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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진도 쌍계사(珍島 雙溪寺)

노촌魯村 2019. 11. 23. 16:07


첨찰산尖察山 쌍계사雙溪寺 일주문


진도 쌍계사(珍島 雙溪寺)

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사천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사찰.
[개설]
『범우고(梵宇攷)』·『여지도서(輿地圖書)』·『옥주지(沃州誌)』 등에 쌍계사는 진도의 유일한 사찰로 기록되어 있다. 조선시대 중기에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진도 불우조에 죽림사(竹林寺)·봉성암(鳳城庵)·사나사(舍那寺)가 기재되어 있으나 조선 후기의 지리지류(地理誌類)에 모두 폐사지로 기록되어 있다.

이밖에 쌍계사에 대한 기록으로는 초의(草衣) 의순(意恂)[1786~1866]이 쓴 「진도 쌍계사 대웅전불상개금소(珍島雙溪寺大雄殿佛像改金疏)」(1863)와 그의 제자 범해(梵海) 각안(覺岸)[1820~1896]이 쓴 「옥주쌍계사중수기(沃州雙溪寺重修記)」 등이 남아 있다.
[변천]
조선 중기 1648년(인조 26) 의웅(義雄)이 창건하였으며, 이때 시왕전(十王殿)도 함께 건립되었다. 1694년(숙종 20)에 쌍계사 내 시왕전은 훼손되었다가 다음 해인 1695년에 중건되었다. 1697년에는 대웅전이 건립되었으며 정면 3칸, 측면 3칸인 맞배지붕의 다포양식이다. 동종은 1720년(숙종 46)에 쌍계사에서 주조된 것이다.

시왕전은 1767년(영조 43)에 중건(3창)되었다. 시왕전 중창으로부터 42년이 지난 1808년(순조 8)에 비바람으로 시왕전이 낡아져 전복되기에 이르렀다.

보림사에서 출가한 경(敬)은 진도에 살면서 쌍계사 정전을 중수하였다. 그는 단월가(檀越家)를 돌아다니면서 재물을 얻어 시왕전을 새롭게 고치고, 지장보살과 시왕상을 안치하였다.

1863년 대웅전에 모셔진 삼존불을 개금하였으며 이 무렵에 쌍계사의 중수가 또 한 차례 있었다.

1868년 8월 처사 이침산(李枕山)이 쌍계사에 들어왔다. 이침산은 범해 각안이 ‘유마거사의 화신’이라고 하면서 찬사를 아끼지 않았던 인물이다. 범해 각안이 지은 『동사열전』에 198명이 올라 있는데, 그 중 196명이 승려이고 나머지 두 명이 속인이다. 이 두 명이 김대성(金大城)·이침산인데 범해 각안이 대단히 비중 있는 불교인으로 이침산을 서술하고 있다.

1928년에는 대흥사의 용허선사가 군수 남정학(南廷學)의 도움으로 쌍계사를 크게 중수하였다.
[현황]
쌍계사는 대흥사의 말사로 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사천리의 첨찰산(尖察山) 서쪽 평지에 있다. 현재는 대웅전, 시왕전, 요사 등 건물이 있고, 진도의 대표적인 관광 명소로 꼽히고 있다.(출처: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사천왕문






우화루

쌍계사대웅전(雙溪寺大雄殿.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21호.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21호)

쌍계사는 점찰산 서쪽 기슭에 있는 절로 문성왕 19년(857)에 도선국사가 지었으며, 인조 26년(1648)에 의웅이 다시 지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쌍계사 대웅전은 석가모니를 모시는 법당이다. 지어진 연대는 1982년 수리할 때 발견된 기록에 숙종 23년이라 쓰여져 있어 정확히 1697년에 세워졌음을 알 수 있다.
앞면 3칸·옆면 2칸으로 지붕은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으로 가장 단순한 맞배지붕이다. 문의 가운데 칸은 4짝으로 빗살문이며, 양쪽 끝칸은 3짝으로 띠살문이다. 기둥 위에서 지붕 처마를 받치는 공포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계 양식의 건물이다.


원통전


원통전 벽화

원통전 관세음보살상

진도 쌍계사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珍島 雙溪寺 木造釋迦如來三尊坐像. 보물 제1998호. 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사천리 76번지)

‘진도 쌍계사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은 1665년(현종 6) 희장(熙壯), 도우(道雨) 등 9명의 조각승이 합심하여 만든 불상으로, 가운데 석가모니불상을 중심으로 좌․우 각 1구의 보살상으로 이루어진 삼존불(三尊佛) 형식이다. 희장은 17세기 대표적인 조각승(彫刻僧)으로, 쌍계사 불상은 그가 1660년대 중반까지 전라도 지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던 시기에 조성한 불상 양식을 보여주는 의미 있는 작품이다.

본존 석가여래와 좌우 협시보살상의 보존 상태와 도상의 구성 등이 조성 당시의 모습에서 크게 변화 없이 완전한 편이다. 작품에 있어서도 신체에 비해 머리가 상대적으로 강조되었고, 무릎도 한결 넓고 높아졌으며 주름선도 얕고 간결해지는 등 희장 작품의 시대적 흐름에 따른 양식과 미감(美感)의 변화를 읽을 수 있다.

그 밖에 후령통을 비롯한 복장유물이 안치 당시의 원 모습을 크게 훼손 하지 않고 발견되어 17세기 중·후반기 불상의 복장법식 연구에도 귀중한 정보를 제공해준다.

진도 쌍계사 삼존상은 제작연대, 조각승의 이름, 봉안처 등 조성 과정에 대한 필수적인 학술 정보를 잘 구비하고 있으며, 작품의 완성도 또한 높아 17세기 불교조각사 연구를 위한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출처 : 문화재청)

진도 쌍계사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珍島 雙溪寺 木造釋迦如來三尊坐像)

[정의]
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사천리 쌍계사 대웅전에 있는 조선후기 목조삼존불상.
[개설]
진도 쌍계사 목조 삼존불좌상은 1697년에 세워진 쌍계사 대웅전의 주불(主佛)로, 석가모니를 본존으로 하고 좌우에는 거의 동일한 형태의 보살상이 있다.
[제작경위]
이 상은 시왕전의 지장상(1666년)과 유사한 형태를 보이는데 서로 연관된 작가군에 의해 대웅전 건립 시기에 맞춰 조성된 것으로 판단된다.
[형태]
대웅전의 삼존은 본존을 중심으로 두 협시보살이 좌우대칭을 이룬다. 세 상은 방형 얼굴에 묵직한 안정감이 있는 형태이다. 본존은 나발의 머리이며 육계가 분명히 솟아 있지 않은 둥근 두상에 중계주와 정상계주를 가지고 있다.

왼손은 무릎에 올려 엄지와 중지를 맞대었고 오른손은 가부좌한 다리를 덮듯이 내리고 있어, 항마촉지인을 변형한 수인을 보인다. 승기지는 상단이 수평을 이루는데 상단에는 우측으로 상향한 대각선이 주름져 있다.

우협시보살은 본존과 유사한 자세이며 오른손을 올려 연꽃가지를 지물로 한다. 좌협시는 그와 반대로 오른손을 무릎에 대고 왼손을 올려 연꽃가지를 잡았다. 두 보살상은 간략한 통형 꽂이장식 보관을 착용하였고, 흉식에 한정된 간단한 영락장식으로 꾸며졌다.
[특징]
석가모니를 주존으로 하여 좌우에 동일한 형태의 협시보살을 두었다. 협시보살에는 존명을 알 수 있는 특징이 분명치 않으며 다만 가지가 긴 연꽃을 지물로 하였을 뿐이다. 그리고 시왕전의 지장상과 비교하여 오른쪽 어깨와 가슴 사이에 옷자락 하나가 나와 있는 점이 특징적으로 유사하다.(출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진도쌍계사시왕전목조지장보살상(珍島雙溪寺十王殿木造地藏菩薩像.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22호. 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사천리 32 )

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사천리 쌍계사 시왕전에 있는 지장보살상이다.

지장보살은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의 구제를 위해 영원히 부처가 되지 않는 보살로, 민머리를 하고 머리에 두건을 쓰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진도 쌍계사의 시왕전에는 주존인 지장보살좌상을 비롯하여 현재 33구의 목조각상이 있다. 시왕은 의자에 앉아 있으며 나머지 상들은 모두 입상으로 금칠이 되어있다. 대체로 보존상태가 양호하며 33구 중 4구는 후대에 복원된 것이다. 1993년 지장보살삼존상을 수리하던 중 도명존자상 속에서 조선 현종 7년(1666)에 만들었다는 기록이 발견되었다.
쌍계사 시왕전의 조각상들은 보존 상태가 양호하며 정확한 제작 연도를 알 수 있어 문화재적으로 가치가 높으며, 조각적 양식으로 보아서 17세기 중엽의 조각상을 대표할 만하다.(출처 : 문화재청)

진도쌍계사시왕전목조지장보살상(珍島雙溪寺시王殿木造地藏菩薩像)

[정의]
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사천리 쌍계사 시왕전에 있는 조선후기 목조지장상.
[개설]
진도 쌍계사 시왕전 목조 지장보살상은 17세기에 창건된 진도군 쌍계사의 시왕전에 있는 목조 지장보살좌상이다. 지장상의 좌우에는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을 비롯한 시왕상들이 의자에 앉아 있다.
[제작경위]
1993년 지장삼존을 수리·개금하면서 도명존자 안에서 조성기가 발견되었고 ‘강희5년병오△월초사월첨찰산쌍△△△(康熙五年丙午△月初四月尖察山雙△△△…)’라는 글귀를 통해 1666년에 제작된 것을 알 수 있다.

같은 기록에 지장보살, 도명존자, 무독귀왕 그리고 제1 진광대왕에서부터 제10 오도전륜대왕에 이르는 열 명의 대왕은 물론 판관, 귀왕, 동자, 사자(使者) 등을 조성하였다고 한다.

본사질(本寺秩)에는 신학(信學), 영윤(英允), 철문(哲文), 문열(文悅), 성운(性雲) 등 75명의 승려와 산중질(山中秩)에는 수초(守初), 광해(廣海), 각엄(覺嚴), 해관(海寬) 등 17명의 스님이, 연화질(緣化秩)에는 증명(證明) 도원(道元), 지전(持殿) 홍익(弘益), 수화원(首畵員) 희장(熙莊), 신경(信冏), 경신(敬信), 편수(片首) 선해(善海), 옥순(玉淳), 경안(敬安), 신각(信覺), 삼언(三彦), 일훈(日訓), 도증(道證), 여상(呂尙), 야장(冶匠) 최득철(崔得鐵), 별좌(別座) 학찬(學贊) 등이 기입되었다.
[형태]
쌍계사 목조지장보살좌상은 승형의 민머리이며 방형 얼굴에 살진 모습이고 안정적인 체형이다. 지장보살의 전형적인 지물인 보주 혹은 석장을 들지 않고 있으며, 민머리인 점을 제외한다면 조선후기 일반적인 불상에 가깝다.

양손은 무릎 위로 방향을 달리하여 올리고 각각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있다. 승기지는 상단이 수평을 이루는데 상단에는 좌측으로 상향한 대각선이 주름져 있다.
[특징]
승형의 민머리를 하고 있으나 지장보살의 특징적인 지물은 없다. 오른쪽 어깨와 가슴 사이에 옷자락 하나가 나온 점도 특징적이다. 이 상은 대웅전 삼존불의 본존과 유사한 형태를 보여 서로 연관된 작가군에 의해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출처: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산신각

산신탱화


천년고찰 진도 쌍계사에서 국내 최초 서양화 기법 탱화 19점 발견

천년고찰 진도 쌍계사에서 국내 최초 서양화 기법 탱화 19점 발견 천년고찰 진도 쌍계사에서 20세기 초반 서양화의 유화기법으로 그려진 탱화가 국내에서 최초로 대거 발견돼 문화계 안팎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진도군은 “작년 8월부터 시작된 쌍계사 대웅전 해체·보수 과정에서 법당 내부 벽에서 유화로 그린 탱화 19점이 최근 발견됐다”고 지난 22일 밝혔다.

조선 숙종 1697년 중건된 진도 쌍계사 대웅전 벽화는 그동안 붉게 회벽칠이 되어 가려져 있었으나 대웅전에 있는 본존불을 이동하는 과정에서 내벽에 그림 흔적이 확인되면서 그 존재가 드러났다.

이번에 발견된 탱화들은 가로 3m, 세로 1.3m의 대형 벽화부터 가로 1m, 세로 0.6m의 크기까지 모두 19점이다.

특히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전통 불화 기법이 아닌 서양화의 유화기법으로 그려진 탱화라는 점에서 그 가치가 매우 큰 것으로 알려졌다.

또 우리나라 서양화 및 회화 발달사에 중요한 연구 자료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쌍계사 대웅전이 해체·보수가 진행 중에 따라 진도군은 전남도, 쌍계사 등과 협의해 벽화를 보존 처리 후 임시 보관해 정밀감정과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다.

벽화의 보존처리와 임시보관에 필요한 예산을 전남도 등에 요청하고 장기적으로 유화 탱화가 발견된 곳이 전남도 유형문화재 제121호인 대웅전인 만큼 발견된 탱화의 문화재 지정 신청도 함께 추진할 방침이다.

진도군 관광문화과 관계자는 “발견된 탱화가 정교하지 않아 불교 예술적 가치는 미흡하지만 탱화가 서양화로 그려진 배경, 회벽칠로 가려지게 된 이유, 그림을 그린 작가 등 근대 문화적 연구 가치가 매우 높다”고 평가했다.

한편 진도군은 대웅전 해체·보수가 완료되기 전에 벽화에 대한 처리 계획을 확정하고 장기적으로 벽화 전시 및 연구 등의 활용방안을 마련해 추진할 예정이다. (출처 : 진도군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