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지혜와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마음의 눈으로 보고자, 눈에 보이는 것은 물론 보이지 않는 것까지 기록하고자합니다.

대구

대구향교대성전大邱鄕校大成殿

노촌魯村 2022. 5. 26. 13:10

대구향교대성전(大邱鄕校大成殿. 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대구 중구 명륜로 112(남산동))

향교는 지방에 설립한 국립교육기관으로서,성현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기능과 학생을 교육하는 강학 기능을 동시에 담당하였다.

대구향교는 조선 태조 7년(1398)에 처음 지었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졌다.선조 32년(1599)에 달성공원 근처에 다시 세웠다가 선조 38년(1605) 교동으로 옮겼고,1932년 지금 있는 자리로 옮겨 세운 것이다.

지금 남아 있는 건물로는 대성전·명륜당·동재·서재·문묘·삼문 등이 있다.

대구향교로 들어서면 교육 공간인 명륜당과 학생들이 숙식하는 동재·서재가 있으며,내삼문을 열고 뒤채로 들어서면 제사 공간인 대성전이 나타난다. 대성전은 중국과 우리나라의 성현 18인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건물로,앞면 3칸·옆면 3칸 규모이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 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지었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토지와 노비·책을 지원받아 학생들을 가르쳤으나, 지금은 교육 기능은 없어지고 제사 기능만 남아 있다. 

대구향교 대성전은 대구 시내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향교의 중심 건물로,전체적으로 엄숙하고도 단아한 아름다움이 묻어나는 건물이다.(출처 : 문화재청)

 

대성전은 중국과 우리나라의 성현 18인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건물로,앞면 3칸·옆면 3칸 규모이다.
대구향교 대성전 동재
대구향교 대성전 서재
외삼문
명륜당

낙육재(樂育齋) : 영조(英祖) 43년(1766년)에 대구 판관 김노(金魯)에 의해 건립되었는데, 관찰사 김응순(金應淳)과 김노 자신이 쓴 기문이 남아 있다. 향교에서는 해마다 봄과 가을에 고을 내의 유생들을 뽑아 기숙하게 하면서 이곳에서 학문을 강의하였고, 향시(鄕試) 때마다 시험장으로 사용하였다.

1991년 12월 28일, 현재의 자리에 상층 32평, 하층 36평으로 재건되었다.

지상으로 드러난 양사재 건물은 앞 5칸에 옆 2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내부는 통칸으로 되어 있다. 창건 당시에는 지금의 교동, 향교 구역 내의 동신문(東神門) 밖에 있었다고 한다.

현재 양사재 하층은 대구향교 소속 여성유도회와 여성예학연구원의 교육도장으로 쓰이고 있다.

 

양사재(養士齋) : 영조(英祖) 43년(1766년)에 대구 판관 김노(金魯)에 의해 건립되었는데, 관찰사 김응순(金應淳)과 김노 자신이 쓴 기문이 남아 있다.

향교에서는 해마다 봄과 가을에 고을 내의 유생들을 뽑아 기숙하게 하면서 이곳에서 학문을 강의하였고, 향시(鄕試) 때마다 시험장으로 사용하였다.

1991년 12월 28일, 현재의 자리에 상층 32평, 하층 36평으로 재건되었다.

지상으로 드러난 양사재 건물은 앞 5칸에 옆 2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내부는 통칸으로 되어 있다. 창건 당시에는 지금의 교동, 향교 구역 내의 동신문(東神門) 밖에 있었다고 한다. 현재 양사재 하층은 대구향교 소속 여성유도회와 여성예학연구원의 교육도장으로 쓰이고 있다.

 

유림회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