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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김천

한강 무흘강도지(寒岡 武屹講道址)

노촌魯村 2018. 8. 26. 19:35


본래 무흘(武屹)은 증산면 평촌리 장뜰(장평)에서 수도암(修道庵)으로 가는 길옆에 있던 작은 마을인데 폐동되었으며, 지금은 한강선생님이 머물렀던 무흘정사武屹精舍만이 외롭게 남아있을 뿐이다.

무흘정사武屹精舍

한강 무흘강도지(寒岡 武屹講道址. 시도기념물 제168호. 경북 김천시 증산면 수도길 298. 경북 김천시 증산면 평촌리 670번지)

경상북도 김천시 증산면 평촌리의 무흘정사(武屹精舍)가 있던 터. 무흘강도지武屹講道址는 무흘구곡武屹九曲 중 제7곡 만월담滿月潭과 제8곡 와룡암臥龍巖 사이에 있는 무흘정사武屹精舍의 옛 터이다. 한강寒岡 정구鄭逑(1543~1620)가 1604년(선조 37)에 처음 터를 잡았고, 인근 청암사에 기거하면서 직접 공사를 지휘하였다고 한다. 한강 선생은 이곳에 머무르면서 수많은 저술활동을 하였고 주자학에 심취하여 무흘구곡을 경영하면서 낙재樂齋 서사원徐思遠, 매와梅窩 최린崔轔 등 많은 제자들을 양성하였다.
이처럼 무흘강도지는 무흘구곡 가운데서도 한강이 직접 거주하며 강학한 핵심적 공간이었으며, 이는 『한강언행록寒岡言行錄』,『뇌헌집磊軒集』등 여러 관련자료를 통해 확인된다. 그리고 조선 후기부터 근세에 이르기까지 많은 학자들이 왕래하며 공부한 중요한 역사 문화의 터전이었다. 이와 더불어 한강 정구가 차지하는 역사적인 비중과 무흘구곡의 수려한 주변 경관 등을 고려하여 기념물記念物로 지정한다.(출처 : 문화재청)


최린(崔轔 1597~1644)

자는 사발(士發), 호는 매와(梅窩)이다. 죽헌 최항경의 둘째 아들로 연안 죽제 이시익의 딸을 맞이하여 혼인하였다. 8세에 아버지를 따라 한강 정구에게서 학문을 배웠다. 1633년 형과 함께 사마시에 올랐으나 역시 벼슬길에 뜻을 주지 않았다. 스승 한강 정구 선생이 돌아가신 후 여헌 장현광에게 종학하여 물자설(勿字說)을 피력하였다. 작천정사에다 집을 짓고 정원에 매화나무를 심어 그 매화의 능한(凌寒)의 지조에 감탄하여 매와로 자호하고 편액도 하게 되었다고 한다. 1635년에는 퇴계이선생변무소(辨誣疏)를 써서 수학동문을 놀라게 했다고 한다. 호란 때에는 의군으로 문경까지 진군하였으나 강화했다는 소식을 듣고 통곡하여 돌아와 치광자(痴狂子)라 별호하게 되었고 이후 중국연호를 사용하지 않았다고 함
낙재樂齋 서사원徐思遠(1550-1615) 
조선 중기의 학자로 寒岡 鄭逑(한강 정구)의 門人(문인)으로 朱子學(주자학) 및 李滉(이황)의 文集(문집)을 깊이 연구하였으며 壬亂時(임란시)에는 대구 지역에서 최초로 倡義(창의)하여 八公山(팔공산) 전투에서 공을 세웠다. 이후 刑曹正郎(형조정랑), 戶曹正郎(호조정랑) 등이 제수되었으나 벼슬에 뜻이 없어 모두 응하지 않았다.



 

 


무흘정사 내부 상태(2018.8.25)

사진 출처 : 문화재청    


산신각(무흘정사 뒤쪽에 위치)

산신각 내부

한강 무흘강도지(寒岡 武屹講道址) 울타리로 심은 무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