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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봉화

봉화 서동리 동·서 삼층석탑 奉化 西洞里 東·西 三層石塔

노촌魯村 2022. 6. 16. 04:33

봉화 서동리 동·서 삼층석탑(奉化 西洞里 東·西 三層石塔. 보물. 경북 봉화군 춘양면 서원촌길 8-14 (서동리))

한국산림과학고 안에 동·서로 마주 서있는 2기의 탑으로 쌍탑형식을 띤다. 이 곳은 신라의 옛 사찰인 남화사(南華寺)의 옛터로 알려져 있는데, 신라 문무왕 16년(675)에 원효대사가 여기서 서북쪽으로 6㎞ 정도 떨어진 곳에 현재의 각화사를 창건하면서 이 절은 폐사되었다고 한다.

탑은 2단의 기단(基壇)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으로 두 탑 모두 같은 양식이다.

기단은 아래·위층 모두 4면의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의 조각을 두었다.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한 돌로 이루어져 있으며, 위층으로 갈수록 규모가 줄어들어 뚜렷한 체감률을 보인다.

각 층의 몸돌에는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새겨 두었다. 그리 두껍지 않은 지붕돌은 밑면에 4단씩의 받침을 두었으며, 네 귀퉁이에서 살짝 들려 있다. 꼭대기의 머리장식은 서쪽 탑에만 네모난 노반(露盤:머리장식받침)이 남아있을 뿐이며, 동쪽 탑은 모두 없어졌다.

기단부가 땅 속에 파묻혀 있고 탑이 몹시 기울어져 있어 1962년 10월에 해체 ·복원하였는데, 이 때 서탑에서는 사리함을 넣었던 공간이 발견되었고 동탑에서는 사리병과 함께 99개의 작은 토탑(土塔)이 발견되었다. 전체적으로 아름다운 비례와 정제된 조형미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통일신라 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출처 : 문화재청)

 

이 석탑은 한국산림과학고 내에 13.5m의 거리를 두고 동서로 대립한 2 기의 탑으로 이곳은 신라고찰이었던 남화사(覽華寺)의 옛터로 알려 져 있다.

신라 문무왕 16년(676)에 원효대사가 이곳에서 서북쪽으로 6km 지점에 춘양면 석현리의 현 각화사(覺華寺)를 창건하면서 남화 사를 폐하였다고 전한다.

탑의 지대석과 하층기단 중석을 1석으로 각면 1매로 조성하고 중석 각면에는 우주와 탱주가 1주씩 있다. 갑 석은 동서 2매 판석으로 덮었다.

상대중석은 각면 1석으로 각면에 는 우주와 탱주가 1주씩 각출(刻出)되어 있다.

갑석은 1매 판석으로 덮었고 옥신과 옥개석이 각 1석으로 옥신에는 각층마다 우주가 있 고 체감률도 보기 좋다.

옥개석은 평박하고 옥개받침은 4단이며 추 녀밑은 직선이고 정상에는 1단의 받침이 있다.

동탑에는 1층 탑신 상면 중앙에 가포 36.2cm, 세로 35.3cm, 깊이 10cm의 방형 사리공을 마련하고 중앙에 진녹색 유리제 사리병을 넣은 골석제 유개원호(有 蓋圓壺)를 안치하고 주위에 99기의 소형 토탑이 돌려있는 사리장치 의 원형(原形)이 발견되었다.

이 삼층석탑 2기는 상하각부의 아름다 운 비례와 각부에서 약화(略化)의 과정을 보이나 조형미를 잃지 않은 점 등으로 뛰어난 작품 중의 하나로 평가되며, 신라말 작품으로 추정된다.

동탑은 높이 3.85m 기단폭 2.41m이고 서탑은 높이 3.94m, 기단폭 2.18m이다.

상륜부는 서탑에 노반이 남아 있을 뿐이다.

1962 년 해체 수리 중 서탑에서는 3옥신 상면에 1변 34cm, 깊이 16cm의 사리공이 있었다. 그리고 정면 중앙에 깊이 1.5cm의 타원형 홈이 파 져 있었으나 사리 장치는 없었다고 한다.(참고자료 :문화재관리국, 1977, <<문화유적총람>> 중, 416. ; 봉화군)

 

춘양면 서동리 소재의 한국산림과학고 교정 동쪽에 2기의 석탑이 유존하고 있다.

교정은 신라 고찰인 남화사지(覽華寺址)로 추정되는 곳이기도 하다.

탑(塔)은 2단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으로 두 탑 모두 같은 양식이다.

지대석과 하층 기단 중석(中石)을 각 면 한 장씩의 돌로 구성하고, 탑신석(塔身石)과 옥개석(屋蓋石)은 각각 한 돌로 이루어져 있으며, 위층으로 갈수록 규모가 줄어들어 뚜렷한 체감율을 보인다.

옥개석의 밑면에 4단씩의 받침을 두었으며, 네 귀퉁이가 살짝 들려 있다. 상륜부는 노반(露盤)만이 유존하며 그 이상의 부재는 모두 없어졌다.

1962년 10월에 해체·복원하였는데, 이 때 서탑(西塔)에서 사리함(舍利函)을 넣었던 공간이 발견되었고 동탑(東塔)에서 사리병과 함께 99개의 작은 토탑(土塔)이 발견되었다.

전체적으로 아름다운 비례와 정제된 조형미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통일신라 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판단된다.

동탑 높이 3.85m, 서탑 높이 3.94m이다.(출처 : 봉화군청)

 

봉화 서동리 동 삼층석탑 奉化 西洞里 東 三層石塔

 

봉화 서동리 서 삼층석탑 奉化 西洞里 西 三層石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