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암사靑巖寺(경상북도 김천시 증산면 평촌2길 335-48(평촌리))
경상북도 김천시 증산면 평촌리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8교구 본사 직지사의 말사.
청암사는 원래 지금의 김천시 증산면사무소 자리에 있다가 6·25 때 수도산에 숨어 있던 공비들의 방화(1951.7.14)로 소실된 쌍계사의 산내 암자였는데 1914년에 강원으로 승격되고 지금은 직지사의 말사로 유서 깊은 천년 고찰이다. 숙종의 비 인현왕후가 폐위된 뒤 이곳에 잠행하여 복위를 빌었던 일로 유명하다. 극락전 남별당에 인현왕후가 머물렀다고 한다.
청암사는 859년에 도선국사가 창건하였고 1647년(인조 25)에 전소된 것을 허정화상이 중건하여 화엄종을 널리 선양하였다. 1783년(정조 7)에 다시 화재로 전소되어 환우대사가 중건하였고 1904년(고종 41)에 주지 대운대사가 중수하였다. 그러나 1911년에 또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대운대사가 복구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87년에 주지인 강주 지형이 청암사승가대학을 설립하여 많은 비구니들이 수도하고 있으며 진경각, 육화료를 보수하고 중현당, 선열당, 극락전을 중수하였다.
진경각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형식이고 중현당은 정면 6칸, 측면 6칸의 팔작지붕으로 총 350㎡이다. 선열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2층 건물로서 총 298㎡이다. 작은 암자격인 극락전은 정면 7칸, 측면 7칸의 팔작지붕이며 측면 2칸은 2층 누대를 설치한 복합 건물로 총 228㎡이다. 보광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이며 요사는 정면 4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이다.
산내 암자로 백련암과 수도암이 있다. 백련암은 대방 대웅전이 정면 7칸, 측면 4칸의 팔작지붕이며 수마제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총 36㎡이다. 칠성각은 정면 3칸, 측면 1칸으로 총 152㎡이다. 수도암은 대적광전이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으로 총 36㎡이고 약광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으로 총 26㎡이며, 50㎡의 나한전과 100㎡의 관음전이 있다.
청암사는 직지사의 수사(首寺)의 위치에 있는 사찰로, 사찰 내 승가대학과 율원이 있어 처음 출가하는 승려 수가 적지 않으며, 매달 첫째 일요일에 정기 법회도 하고 있다. 또한 청암사는 자체적으로 홈페이지도 운영하고 있다.
김천 청암사 수도암 석조보살좌상이 보물 제296호, 청암사 수도암 동·서 삼층석탑이 보물 제297호, 청암사 수도암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이 보물 제307호로 지정되어 있다. 또 「김천 청암사 아미타불회도」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15호, 「김천 청암사 신중도」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16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청암사 대웅전이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20호, 청암사 다층석탑이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21호, 청암사 보광전이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88호로 지정되어 있다.(출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최송설당(崔松雪堂·1855~1939) : 홍경래 난으로 멸문당한 집안 후손으로 1855년 김천에서 태어난 최송설당 은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인 영친왕의 보모로 일제치하 당시 민족말살정책에 대항하고자 ‘永爲私學 涵養民族精神(영위사학 함양민족정신, 길이 사학을 경영해 민족정신을 함양하라)’이라는 이념으로 전 재산을 희사해 1931년 김천고등보통학교를 세웠다. 본명은 미상이며 고종이 궁궐에 헌신한 공으로 내린 호가 송설당이다. 1922년 한시 167제 285수와 국문가사 50편 및 제문 등을 수록한 ‘송설당집’을 발간하는 등 학문 수준도 높았다. 경북 김천시 증산면 평촌리에 있는 청암사 입구 계곡에 "崔松雪堂"의 각석이 있다. 길이는 약 1미터 정도, 1920년 무렵에 세겨진 것으로 짐작되고, 주지인 대원스님이 있을 때 송설당이 사찰 복원을 위해서 많은 시주를 했었다.
사천왕문
사천왕은 가람과 불법을 수호하는 신장으로서, 방위별로 동방 지국천(持國天), 서방 광목천(廣木天), 남방 증장천(增長天), 북방 다문천(多聞天)으로 배치됩니다.청암사 사천왕문의 원래 위치는 중현당 뒤쪽이었는데 지리적으로 볼 때 소의 목에 해당된다고 하여 지금의 위치로 지형화상에 의해 이전하게 되었습니다.
1976년 주지 비구니 진기스님에 의해 신축되었습니다.(출처 : 청암사)
우비천(牛鼻泉)
지형적으로 소 코에 해당하는 샘으로 이곳에 물이 차면 재물이 들어온다 하여 예 스님들은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이곳을 지나쳤다고 합니다. 지금도 오가는 사람들의 목을 축여주는 맑은 샘물이 솟아나고 있습니다.(출처 : 청암사)
정법루(正法樓)
대웅전 전방에 위치한 이 누각은 1940년대 이덕진화상에 의해 신축되었으며, 1992년 지형화상에 의해 보수되었습니다. 건물은 정면5칸, 측면2칸의 맞배집입니다.
청암사대웅전(靑巖寺大雄殿. 문화재자료 제120호. 경북 김천시 증산면 평촌2길 335-48 (평촌리))
청암사는 통일신라 헌안왕 3년(859)에 도선이 세운 절이다. 조선시대에도 여러 차례 고쳐 지었으나 1911년 화재로 소실되었다. 그 이듬해부터 3년에 걸쳐 다시 세웠는데 지금 있는 대웅전 역시 이 때 세운 것이다.
대웅전은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안쪽에는 목조석가여래좌상과 후불탱, 산신탱, 신중탱, 칠성탱, 독성탱 등 여러 점의 탱화와 소종(小鐘), 수번(繡幡)이 있다.(출처 : 문화재청)
건립은 본사 창건 당시인 신라 헌안왕 3년 (859) 도선국사에 의해서 이루어 졌고 인조 25년 (1647) 허정혜원조사가 중창하였습니다.
현재의 건물은 화재로 전소된 것을 1912년 제4차 중창시 대운화상에 의해 신축되었습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다포계 형식과 겹치마 팔작지붕을 갖춘 총 23평의 건물로서 1976년 주지 진기스님이 기와번와를 했으며, 2005년 주지 상덕화상에 의하여 평방위로 해체보수를 하였습니다.
경상북도문화재 자료 제120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대웅전 불단 (大雄殿佛壇)
연화대좌에 결가부좌한 선정인의 수인을 하고 있는 석가여래불상은 1921년 대운大雲화상이 중국 항주 영은사靈隱寺에서 조성 대웅전에 봉안하였습니다.
약간 살집 있어 보이는 상호, 좁은 어깨를 덮은 통견의 옷주름은 대칭적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육계(肉髻)가 없고 계주(髻珠)만 크게 박혀있는 머리, 기름진 얼굴모습, 진홍빛의 가사 안자락 표현등 청나라 말기 중국불상의 특징을 모두 갖추고 있습니다.
대웅전 후불탱화 (大雄殿 後拂幀畵)
金魚로는 당대의 불화가 이혜고, 김계은, 홍한곡이 그린 것으로 부처님의 12제자, 8대보살, 4천왕이 옹호하고 있는 모습으로 당시의 대표적인 불화입니다.
산신탱화, 신중탱화, 칠성탱화, 독성탱화도 모두 같은 畵僧의 작품입니다.
대웅전 편액 (大雄殿 扁額)
근세 명필 성당 김돈희 (星堂 金敦熙 1871-1936)의 글씨입니다.
<출처 : 청암사>
청암사다층석탑(靑巖寺多層石塔. 문화재자료 제121호. 경북 김천시 증산면 평촌2길 335-48 (평촌리))
청암사 대웅전 앞에 서있는 탑으로, 2층 기단(基壇) 위에 4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기단은 아래·위층이 거의 비슷한 높이인데 보통 아래층 기단이 낮고 위층 기단이 높은 일반적인 탑들과는 형태를 달리하고 있다. 탑신의 1층 몸돌은 면마다 불상을 조각하였다. 지붕돌은 몸돌에 비해 큰 편으로 네 귀퉁이가 위로 들려 있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의 일부가 놓여 있다.
통일신라 헌안왕 3년(859)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시기 위해 도선국사가 세운 탑이다. 기단에 비해 탑신이 가늘어 가냘픈 감을 주며, 탑신의 몸돌에 비해 지붕돌이 커서 불안정해 보인다. 전하는 말에 따르면, 성주군 어느 논바닥에 있던 것을 청암사 주지였던 대운대사가 지금의 자리로 옮겨 놓았다고 한다. (출처 : 문화재청)
육화료 (六和寮)
화재로 전소된 것을 1912년 제4차 중창시 대운화상에 의하여 신축되었고, 2004년 지형화상과 상덕화상에 의해 해체되어 기둥과 드잡이 보수가 이루어졌습니다.
청암사 내 최대 건물인 육화료의 형태는 을(乙)자형에 귀틀을 지닌 건물로서 총 108평입니다.
육화(六和)는 불교의 진리를 깨치고자 하는 수행자들이 서로 친절하고 화합하고 경애하는 여섯가지 법으로서 신(身), 구(口), 의(意), 계(戒), 견(見), 이(利)의 화합을 통한 승가의 실천내용을 말합니다. 육화료는 청암사승가대학의 중심인 대방채로 쓰입니다.
육화료안에 모셔진 높이 57cm의 석가여래좌상은 조성연대가 조선 정조 때로 추측되며 몇 차례의 화재에도 이 부처님만이 타지 않고 그대로 계셨다고 합니다.
후불탱화는 흑탱화로 건륭(乾隆)56년 정조 15년(1791)에 그려진 흑견은니(黑絹銀泥)의 미타탱화입니다.(출처 : 청암사)
극락전(極樂殿)
정면 7칸, 측면 7칸의 규모에 겹처마 팔작지붕이며, 측면 2칸은 2층 누대를 설치한 복합 건물입니다. 고종9년 1905년 대운화상에 의하여 건립되기 전 대운스님이 빨간 주머니를 얻는 꿈을 꾸고 한양에 가니 어떤 보살님 한 분이 대시주를 하며 자신을 위해 염불해 죽은 뒤에 염불 해주기를 원하였습니다.
이리하여 대운스님은 극락전을 건립하고 염불 萬日會를 결성하여 극락전에서 염불소리가 끊어지지 않게 하였다고 합니다.
1993년 지형화상에 의해 해체보수가 이루어졌습니다.
안에는 석조 아미타여래좌상(石造阿彌陀如來坐像), 탱화(幀畵), 신중탱화(神衆幀畵)등을 봉안하였습니다.(출처 : 청암사)
극락전 서편에 위치한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의 작은 법당이다.
1906년 應雲和尙이 건립하다가 완성을 보지 못하고 入寂하자 大雲和尙이 畢役하였고, 지형화상이 보수 하였습다.
안에는 사십이수(四十二手) 관음보살좌상과 후불탱화, 신중탱화, 칠성탱화, 산신탱화, 독성탱화, 소종 등이 봉안되어 있다.
1994년 4월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 288호로 지정되어 있다.
청동사십이수관세음보살상(靑銅四十二手觀世音菩薩像)
대운화상이 伽倻山 동쪽 龍起寺에서 移運 奉安하였으나 1979년경 盜難, 1992년 6월 7일에 木造로 최완수(불상연구가)님이 도상하고 법성행(유지숙)님의 시주로 志炯和尙이 造成 奉安하였습니다.(출처 : 청암사)
청암사보광전(靑巖寺普光殿. 문화재자료 제288호. 경북 김천시 증산면 평촌리 685번지)
청암사는 통일신라 헌안왕 2년(858)에 도선이 세운 뒤 여러 차례 고쳐 지은 절이다.
보광전을 지은 것에 대한 기록은 없으나 조선 정조 6년(1782)에 고쳐 세운 기록이 있어 그 이전부터 존재한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이에 앞서 숙종 15년(1689) 인현왕후가 장희빈 때문에 폐위되어 이곳 청암사 극락전에 은거하였는데, 이 때 극락전 서쪽에 인현황후의 복위를 빌기 위해 보광전을 세웠다는 설도 있다. 그 뒤 광무 9년(1905)에 다시 세웠으나 1911년 화재로 소실되었고 이듬해 다시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과 새 날개 모양으로 짠 익공 양식을 같이 보이고 있다. 안에는 42수의 관음보살을 모시고 있고 벽면에 산신도(山神圖), 독성도(獨聖圖), 신상도(神像圖) 등이 걸려 있으며 상벽에는 불화를 그려 놓았다.
현존하는 전통 건축 가운데 드문 절충식 구성법을 보이고 있어 절 건축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출처 : 문화재청)
배례석(원 위치는 증산면사무소 앞. 현재는 보광전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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