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지혜와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마음의 눈으로 보고자, 눈에 보이는 것은 물론 보이지 않는 것까지 기록하고자합니다.

대구

문수보살과 무착無着스님

노촌魯村 2023. 2. 11. 21:29

비슬산 용연사 극락전 벽화

  중국 오대산 중턱의 외딴 암자 금강굴에서 한 스님이 손수 밥을 해먹으며 기도를 하고 있었다.
  그 스님은 어려서 출가하여 무착(無着; 821-900)이라는 법명을 받아 계율과 교학을 공부하다가 문수보살의 영지(靈地) 오대산에 참배하고 문수보살을 친견(親見)하고자 기도를 하는 중이었다.
  하루는 식량이 떨어져 산 아래 마을에 내려가 양식을 탁발해 올라 오다가 소를 몰고 가는 한 노인을 만나게 되었는데, 노인의 모습이 범상치 않음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뒤를 따르게 되었다.
  한참을 뒤쫓아 가다 보니 전혀 보지 못했던 웅장한 절 한 채가 나타났다. 노인이 문 앞에 서서 “균제야! ” 하고 부르니 한 동자가 뛰어나와 소고삐를 잡아 들고 안으로 들어갔다. 방안에 따라 들어가 노인에게 인사를 드렸더니, 동자가 아주 향기로운 차를 한 잔 내왔다. 노인이 묻기를
  -자네는 오대산에 무엇하러 왔는가?
  -저는 문수보살을 친견하여 그 가호를 얻고자 찾아왔습니다.
  -자네가 가히 문수를 만날 수 있을까? 자네 살던 절에는 대중은 얼마나 되고 어떻게 살아가는가?
  -300여명 되는 대중이 경전도 읽고 계율도 익히면서 살고 있습니다. 이곳은 어떠한지요?
  -전삼삼 후삼삼(前三三 後三三)이요, 용과 뱀이 뒤섞여 산다네.(龍蛇混雜 凡聖交參)
  무착은 도무지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었다. 어느새 밖은 어두워져서 무착은 노인에게 하룻밤 쉬어갈 것을 청하였더니
  -애착이 남아 있는 사람은 이곳에서 자고 갈 수 없네. 하고는 동자에게 배웅하게 하고 안방으로 들어가 버리는 것이었다. 어둑해진 길가에 나와서 무착은 동자에게 물었다.
  -아까 노인에게 이곳 대중의 수효를 물었더니 전삼삼 후삼삼 이라고 하시던데 도대체 무슨 뜻인가? 하고 물으니, 동자가 큰 소리로 무착아! 하고 부르니 엉겁결에
  -네.
  하고 대답하자,
  -그 수효가 얼마나 되는고?
  하며 동자가 다그쳐 묻는 것이었다. 무착은 또 다시 말문이 막혀 동자를 쳐다 보며
  -이 절 이름은 무엇입니까?
  -반야사(般若寺)라고 합니다.
  하며 가리키는 곳을 쳐다보니 웅장하던 절은 금시에 간 곳이 없었다. 깜짝 놀라 돌아보니 동자도 사라지고 없는데, 허공에서   한 귀절 게송이 들려오는 것이었다.

성 안내는 그 얼굴이 참다운 공양구요(面上無瞋供養具)
부드러운 말 한 마디 미요한 향이로다(口裡無瞋吐妙香)
깨끗해 티가 없는 진실한 그 마음이(心裡無瞋是眞寶)
언제나 한결같은 부처님 마음일세(無染無垢是眞常)

  균제 동자도 절도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자리에 다만 오색구름 가운데 문수보살이 금빛 사자를 타고 노니는데, 홀연히 흰 구름이 동쪽에서 와서 감싸버리고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이에 무착이 게송을 읊었다.

온 누리가 그대로 성스러운 가람일세(廓周沙界聖伽藍) 
눈에 가득히 문수보살 만나 말을 나누었으나(滿目文殊接話談)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으니 어찌하랴(言下不知開何印) 
고개 돌려 바라보니 옛 산과 바위뿐일세(廻頭只見翠山巖)

  이렇게 문수보살을 친견하고서도 알아보지 못한 자신의 어리석음을 한탄하며, 무착은 더욱 수행에 힘써 앙산 선사(仰山; 840~916)의 법(法)을 이어받아 어디에도 거리낄 바 없는 대자유인이 되었다.

대구 달성 비슬산琵瑟山 용연사龍淵寺 극락전極樂殿 벽화

    어느 해 겨울, 동짓날이 되어 팥죽을 쑤고 있는데 김이 무럭무럭 나는 죽 속에서 거룩하신 문수보살이 장엄하게 나타나서는
  -무착은 그 동안 무고한가?
  하며 옛날 오대산에서 있었던 일을 회상시키며 먼저 인사말을 건냈다. 그런데 무착스님은 무엇을 생각했는지 팥죽을 젓던 주걱을 들어 문수보살의 얼굴을 사정없이 후려갈기는 것이었다. 문수보살은 놀래어
  -어이, 무착 내가 바로 자네가 그렇게도 만나고 싶어하던 문수일세 문수야!
  라고 하는 것이었다. 이 말을 받은 무착스님은
  -문수는 문수요 무착은 무착이다. 만일 문수가 아니라 석가나 미륵이 나타날지라도 내 주걱 맛을 보여주리라. 하고 대꾸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문수보살은
  -쓴 꼬두박은 뿌리까지 쓰고 단 참외는 꼭지까지 달도다. 내 삼대겁(三大劫)을 수행해 오는 동안 오늘에사 괄시를 받아 보는구나.
  하는 말을 마치고 슬며시 사라져 버렸다.
  깨달음을 얻기 전에는 문수보살을 친견하기 위해 오대산 금강굴에서 3년 간이나 기도를 하고, 또 문수보살을 원불(願佛)로 모시고 다녔던 무착이었건만 깨달음을 성취한 뒤에는 문수보살이 스스로 나타나셨어도 도리어 호령을 하고 주걱으로 얼굴을 갈긴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진리를 체득한 선사들의 기백이요 실력인 것이다.(출처 : 해인사 해인 1983년 02월 12호)

대구 달성 비슬산琵瑟山 용연사龍淵寺 극락전極樂殿(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대구 달성 비슬산琵瑟山 용연사龍淵寺 극락전極樂殿대구 달성 비슬산琵瑟山 용연사龍淵寺 극락전極樂殿 비슬산용연사는 대구광역시 달성군 옥포면 반송리 비슬산에 있는 절로서,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의 말사이다.

  비슬산(琵瑟山) 용연사(龍淵寺)는 천년 역사와 정취를 고스란히 간직한 유서 깊은 천년고찰(千年古刹)로서 신라 신덕왕 1년(912년) 보양국사(寶讓國師)가 창건했으며, 이 절터는 용(龍)이 살았던 곳이라고 해서 절 이름을 용연사(龍淵寺)라 불린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03년(선조 36)에 휴정 사명대사(四溟大師)의 명령으로 인잠(印岑)· 탄옥(坦玉). 경천(敬天) 등이 재건했다. 1650년(효종 1)에 일어난 화재로 보광루만 제외하고 모두 불타버렸으나 다음해에 계환(戒環)· 여휘(麗輝) 등이 중건했다. 그 후에도 여러 차례의 중수가 있었으며 현존 당우로는 극락전· 영산전· 명부전· 삼성각· 안양루. 사명당. 선열당. 심검당. 유정당 등이 있다.

  중요문화재로는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 금강계단(보물 제539호)이 있고, 1728년 세운 다포식 맞배지붕의 극락전(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41호)과 극락전에 모셔진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 및 복장유물(보물 제1813호), 묘법연화경 권4~7(보물 제961-3호) 이 외에도 3층 석탑(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8호)과 14기의 부도 등이 있다.

  특히 용연사의 적멸보궁은 영남지방의 영험 기도처로 부처님의 훈훈한 향기를 느낄 수 있는 성스러운 장소로 널리 알려져 있다.(출처 : 용연사)

  용연사龍淵寺 극락전極樂殿(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 비슬산 용연사는 통일신라 신덕왕 원년(912)에 보양국사가 처음 지었다고 전한다. 조선 세종 1년(1419)에 천일대사가 다시 지었고, 임진왜란으로 불탄 것을 여러 해에 걸쳐 다시 지었다. 이렇게 지어진 건물은 200여 칸이 넘고 승려도 500여 명이나 되는 큰 절이었다고 한다.

  아미타불을 모신 극락전은 영조 4년(1728)에 다시 지었다. 앞면 3칸·옆면 3칸의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간결한 맞배지붕집이다. 지붕처마를 받치면서 장식을 겸하는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배치된 다포 양식으로 조선 후기 건축 양식을 잘 보존하고 있는 건물이다.(출처 :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