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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송광사(松廣寺) 감로암(甘露庵)

노촌魯村 2018. 9. 6. 04:34






송광사(松廣寺) 감로암(甘露庵) : 부도암에서 발길을 계속 옮겨 보조암골 계곡 다리를 건너 북쪽으로 300m 가면 제6세 원감국사(圓鑑沖止 1226~1293)께서 창건하였다는 감로암에 오르게 된다. 담장으로 상·하대가 구분되었는데 하대의 2층 건물 관음전과 상대의 별당 요사가 모두 목조 건축물이 아니라서 부자연스럽다. 이는 6·25 때 소실된 것을 1971년과 1976년 2차에 걸쳐 진일심화(陳一心華)보살이 중건한 결과이다

옛 기록을 살펴보면 1775년부터 다음해까지 묵암스님이 주석했으며 1842년에 혁암(奕庵)·후원(厚源)스님 등이 영취루(暎翠樓)를 앞마당에 세웠다. 이어서 1879년에는 경원(敬圓)스님이 본채를, 1891년에는 용선(龍船)스님이 정문을 중수했고, 1920년에 성봉(性峰)스님이 동별당을 새로 세우기도 했다. 1935년에는 금당(錦堂在順 1899 ~1973)스님이 별당을 해체하여 큰 절 문수전 증축에 사용했다. 1892년에는 호붕(浩鵬振弘1863 ~ ?)스님이, 1925년에는 동운(東雲處機)스님이 주석하였다.

1904년에 조성 봉안했던 상단 후불탱화(금어 香湖妙英)는 모르는 시기에 큰 절 약사전에 이안되어있다.

2층 관음전 난간에서 남쪽을 향해 서면 큰 절을 감싼 산 능선 연봉들이 연꽃잎을 이룬다. 천자암 뒷산인 대장봉과 제자(帝字)형의 조계봉이 유다르다.

텃밭 끝 학의 형국 머리부분에 원감국사비(1700년 다시 세움)가 동향으로 왼쪽을 보고 서 있다. 좌대 돌거북이 머리를 치켜들고 있다. 거북의 시선을 따라 가면 앞 고봉등이 가려지지만 바로 원감국사 부도와 연결된다.

원감국사는 수녕(遂寧, 현재 長興) 위(魏)씨로 19세 때 장원급제하여 10년간 외교관으로 봉직하면서 일본을 방문하기도 했다. 감로암이 한때 국제선원이었던 것도 이 인연의 한 줄기였을까. 29세에 득도(得度)하였고 5세 원오국사(圖悟天英 1215 ~1286)의 뒤를 이었다. 시문에도 능하여 어록 등이 전한다.

이 당시 동아시아는 미증유의 몽골제국 정복 전쟁으로 인한 수난의 시대였다. 원 세조(世祖 쿠빌라이칸 1215 ~1294)는 1273년에 다음해의 일본 정벌을 앞두고 전쟁물자 준비를 고려에 부담 시켰다. 이때 송광사의 사전(寺田)도 전비 충당에 편입되자 사찰 경영에 큰 어려움이 닥쳤다. 이에 원감국사는 원 세조에게 청전표(請田表)를 올려 완복(完復)시켰다.

1275년에는 원 세조의 초청을 마지못해 응하니 빈주(賓主)와 사부(師傅)의 예로 대하였다. 보물 제 1376호인 티베트문법지(Tibet文法旨)도 이와 관련된 유물로 전한다.

스님의 문집인 원감국사집(素星圭 역)을 보면, 백성의 곤궁함은 최악의 상태이며 스님들의 생활도 마찬가지여서 영남지방의 참상(1280년, 시제No.79)과 10년간 장맛을 보지 못한 절 살림(시제 No.92) 등의 시가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장흥군 부산면 구룡리 뒷산의 병풍바위 상부에는 국사의 상이라 구전되는 선각 묘사된 초상이 있고 장원봉(壯元峰)·거말봉(居末峰) 등도 남아 있다. 감로암 뒤쪽에 8세 자각국사(慈覺道英. 수선사 주 130I ~1308경)의 부도가 보인다.(출처 : 송광사)

제6대 원감국사비 : 텃밭 끝 학의 형국 머리부분에 원감국사비(1700년 다시 세움)가 동향으로 왼쪽을 보고 서 있다. 좌대 돌거북이 머리를 치켜들고 있다. 거북의 시선을 따라 가면 앞 고봉등이 가려지지만 바로 원감국사 부도와 연결된다.

원감국사는 수녕(遂寧, 현재 長興) 위(魏)씨로 19세 때 장원급제하여 10년간 외교관으로 봉직하면서 일본을 방문하기도 했다.(출처 : 송광사)





제6대 원감국사 부도: 묘적암(妙寂庵)터를 지나서 있습니다.
부도는 높직한 2단의 네모꼴 지대석 위에 있습니다. 하대석에는 복련이 새겨져 있습니다. 중대석과 상대석은 동일석입니다. 중대석은 낮은 고복형이고, 상대석에는 앙련이 새겨져 있습니다. 탑신에는 별다른 장식이 없이 정면에 "원국사보명지탑(圓鑑國師寶明之塔)"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지붕돌 아랫면에는 서까래가 표현되었고, 낙수면에는 기왓골이 표현되었습니다. 상륜부에는 복발, 보륜, 보주 등이 있습니다.(출처:송광사16국사 부도)





 


해우소

감로암 차밭

제8대 자각국사 부도 : 자각국사 부도는 감로암(甘露庵) 북쪽 언덕에 있습니다. 그래서 감로암 부도라고도 합니다.
부도는 3단의
네모꼴 지대석 위에 있습니다. 하대석에는 큼직한 복련이 새겨져 있습니다. 중대석과 상대석은 동일석입니다. 중대석의 모서리에는 연주문(連珠紋) 주형(柱形)이 새겨져 있고, 상대석에는 앙련이 새겨져 있습니다. 탑신에는 별다른 장식이 없고, 정면에 "자각국사징령지탑(慈覺國師澄靈之塔)"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지붕돌 낙수면에는

우동마루와 기왓골이 표현되었고, 전각에는 귀꽃이 새겨져 있습니다. 상륜부에는 복발, 보륜, 보주 등이 있습니다(출처:출처:송광사16국사 부도)

순천 송광사 티베트문 법지 (順天 松廣寺 티베트文 法旨. 보물 제1376호)

송광사에 소장되어 있는 티베트문 법지로, 송광사 16국사 중 제6세인 원감국사가 당시 충렬왕의 명을 받고 원나라를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에 원나라 세조인 쿠빌라이로부터 받아온 것이라 전해진다.
이 티베트문 법지는 현재 크고 작은 6장의 조각으로 나뉘어 있는데, 색깔은 고르지 못하지만 전체적으로 황토색계의 밝은 황갈색이며 종이의 두께·색깔·필체 등으로 보아 본래는 1매의 문서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온전한 상태는 아니지만 내용상으로 보아 ① 문서의 소지자에 대한 신분과 신분보장, ② 신분을 보장해줄 자들에 대한 명시와 협조요청, ③ 문서 발급자의 증명부분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송광사 티베트문 법지는 고려시대 원나라와의 활발했던 불교교류사를 파악하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출처 : 문화재청)



감로암에서 불일암 가는 길에 있는 승탑과 비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