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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송공단宋公壇

노촌魯村 2023. 11. 13. 06:04

송공단(宋公壇. 부산광역시 동래구 동래시장길 27[복천동 229-78])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에 있는 임진왜란 때 순절한 선열들을 추모하기 위해 만든 제단(祭壇).

1608년 동래부사 이안눌(李安訥)이 해마다 봄가을에만 제사지내던 송공사(宋公祠)에서 동래부사 송상현(宋象賢)이 순절한 4월 15일에도 제사를 지내도록 하였다. 그 뒤 동래읍성 남문 밖 농주산에 전망 제단(戰亡祭壇)을 만들어 해마다 음력 4월 15일[임진왜란 때 동래읍성을 빼앗긴 날] 송상현, 정발(鄭撥), 조영규(趙英圭), 노개방(盧蓋邦), 그리고 임진왜란 때 함께 순절한 이들에게 제사를 지냈다.

1742년(영조 18) 동래부사 김석일(金錫一)이 임진왜란 때 송상현이 순절한 정원루 터에 송공단(宋公壇)을 만들어 농주산 전망 제단의 선열들의 위패를 옮겼다. 1766년에는 임진왜란 때 다대진성 전투에서 순절한 이들까지 추가로 제사를 지냈으나, 부산진성과 다대진성에서 순절한 이들을 정공단(鄭公壇)과 윤공단(尹公壇)에서 따로 제사를 지냄에 따라 1767년부터 송공단에는 동래읍성에서 순절한 선열들만 추모하게 되었다.

송공단은 부산광역시 동래구 동래시장길 27[복천동]에 있는 동래 시장 상가 건물 바로 북쪽에 위치한다.

7개의 단에 화강석으로 만든 15기의 비석이 세워져 있다. 대문 북쪽으로 일직선상에 있는 정단을 중심으로 동쪽에 있는 1개의 단과 서쪽에 있는 3개의 단이 각각 직육면체 모양이지만 하나로 연결되어 있고, 정단에서 멀어질수록 각 단의 높이는 약 12~15㎝ 정도씩 낮게 만들었다. 서쪽 3단의 서북쪽에는 낮은 담장으로 별도의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 따로 2단을 설치하여 순절한 여성들의 위패가 있다. 정단 위에 세워진 송상현 순절비에만 지붕 모양의 덮개돌인 가첨석(加檐石)이 있고, 나머지 단 위에 있는 비석에는 가첨석이 없다.

동래구청이 소유, 관리하고 있다. 송공단은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모습이 바뀐 채 1972년 6월 26일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11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부산광역시 기념물로 재지정되었다. 한편 2005년 동래구청에서는 송공단의 원래 모습을 되찾고자 『충렬사지(忠烈祠志)』 등 옛 자료를 수집·분석하고, 문화재위원을 비롯한 전문가들의 자문과 조언을 구하여 임진왜란 때 동래읍성 전투에서 순절한 선열만을 송공단에 모실 때의 모습으로 바로잡았다.

7단 15기인 송공단 정단에는 송상현, 동쪽 1단에는 양산 군수 조영규와 동래 향교 교수 노개방, 서쪽 1단에는 향교 유생 문덕겸(文德謙)·양조한(梁潮漢)과 비장(裨將) 송봉수(宋鳳壽)·김희수(金希壽), 서쪽 2단에는 겸인(傔人) 신여로(申汝櫓), 향리 송백(宋伯), 동래부의 백성 김상(金祥), 서쪽 3단에는 하나의 비석에 이름도 남기지 못하고 순절한 남자들의 위패를 각각 모시고 있다.

여성들을 따로 모시고 있는 별단 1단에는 송상현을 모시고 있던 금섬과 이름 모를 두 의녀를, 별단 2단에는 하나의 비석에 이름을 남기지 못하고 순절한 여성들을 각각 모시고 있다. 동쪽 1단 동북쪽 뒤에는 송상현의 유언에 따라 끝까지 살아남아 그의 시신을 찾아 잘 묻어 준 동래부 노비 철수와 매동의 충성을 본받자는 의미에서 1800년(정조 24)에 세운 효충비(效忠碑)[고관노철수매동효충비(古官奴鐵壽邁同效忠碑)] 하나가 따로 있다.

송공단은 임진왜란 때 왜적과 싸우다가 순절한 선열들의 호국 충절을 기리고, 이를 후손들에게 전하며 추모하는 부산의 대표적인 제단이다. 그리고 국민들에게는 나라와 향토사랑 정신을 일깨우는 역사의 산 교육장이 되고 있다.(출처 : 향토문화전자대전-부산역사문화대전)

송공단宋公壇 현판 (박정희 대통령 글씨)

송상현 순절비(宋象賢殉節碑. 부산광역시 동래구 동래시장길 27[복천동 229-78])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 송공단에 있는 조선 후기 송상현(宋象賢)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송상현 순절비(宋象賢殉節碑)는 임진왜란 때 동래부 전투에서 순절한 동래 부사 송상현을 기리기 위한 비이다. 송상현[1551~1592]은 1576년(선조 9) 문과에 급제한 후 승문원 정자·사헌부 지평·경성 판관 등을 역임하였고, 1591년(선조 24) 동래 부사가 되어 성을 고쳐 쌓고 무기 등을 잘 갖추었으나, 이듬해 4월 15일 왜적들이 동래읍성을 침입할 때 싸움을 지휘하다가 성의 함락과 함께 순절하였다. 정부에서는 1594년(선조 27) 이조 판서를 추증하였고, 1605년(선조 38) 동래읍성 남문 안에 세워 그를 제사 지내던 송공사에 1624년(인조 2) 충렬사(忠烈祠)라는 사액을 내렸다. 또한 1657년(효종 8) 충렬(忠烈)이라는 시호를 내렸고, 1681년(숙종 7) 의정부 좌찬성을 추증하였다.

송상현 순절비는 임진왜란 때 순절한 송상현 동래 부사 등을 제사 지내기 위해 17세기에 동래읍성 밖 농주산에 전망 제단을 설치할 때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1742년(영조 18) 송공단이 건립되면서 이곳으로 이전되었으나, 일제 강점기에 없어지고 그 자리에 ‘송공단’이란 표지석만 남게 되었다. 2005년 송공단이 정비되면서 표지석은 바깥 대문 안쪽으로 옮기고, 송상현 순절비는 새로 건립하였다.

송상현 순절비는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 229-78번지 일원의 송공단 정단에 있다.

직육면체의 단(壇) 위에 사각형의 좌대(座臺)를 놓고, 그 위에 화강석으로 만든 비신(碑身)과 지붕 모양의 덮개돌인 가첨석(加檐石)을 얹었다. 비의 크기는 높이 230㎝, 너비 54㎝, 두께 25㎝이고 단은 가로 210㎝, 세로 119㎝, 높이 88㎝이다.

비의 앞면에 ‘충렬공 송상현 순절비(忠烈公宋象賢殉節碑)’라고 새겨져 있다.

부산광역시 동래구가 소유하여 관리한다. 1972년 6월 26일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11호로 지정된 송공단의 부속 단비이다.(출처 : 향토문화전자대전-부산역사문화대전)

동쪽 1단 동북쪽 뒤에는 송상현의 유언에 따라 끝까지 살아남아 그의 시신을 찾아 잘 묻어 준 동래부 노비 철수와 매동의 충성을 본받자는 의미에서 1800년(정조 24)에 세운 효충비(效忠碑)[고관노철수매동효충비(古官奴鐵壽邁同效忠碑)] 하나가 따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