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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경주 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 慶州 方形臺座 石造如來坐像

노촌魯村 2022. 6. 11. 08:01

경주 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慶州 方形臺座 石造如來坐像. 보물.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와대로 1 (세종로))

‘경주 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 慶州 方形臺座 石造如來坐像’은 통일신라 9세기에 조성된 석불좌상으로, 1974년 1월 15일 서울시유형문화재로 지정․관리되어 오다가 이번에 문화재적 가치를 새롭게 인정받아 보물로 지정하게 되었다.

편단우견(偏袒右肩)에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중대석과 하대석은 손실되었지만 다른 부분은 큰 손상 없이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다.

당당하고 균형 잡힌 신체 비례와 풍부한 양감이 돋보이는 표현, 섬세한 부채꼴 옷주름 등에서 석굴암 본존상을 계승한 통일신라 불상조각의 높은 수준을 엿보게 한다. 특히 비대하고 무겁게 보이는 형태와 일정한 간격으로 이루어진 평행선 주름 등은 9세기의 새로운 시대적 조형감각을 보여주고 있다.

현존하는 통일신라 석불(石佛) 중 머리와 몸체가 일체(一體)로 완전하게 갖추었을 뿐 아니라 연꽃문양을 새긴 사각형대좌는 동시기 불상 중에서 사례를 찾기 힘들다. 이와 같이 동 석불의 문화재적 가치를 종합해 볼 때 9세기 통일신라 불상을 대표할 수 있는 뛰어난 조각으로 인정된다.(출처 : 문화재청)

 

‘경주 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보물 지정

문화재청(청장 김종진)은 2018년 4월 12일 열린 제3차 문화재위원회 동산문화재분과 회의에서 청와대 경내에 있는 ‘경주 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慶州 方形臺座 石造如來坐像)’의 학술적․예술적 가치 등을 심의하고, 국가지정문화재 보물 제1977호로 지정하기로 하였다.

경주 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은 1974년 1월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24호로 지정하여 관리해 왔지만, 부처의 머리(불두, 佛頭)와 몸체가 온전한 통일신라 불교조각의 중요한 사례임에도 불구하고 청와대라는 특수한 지역에 위치해 있어 본격적인 조사연구가 어려웠다. 이번 보물 지정이 그동안 미진했던 해당 불상에 대한 문화재적 가치를 규명하고 제도적으로 보호‧관리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해당 불상은 조성 시기가 9세기경으로 추정되며, 중대석과 하대석이 손실되었지만 다른 부분은 심한 손상 없이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다. 편단우견(偏袒右肩)을 걸친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의 모습으로 석굴암 본존상을 계승한 형태이며, 당당하고 균형 잡힌 신체적 특징과 조각적인 양감이 풍부하여 통일신라 불상 조각의 위상을 한층 높여주는 작품이다. 특히, 사각형 대좌는 동시기 불상 중에는 사례가 거의 없어 독창적인 면모가 돋보인다는 평가이다.

* 편단우견(偏袒右肩): 한쪽 어깨 위에 법의(法依)를 걸치고 다른 쪽 어깨는 드러낸 모습

*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 왼손을 무릎 위에 얹고 오른 손가락으로 땅을 가리키는 손 모양으로, 석가모니가 수행을 방해하는 모든 악귀를 항복시키고 깨달음에 이른 경지를 상징

이 불상은 1913년 즈음 경주에서 반출되어 당시 서울 남산 왜성대(倭城臺)에 있는 총독 관저에 놓였다가 1939년 총독 관저가 경무대(청와대 이전 명칭)로 이전하면서 함께 옮겨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지정검토를 하면서 시행한 과학조사에서도 석조여래좌상의 석재가 남산과 경주 이거사지(移車寺址) 등에 분포한 경주지역 암질로 구성되었음이 확인되었다. 다만, 현재까지 밝혀진 문헌과 과학조사 결과로는 석조여래좌상의 원위치를 확인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 왜성대(倭城臺): 임진왜란 때 왜군들이 주둔한 데서 유래한 마을로 현재 남산에는 터만 있음

* 경주 이거사지(移車寺址): 경주시 도지동에 있는 신라 시대 절터로, 성덕왕릉의 원찰(願刹)로 알려져 있음

문화재청은 앞으로 불상의 원위치 확인을 위한 심도 있는 조사‧연구와 더불어 보존처리, 주변 환경을 고려한 보호각 건립 등 국가지정문화재로서 위상에 맞는 체계적인 보존‧관리계획을 수립해 시행해 나아갈 예정이다.

지정 대상 문화재 현황

□ 종 별: 보물 제1977호

□ 문화재명: 경주 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慶州 方形臺座 石造如來坐像)

□ 문화재 개요

ㅇ 소 장 처: 청와대

ㅇ 조성시기: 통일신라 9세기

ㅇ 현 상: 사각연꽃문양대좌 위 결가부좌한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의 여래좌상

ㅇ 주요 내력

- 1912년, 데라우치가 경주 고다이라 료조 집에서 석불 목격

- 1913년, 고다이라가 서울 남산 총독관저(왜성대)로 진상

- 1917년, 『조선고적도보』에 해당 석불을 ‘경주 남산 석조석가여래상’으로 지칭

- 1930년대, 현 청와대 경내에 새 총독관저를 건립하면서 불상 이운

- 1974년,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24호로 지정

(출처 : 문화재청)

   

불상은 높이 108㎝, 어깨너비 54.5㎝, 무릎 너비 86㎝로 풍만한 얼굴과 약간 치켜 올라간 듯한 눈이 특징이다.
사각형 대좌는 동시기 불상 중에는 사례가 거의 없어 독창적인 면모가 돋보인다는 평가이다.

1913년 경주금융조합 이사였던 오하라(小平)는 불상을 불법 반출해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 조선 총독에게 바쳤고, 불상은 서울 남산 총독관저가 있던 왜성대로 이운됐다. 1939년 경복궁에 새 총독관저(현 청와대)가 건립되면서 불상은 현재 위치로 옮겨졌다.

 

이거사지(移車寺址)

위의 사진 클릭하시면 원본 크기의 사진이 보입니다.

<삼국사기>는 이거사(경주시 도지동에 있는 신라 시대 절터로, 성덕왕릉의 원찰願刹)로 알려져 있음) 남쪽에 성덕왕릉(신라의 국력이 최고조에 올랐던 시대)이 있다고 했다. 실제 이거사지 남쪽 직선 거리 약 970m 지점에서 성덕왕릉이 확인되면서 삼국사기의 기록과 현장이 일치하고 있다.

* 왕이 돌아가니 諡(시)를 聖德(성덕)이라 하고 移車寺(이거사) 남쪽(佛國寺驛(불국사역) 西北(서북) 약 10町(정)에 장사하였다.(삼국사기 신라본기 제8 성덕왕)

 

옛날 성덕대왕이 행차할 때 이곳에서 쉬었다 가는 곳이라 하여 ‘대기실’ 즉 ‘쉬고 기다리는 마을’이라는 전설이 있다 한다.

 

이거사지(移車寺址)의 폐탑

염불사지 동탑이 1963년에 불국사역 광장으로 이전하여, 다시 원래의 자리로 이전 하기 위하여 2008년 1월 24일 해체 될 때 까지의 모습(일층 옥개석은 도지동 이거사지의 폐탑재 임)

 

염불사지의 동탑(현재의 일층 옥개석은 새로 제작한 것임)

도지동 이거사지 석탑 부재(염불사지 동탑이 불국사 역 광장에 있을 때 일층 옥개석으로 사용하였음. 원래 위치인 도지동 이거사지移車寺址로 돌아가지 못하고 남산동 염불사지에 있음)

 

앞쪽 옥개석이 이거사지移車寺址 일층옥개석이고 뒤쪽 옥개석이 염불사지 동탑의 일층 옥개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