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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경주인근자료

경주 남산 남간사지南澗寺址

노촌魯村 2020. 2. 20. 14:37
      

경주 남산 남간사지 치석재

남간사지(경상북도 경주시 탑동 767번지 일원)

지금도 마을 이름이 남간마을이라한다.

남간마을에 있는 다수의 치석재는 1998년과 2004년 자료에서는 약 200매 가량 보고되었으며, 그 중 석탑재, 팔각대석, 초석, 장대석, 돌확 등이 있다. 치석재의 종류에는 초석과 장대석이 가장 많고, 그 밖에 팔각대석, 계단 소맷돌, 돌확, 수조, 석탑재(노반, 갑석) 등이 있다. 그 중 팔각대석은 남간 석정에 1매와 768-1번지에 1매가 있다. 크기는 156×156×25이며, 한변 길이 61이다. 전체 2단이며, 상면에는 나비장이 있고, 중앙에 직경 34의 홈이 있다.

남간사지는 연혁을 알 수 없으나, 마을 내 산포하는 다량의 초석을 통해 규모가 컸다고 판단된다. 사역은 다수의 치석재가 있는 768-1번지가 주요구역이라 추정된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건물지 관련 유구가 확인되지 않아 가람배치는 알 수 없다

경주남산(慶州南山)은 금오산(金鰲山)으로도 불린다. 남북의 길이는 약 8, 동서의 너비는 약 4이다. 북쪽의 금오봉(金鰲峰 466m)과 남쪽의 고위봉(高位峰 495m)있다.

일반적으로는 북쪽의 금오봉(金鰲峰 466m)과 남쪽의 고위봉(高位峰 495m)사이를 잇는 산들과 계곡 전체를 통칭해서 남산이라고 한다.

이들 계곡 곳곳에는 신라시대의 유적이 산재해 노천박물관을 이루고 있다. 수많은 불교 유적들은 물론이고, 나정(蘿井), 남산신성(南山新城), 그리고 포석정(鮑石亭)과 같은 유적들이 유명하다.

그중 남간사지는 남산의 서쪽 오릉에서 포석정으로 가면 나정 들어가는 입구에서 600m 정도 마을길을 따라 들어가면 남간마을이 나오는데, 이 일대 전체가 남간사지로 추정되는 곳이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원화연간(元化年間 806-820)에 남간사의 일념(一念)스님이 이차돈(異次頓)의 순교내력을 실은 촉향분예불결사문(髑香墳禮佛結社文:이차돈(異次頓)의 묘에 예불하는 결사문)을 지었다고 하고, 7세기말에 혜통스님이 남산 서쪽 기슭인 은천동(銀川洞) 어귀(南澗寺東里)에 살고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따라서 7세기 대에는 가람이 조영되었음을 알 수 있으나 그 창건 시기는 알 수 없다








남간사지석정(南澗寺址石井.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3. 경북 경주시 남간안길 7 (탑동))

이 돌우물 즉 석정은 남간사 옛 터에 있는 것으로, 땅을 파고 돌을 짜 올린 후 그 위에 다듬은 돌로 틀을 얹은 모습이다. 우물 둘레에는 이중으로 테를 둘렀는데 윗단은 높은 직각을 이루고 아랫단은 곡선으로 낮게 새겨 변화를 주었다.

단순하면서도 간결하게 다듬어져 시원스럽다. 통일신라시대에 만든 것으로, 우물은 우물은 깊이 약 1.4m이며, 자연석을 이용해 쌓고 상부에는 우물틀 이 있다. 1940년 조사자료에 따르면 우물 내부에 석탑재가 있어 사찰이 폐사된 이후 우물이 개축되었다고 추정하였다.(출처 : 문화재청)

경주 남간사지 당간지주(慶州 南澗寺址 幢竿支柱. 보물 제909. 경북 경주시 탑동 858-6번지)

절에서는 행사나 의식이 있을 때 사찰 입구에 당()이라는 깃발을 달아두는데, 이 깃발을 매달아두는 길쭉한 장대를 당간(幢竿)이라 하며, 당간의 좌우에 세워 단단히 지탱해 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고 한다. 드물게 당간이 남아 있으나 대개는 두 지주만 남아 있다.

이 당간지주는 남간사의 옛터에서 약 500m 떨어진 논 가운데에 세워져 있다. 논을 경작하면서 지주의 아랫부분이 약 50정도 드러나 있으며, 바닥 돌은 없어진 상태이다. 기단부가 없어서 기단 위에 당간을 세우던 받침돌도 찾아볼 수 없다. 지주 안쪽 면에 당간을 고정시키기 위한 구멍을 세 군데에 뚫어 놓았는데, 특히 꼭대기에 있는 것은 십()자 모양으로 되어 있어 다른 곳에서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형태이다.

특별한 장식이 없는 소박하고 간단한 형태의 당간지주로, 보존된 상태도 양호한 통일신라 중기의 작품이다.(출처 :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