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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제천 신륵사 삼층석탑(堤川 神勒寺 三層石塔)

노촌魯村 2018. 4. 6. 18:55


제천 신륵사 삼층석탑(堤川 神勒寺 三層石塔. 보물 제1296호. 충북 제천시 덕산면 월악산로4길 180 (월악리))

신륵사에 세워져 있는 탑으로, 2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기단은 각 면의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하나씩 본떠 새겼고, 탑신에서도 역시 몸돌의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의 조각을 두었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수가 층마다 4단이며, 빗물을 받는 낙수면은 경사를 약하게 두었고, 네 귀퉁이에서 약간씩 치켜 올려진 상태이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으로 노반, 복발, 앙화, 보륜, 보개(寶蓋:지붕모양의 장식) 등이 올려져 있으며, 머리장식부의 무게중심을 지탱하기 위한 찰주가 뾰족하게 꽂혀 있다.
통일신라의 석탑양식을 잘 계승하고 있는 고려 전기의 탑으로, 특히 이처럼 머리장식이 잘 남아있는 예는 드문 편이며, 각 부재를 만든 솜씨도 세련되어 보인다. 1981년 탑을 해체하여 복원할 때 기단 내부에서 흙으로 빚은 소형 탑 108개와 사리함 조각이 발견되었다.(출처 : 문화재청)

신륵사는 582년(진평왕 4)에 창건되었으며, 문무왕 때 원효대사가 중수하고 조선 시대 때 무학대사와 사명선사가 중창하였다고 전하지만 이를 증명할 정확한 기록은 없다. 현재 경내에는 제천 신륵사 삼층석탑 및 제천 신륵사 극락전[충청북도 유형 문화재 제132호]과 괘불대, 산신각, 국사당, 요사채 등의 건물이 있다. 제천 신륵사 삼층석탑은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기단부, 탑신부, 상륜부 등이 완전한 전형적인 석탑이다. 제천 신륵사 삼층석탑은 여러 장의 판석을 쌓아 지대석을 조성하였고, 그 위에 상층·하층의 기단부를 두었다. 상륜부는 끝 부분인 수연과 용차가 파손되었지만 나머지 부분은 완전하게 남아 있다. 1981년에 해체, 복원되었으며 1999년 6월 23일에 보물 제1296호로 지정되었다.
2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기단부의 아래층은 4매의 면석으로 이루어졌다. 각 모서리와 면석에는 우주와 탱주를 모각하였으나 서쪽 면석에는 탱주를 모각하지 않았다. 갑석은 3매로 이루어졌고, 윗면에는 2단의 괴임대를 만들어 놓았다. 상층 기단의 갑석은 3매의 석재를 사용하였다. 탑신부의 경우, 탑신석과 옥개석을 각 1석으로 조성하였는데, 각 모서리에 우주를 모각하였다. 옥개받침은 4단이며 윗면에는 1단씩의 탑신 괴임을 조성하였다.

탑신부는 1층에서 2층으로 가면서 비례가 급격히 줄어들고 옥개석의 낙수 면은 전각에서 약간 반전되었다. 상륜부에는 노반, 복발, 보륜, 보개, 찰주 등이 남아 있다. 상륜부까지 남은 석탑의 예는 매우 드문 편이고 단아한 기풍을 띤다. 석탑의 높이는 약 4m로, 본래 탑 전체가 약간 기울어져 있었는데 1981년에 탑을 해체, 복원하였다. 제천 신륵사 삼층석탑은 단양군 가곡면 향산리사지의 삼층 석탑과 크기, 모양, 양식 등이 비슷하여 나말 여초 석탑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1981년 해체 복원 때 기단 내부에서 흙으로 빚은 소형 탑 108개와 금동편 1점, 동편 1점의 사리함편이 발견되었다. 이들 유물은 현재 국립청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중 기단에 3층 탑신을 올린 신라 석탑의 전형 양식을 계승하고 있으나 갑석에 부연이 없는 점 때문에 그동안 고려 전기의 탑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양식적으로 볼 때 통일 신라 후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출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으로 노반, 복발, 앙화, 보륜, 보개(寶蓋:지붕모양의 장식) 등이 올려져 있으며, 머리장식부의 무게중심을 지탱하기 위한 찰주가 뾰족하게 꽂혀 있다.
통일신라의 석탑양식을 잘 계승하고 있는 고려 전기의 탑으로, 특히 이처럼 머리장식이 잘 남아있는 예는 드문 편이다.




사진출처 :제천시      

사진출처 :제천시      

사진출처 :제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