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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태백산 신흥사 太白山 新興寺

노촌魯村 2023. 8. 19. 05:17

일주문
일주문

신흥사는 신라 민애왕 원년(838), 혹은 진성여왕 3년(892)에 범일 국사가 현재 동해시 관내인 지흥동에 지흥사(池興寺)라는 절을 짓고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그 후 여러 차례의 중건·중수를 거듭해 오다가 조선 현종 15년(1674)에 현위치로 이전하여 광운사(廣雲寺)라 하였으며, 후에 다시 운흥사(雲興寺)로 고쳐 불렀다.

영조 46년(1770)에 화재로 인하여 모든 전우(殿宇)가 소실되어 다음해 영담대사가 중건하였으며, 순조 21년(1821) 부사 이규헌의 지원을 받고 신흥사라고 개명되었다. 그 뒤 철종 14년(1863)에 중수되었으며, 이때 부사 이규헌의 은덕을 기리기 위해 은중각(恩重閣)이라는 사당을 짓고 매년 제사를 지냈다. 현재 신흥사 대부분의 건물들은 이때 중수된 것이며, 1983년 주지 재황스님이 학소루를 건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신흥사의 현존 건물로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삼성각·심검당·설선당·학소루·일주문·요사채 등이 있고, 부도군과 비·삼존불상·정화 등의 유물이 남아 있으며, 산내 암자로는 청련암과 반야암이 있다.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 팔작기와지붕으로 최근에 개수되었으며, 삼성각은 정면 1칸, 측면 1칸의 겹처마 맞배기와지붕이며, 최근에 건립되었다.

설선당과 심검당은 문화재자료 제108호로 심검당은 진영각이라 불리기도 한다.

은중각은 1863년 부사 이규헌의 은덕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건물로서 현재 이 건물은 없어지고 그 자리에 삼성각이 세워졌다. 진영각 내부에 10점의 고승 진영이 보관되어 있고, 삼존 불상은 대웅전 내부에 봉안되어 있으며, 석가여래와 문수보살, 보현보살로 구성되어 있고, 조선 후기의 불상이다.

대웅전 안에 6점의 정화가 있는데 건륭년간(1736-1795년)에 그린 것이 5점, 철종 12년(1861)의 작품이 1점으로 모두 신흥사라 기록되어 있으며, 설선당 건물 내부에도 1875년, 1796년에 각각 조성한 탱화 2점이 있다. 사찰 입구 좌측의 부도밭에는 4기의 부도와 비 5기가 일렬로 나란히 서 있다. 이외에 영담대사가 창건한 청연암, 반약암이 있다.(출처 : 삼척시청)

학소루(鶴巢樓)
학소루(鶴巢樓)

신흥사 대웅전 처마는 서까래와 부연이 모두 사각형의 부재를 사용하였으며, 처마끝에는 풍경이 달려 있다.

신흥사 대웅전(新興寺大雄殿.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동막리 1322)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신흥사 대웅전의 건립 연대는 알려진 바 없지만 조선 후기 양식을 하고 있다.

삼척 지역에 전하는 지리지와 사적기에서 서로 다르게 기록하고 있어 명확히 알 수 없지만 신흥사는 1674년(현종 15)과 1711년(숙종 37)에 중건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중건 시기 이후의 건축 양식이 나타나고 있다.

신흥사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겹처마에 익공 양식이 가미된 주심포 건물이다.

기둥은 정면 4개와 뒷면의 귀기둥은 원형이고, 측면의 중간 버팀기둥 1개와 뒷면의 버팀기둥 2개는 사각형 기둥이다. 전면과 동·서 측면의 기둥 위에는 모두 이익공으로 장식하였고, 뒷면의 사각기둥 2개에는 익공이 없다. 밖에는 1출목이고 안쪽에는 출목이 없다.

정면의 창호는 3칸 모두 빗살문의 이분합문이며, 측면의 창호는 동쪽에만 설치하였다. 어칸의 문 위에 대웅전(大雄殿)이라고 좌서(左書)한 대형 편액이 걸려 있다.

용마루 양쪽 끝에는 용두로 장식하였고, 겹처마에 이익공을 사용한 주심포 양식이다.

지붕 가구에서 흔히 서까래는 원형, 부연은 사각형의 부재를 사용하지만 신흥사 대웅전은 서까래와 부연이 모두 사각형의 부재를 사용하였다.

천장은 서까래가 보이지 않는 우물천장이고, 닫집은 없다. 기단은 거칠게 다듬은 석재를 4~5단 쌓았으며, 중앙에도 역시 거칠게 다듬은 석재로 계단을 놓았다.

내부에는 중앙에 석가여래를 봉안하고 협시불로 보현보살과 문수보살을 배치하였다. 모두 길상좌를 한 좌불이다. 또 대웅전에는 6점의 탱화가 있었다. 그러나 건륭 연간[1736~1795]에 제작된 5점은 도난당하고 1861년(철종 12)에 제작된 탱화 1점이 남아 있다.(출처 : 한국학중앙연구원-향토문화전자대전)

신흥사 불상(新興寺佛像.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동막리 1322)

강원도 삼척시 신흥사의 금당인 대웅전에 봉안된 불상이다.

주존불은 항마촉지인의 석가불좌상이고, 협시불은 보현보살과 문수보살상이다.

삼존불 모두 네모에 가까운 상호를 하고 있다.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중앙계주가 표현되었다.

주존불은 정상계주까지 표현되었다. 두 보살상은 화려한 보관을 쓰고, 귀밑머리는 양쪽 어깨까지 세 줄기가 내려와 있다. 이마 쪽은 세밀하게 빗어서 보관 속으로 들어가도록 하였다. 보살상의 보관 안에는 머리카락을 높이 솟게 묶었다.

법의(法衣)는 삼존불이 거의 같이 양쪽 어개를 모두 덮는 통견(通肩)을 입고 있으며, 속옷인 승기지는 연판문 형식을 취하고 있다.

수인은 오른손은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고, 왼손은 엄지와 중지가 닿는 양식이다.

앉아 있는 자세는 결가부좌이면서 왼쪽 다리를 먼저 접고 오른쪽 다리를 왼쪽 다리 위에 얹은 길상좌를 취하고 있다.

좌대는 복련과 앙련만 모각되어 중대가 생략되었다.

삼존불 모두 좌상이다. 어깨에서 머리 부분이 앞으로 약간 숙인 조선 후기의 일반 양식이다. 목조로 제작된 삼존불좌상으로 상호가 사각형이며, 법의는 통견이다. 중앙계주가 있다. 보살상은 화려한 보관을 쓰고 있는 조선 후기의 일반 양식이다.(출처 : 한국학중앙연구원-향토문화전자대전)

삼척 신흥사 설선당

설선당 및 심검당  : 강원특별자치도 문화재자료 제108호(1988.5.18.지정) 설선당은 1771년(영조 47)에 지어졌으며, 심검당은 1674년(현종 15)에 지어졌다고 전해지나 현재의 건물은 후대에 중수된 것으로 보인다.

설선당은 불제자들을 가르치던 곳이고 심검당은 주지가 머무르는 곳이다. 설선당은 애초에 ㄴ자형 건물이었지만 최근에 덧붙여져 ㅁ자형을 이룬 홑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며, 심검당은 ㄴ자형 평면에 홑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다.

두 건물 모두 매우 굵은 부재가 사용되었고, 인근 지역 전통 가옥 모습과의 연관성을 보인다. 판벽으로 구성된 벽이 주된 외관을 이루며, 자연 경사를 이용한 실내 구성에 퇴를 조성하였다.

삼척 신흥사 심검당
삼성각
삼성각 내부
지장전
보호수 : 배룡나무와 소나무
능소화
상사화

신흥사 내 부도와 부도비군(新興寺內浮屠-浮屠碑群,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양리길 220)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신흥사에 있는 부도와 부도비군.

영담대사 부도비, 가선대부 등계대사 석원답비, 화운당 현진대사 부도비와 부도, 주운당대사(珠雲堂大師) 부도, 주정당대사(珠正堂大師) 부도(浮屠), 송파당대사(松坡堂大師) 부도 등 신흥사에 주석하면서 공덕을 쌓았거나 입적한 승려들의 부도와 부도비, 공덕비이다.

신흥사에 주석한 영담대사는 1781년(정조 5) 신축년에 태어나서 1860년(철종 11) 경신년에 입적하였다. 영담대사는 본찰(本刹)에 화재가 나서 주요 건물이 훼손되자 중건을 주도하여 사찰의 면모를 일신하였다.

영담대사는 또 사찰 기강을 확립하였으며, 흉년이 들어 중생들이 굶주릴 때 이들을 구휼하여 그 공덕이 내외에 널리 알려졌다.

영담대사 부도비는 1860년(철종 11) 홍면섭이 글을 쓰고 홍남은의 글씨를 새긴 비석이다.

가선대부 등계대사 석원답비는 1788년(정조 12)에 세운 비석이다.

화운당 현진대사 부도비의 후면에 ‘건륭 26년 신묘(乾隆二十六年辛卯)’라 표기되어 있지만 신묘년(辛卯年)은 ‘건륭 36년(乾隆三十六年)’이기 때문에 ‘건륭 26년(乾隆二十六年)’은 오기(誤記)로 볼 수 있다. 이에 따라서 비석을 세운 시기는 건륭 36년(乾隆三十六年)인 1771년(영조 47)이 된다.

조선 후기인 영조·정조·철종대에 당시 운흥사(현재 신흥사)에 주석하고 있던 스님들이 입적하자 이들 스님을 기리기 위하여 세웠다.(출처 : 한국학중앙연구원-향토문화전자대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