 초에 도선국사가 창건한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절에서 수습되는 기왓조각, 청자조각 등은 고려에서 조선 시대의 유물들이 주종을 이루고 있어 확실하게 알 수 없다.
관음보살상과 더불어 응진전에 모셔진 나한상은 조선 중기에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시대 나한상은 석고(石膏)로 조성하거나 토제인데 석조 나한상은 작례가 극히 드문 예로, 현재 호분(胡粉)을 두껍게 입히고 있다. 충북도내에 조선 시대 나한신앙의 일부를 확인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관음상과는 종류와 신앙대상이 확실히 구분된다.(출처 : 제천시)









제천 고산사 응진전 벽화





원숭이가 나한의 등긁이(등끌개) ?.  이런 벽화 처음 ...

고산사 응진전 주위 풍경







앗! 여기에 왠 고란초(皐蘭草 Crypsinus hastatus)? (응진전 앞 바위에...)

한방에서는 식물 전체를 이뇨·임질 치료에 쓴다. 충청남도 부여 고란사의 고란초가 널리 알려져 있다.

포자낭은 잎 뒤쪽에 동그랗게 무리져 달리고 포막은 없다.

삼성각


제천 와룡산성(臥龍山城.충청북도 제천시 덕산면 신현리 산50-1)

 충청북도 제천시 덕산면 신현리에 있는 통일 신라 시대~고려 시대의 포곡식 산성.
[개설]
와룡산성은 해발 527.5m의 능선을 서북벽으로 삼아 남동쪽의 계곡을 둘러싼 형태로, 전체 둘레는 2,750m이다. 와룡산성에 대해서는 아무런 문헌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자세한 내력은 알 수 없다. 충북대학교 중원문화연구소에서 지표 조사를 하여 산성에 대한 개략적인 현황을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교통로가 내려다보이는 동쪽 성벽은 자연 암반을 이용하여 석축하였는데, 일정한 간격으로 수직의 기둥 홈이 확인된다. 내외의 사면이 급경사로 된 북쪽과 서쪽의 성벽은 대부분 삭토하여 능선 자체를 성벽으로 삼은 특수한 벽면 구성을 보이고 있다. 성안에는 남문지, 동남문지, 북문지, 동남암문지 등을 비롯한 문지와 망대지 4개소, 그리고 건물지 등이 확인되며 고산사(高山寺)가 위치한다.
[건립 경위]
와룡산성은 본격적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자세한 건립 연대나 경위를 알 수는 없지만, 옛 덕산향(德山鄕) 지역 주민들이 입보하기 위한 산성으로 축조한 것으로 여겨진다. 또 한강의 요충지인 충주에서 동남쪽으로 통하는 가장 중요한 교통로가 되는 죽령로(竹嶺路)와 충주에서 죽령을 거치지 않고 바로 경상북도 문경시 동로면으로 통하는 모녀현로(母女峴路)를 동시에 막을 수 있는 지점에 해당하기 때문에 산성의 중요성을 짐작할 수 있다. 다만 성안에서 출토되는 유물이나 성벽의 축조 방법 등을 고려하면 통일 신라 시대에서 고려 시대에 걸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위치]
와룡산성은 제천시 덕산면 신현리와 한수면 덕곡리의 경계를 이루는 해발 527.5m의 능선과 동남쪽의 계곡부에 위치하고 있다. 청풍호에서 국도 36호선을 따라 제천시 덕산면 방향으로 진행하면 신현리에 이르고 하선대를 지나 신현주유소에서 동쪽으로 난 도로를 오르면 산성 내에 위치한 고산사에 이르게 된다.
(출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