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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구미

금오서원(金烏書院)

노촌魯村 2020. 9. 14. 22:27

읍청루挹淸樓

금오서원(金烏書院. 경상북도 기념물 제60호. 경북 구미시 선산읍 원리 276번지)

야은 길재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길재(1353∼1419)는 정몽주·이색과 함께 고려 후기에 절의를 지킨 ‘고려삼은(三隱)’으로 불리는 학자이다. 그는 과거에 합격하여 벼슬길에 올랐으나 고려가 망하는 것을 알고 두 왕조를 섬길 수 없다하여 관직을 버리고 고향에 은거하였다. 조선이 건국되고 세자 이방원(태종)이 관직에 임명하였으나 거절하고 학문과 후학양성에만 전념했다.

금오서원은 선조 3년(1570)에 금오산 자락에 세웠으며 선조 8년(1575) 임금으로부터 이름을 받아 사액서원이 되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선조 35년(1602) 지금 있는 자리로 옮겨 다시 지었고, 광해군 1년(1609)에 다시 사액되었다. 이 때 점필재 김종직·신당 정붕·송당 박영·여헌 장현광을 추가로 모셨다.

서원 경내에는 위패를 모시고 있는 상현묘를 비롯하여 정학당, 동재와 서재, 읍청루 등이 있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철거되지 않은 서원이라는 점에서 그 가치가 크다.(출처 : 문화재청)

       

이 서원은 야은(冶隱) 길재(吉再, 1353∼1419)의 충절과 학문을 기리기 위하여 조선 선조(宣祖) 3년(1570)에 지었다. 금오산(金烏山)에 처음 지었으며 선조 8년(1570) 사액서원(賜額書院)이 되었다.

그후 임진왜란 때 불타버려 1602년 현 위치로 옮겨지었다. 길재 외에 김종직(金宗直), 정붕(鄭鵬), 박영(朴英), 장현광(張顯光) 등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읍청루, 정학당(正學堂), 내삼문(內三門), 상현묘(尙賢廟)를 일직선으로 두었으며 정학당의 앞에는 동·서재(齋)를 두었다. 학문을 강론하던 강당인 정학당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집이며, 사당인 상현묘는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집이다. 그리고 읍청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2층 누각이다.(출처 : 구미시청)

구미역(구미버스터미널)에서 선산방향, 선산읍 입구의 단계천 다리를 지나 첫 번째 신호등에서 우회전 후 계속직진하면, 화조1리 마을을 지나서, 직진하면 원리 마을이 나타나는데 마을의 뒤쪽 산기슭에 위치해 있다.

    

정학당
동재
서재 
상현묘尙賢廟(사당)
청아재菁莪齋
금오정金烏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