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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이충무공 벽파진 전첩비(李忠武公碧波津戰捷碑)

노촌魯村 2019. 11. 23. 20:20



이충무공 벽파진 전첩비(李忠武公碧波津戰捷碑. )

[정의]

이순신의 명량대첩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진도군 고군면 벽파리에 세운 비.

[건립경위]

정유재란 당시 이충무공에 의해 가장 통쾌한 승리를 불가사의하게 거둔 명량해전 승첩을 기념하고 진도 출신 참전 순절자들을 기록하기 위해 1956년 11월 29일 건립되었다.

[형태]

비신 높이 3.8m, 폭 1.2m, 두께 58㎝이다. 비문은 시인 이은상이 짓고 글씨는 이 고장 출신 서예가 소전 손재형이 썼다.

[금석문]

비문 내용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벽파진 푸른 바다여, 너는 영광스런 역사를 가졌도다. 

민족의 성웅 충무공이 가장 외롭고 어려운 고비에 빛나고 우뚝한 공을 새우신 곳이 여기더니라. 옥에서 풀려나와 삼도수군통제사의 무거운 짐을 다시 지고서 병든 몸을 이끌고 남은 배 12척을 겨우 거두어 일찍 군수로 임명되었던 진도땅 벽파진에 이르니 때는 공(公)이 53세 되던 정유년 8월 29일 이때 조정에서는 공에게 육전을 명했으나 공은 이에 대답하되 신에게 아직도 12척의 배가 남아 있삽고 또 신이 죽지 않았으며 적이 우리를 업수이 여기지 못하리이다. 하고 그대로 여기 이 바다를 지키셨나니 예서 머무신 16일 동안 사흘은 비 내리고 나흘은 바람 불고 맏아들 회(薈)와 함께 배 위에 앉아 눈물도 지으셨고 9월 초 7일 적선 18척이 들어옴을 물리쳤으며 초 9일에도 적선 2척이 감포도(甘浦島)까지 들어와 우리를 엿살피다 쫓겨갔는데 공이 다시 생각한 바 있어 15일에 진(津)을 옮기자 바로 그 다음날 큰 싸움이 터져 12척 작은 배로서 330척의 배를 모조리 무찌르니 어허 통쾌할사 만고에 깊이 빛날 명량대첩이여…”

(출처: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정유재란때 이순신장군은 12척의 함선으로 명량해협(울돌목)에서 3백여척의 왜선을 섬멸, 유명한 명량대첩(1597)을 거둔다. 벽파진은  바로 그 명량대첩을 거두기 직전 16일 동안 이순신이 머물면서 나라의 미래와 백성의 안위를 고민하고 전열을 가다듬고 작전을 숙고했던 역사의 현장이다. 비석의 높이는 11m이며 커다란 돌거북 등 위에 얹혀 있으면서 명량해협을 굽어보고 있다.


1956년에 세워진 이 비에는 이은상 선생이 지은 비문이 새겨져 있다. "벽파진 푸른 바다여 너는 영광스런 역사를 가졌도다. 민족의 성웅 충무공이 가장 외롭고 어려운 고비에 빛나고 우뚝한 공을 세우신 곳이 여기이더니라."이 싯귀가 벽파진의 이충무공을 한 마디로 요약하고 있다.

벽파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