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목사(開目寺.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태장리 888(개목사길 362))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태장리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구 본사 고운사 소속 사찰.
개목사란 이름에 관련하여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해 오는데 『영가지(永嘉誌)』에 의하면 원래는 절 이름을 흥국사(興國寺)라 하였다 한다.
당시 경상북도 안동 지역에 앞을 보지 못하는 소경들이 많았는데 절 건립 후 비보사찰을 삼은 후에 소경들이 없어졌다 하여 개목사(開目寺)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또 다른 이야기는 조선 초기의 재상인 맹사성(孟思誠, 1360~1438)이 안동부사로 부임해 와서 보니 경상북도 안동의 지세가 눈병 환자가 많을 형상이어서 개목사로 이름을 바꾸었더니 눈병 환자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고려 후기 충신인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1337~1392)가 한때 개목사에서 10년간 수학했다고 하며, 훗날 정몽주가 개목사(당시 흥국사)를 추억하며 지은 시구가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옛날 흥국사에서 공부할 적에(昔日讀書興國寺)
때때로 밤이면 꿈속에서 청산에 놀러 갔네( 時時夜夢到靑山)
옛적 친하던 주지 스님 생각 간절하니(舊交最憶堂頭老)
틈내어 나를 위해 한번 다녀가구려(爲我乘聞一往還).’
신라 문무왕(文武王, ?~681) 때 능인대사가 개목사 뒤에 있는 천등굴에서 수도하던 중 천녀(天女)의 도움으로 도를 깨우치고 건립하였다고 한다.
창건 당시에는 큰 규모의 사찰이었으나 점차 쇠락해져 갔으며, 개목사의 창건 이후의 연혁은 전하는 것이 없다.
개목사 원통전(圓通殿)은 1969년 중수할 때 나온 상량문의 천순 원년(天順 元年)으로 보아 1457년(세조 3)에 지은 것으로 보인다.
사찰 출입문으로 이용되는 누문은 1819년(순조 19)에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천등산 꼭대기 가까이 자리하고 있다는 지리적 이점으로 인해 개목사에서는 매년 1월 1일 아침 해맞이 행사를 하고 있다.
개목사는 안동시 서후면 태장리 천등산 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사방에 돌담을 쌓아 놓은 개목사의 입구에는 먼저 단층 누각 형태의 누문이 위치하고 있고, 이곳을 지나면 정면에 원통전과 우측 후면에 산신각이 자리하고 있다. 원통전의 좌측에는 요사가 자리하고 있고 우측 돌담 밖으로 정면 5칸, 측면 2칸의 최근 건립한 요사 1동이 위치해 있다.
개목사에는 특이한 구조의 법당인 보물 제242호 개목사 원통전이 자리하고 있다. 조선 전기의 형식을 지닌 개목사 원통전은 정면 3칸, 측면 1.5칸의 주심포(柱心包) 양식으로, 기단은 잡석 위에 장대석을 돌렸으며 주초석은 자연석의 덤벙 주초이고 기둥은 약한 배흘림의 두리기둥이다.
지붕은 맞배지붕에 겹처마인데, 측면에는 풍판(風板)을 설치하였다.(출처 : 한국학중앙연구원-향토문화전자대전)
안동 개목사 원통전(安東 開目寺 圓通殿. 보물. 경북 안동시 서후면 개목사길 362, 개목사 (태장리))
개목사의 원래 이름은 흥국사로 통일신라 신문왕(재위 681∼692) 때 의상대사가 세웠다고 한다. 전설에 따르면 의상대사가 절 뒤에 있는 천등굴에서 천녀(天女)의 기적으로 도를 깨치고 절을 세웠다고 하는데 ‘개목사’라는 절 이름은 조선시대에 바꾼 이름이라고 전한다.
관세음보살을 모셔 놓은 원통전은 1969년 해체·수리시 발견한 기록에 ‘천순원년(天順元年)’이라는 글귀가 있어 세조 3년(1457)에 지은 것으로 짐작한다.
규모는 앞면과 옆면이 3칸씩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다. 지붕 무게를 받치기 위해 기둥 윗부분에 간결하게 짜은 구조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이다. 건물 안쪽 천장은 뼈대가 보이는 연등천장이고 법당 안을 온돌방으로 만들어 놓아 조선 전기 건물로는 보기 드문 예例이다.
전체적으로 조선 전기 건축양식의 특징을 잘 간직하고 있어 건축사 연구에 소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출처 : 문화재청)
안동 개목사 원통전(安東開目寺圓通殿.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태장리 888(개목사길 362))
개목사(開目寺) 원래 이름은 흥국사(興國寺)로, 통일신라 신문왕(神文王, ?~692) 때 의상대사(義湘大師, 625~702)가 지은 것이다.
전설에 따르면 의상대사가 천등굴에서 천녀(天女)의 도움으로 도를 깨치고 흥국사를 세웠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절의 이름을 개목사로 바꾼 것은, 안동 지방에 맹인이 많았는데 풍수지리설에 따라 개명비보(改名裨補)함으로써 맹인들이 눈을 뜨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안동 개목사은 1969년 중수할 때 나온 상량문에 ‘천순원년(天順元年)’이라고 적혀 있어 1457년(세조 3)에 지은 것으로 보인다.
과거에는 응진전(應眞殿) 중앙 칸은 법당이었고, 좌우 협간(夾間)은 돌방이었으며, 서쪽에는 1.5칸 크기의 부엌을 덧달았다고 한다. 그러나 1969년 해체, 보수하면서 부엌과 방 구조를 없애고 모두 마루를 깐 법당(法堂)으로 만들었다.
안동 개목사 원통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집로서 관음보살을 안치하고 있는 소규모 법당이다.
원통전은 툇간을 맞물린 전퇴간(前退間) 5량 구조에 주심포계(柱心包系) 양식으로 되어 있다.
기단은 잡석 위에 장대석을 돌렸으며 자연석으로 덤벙주초를 놓았다.
평면과 정면은 똑같은 넓이의 칸으로 되었으나, 측면은 본 칸 1칸에 전퇴 1칸을 덧붙여 매우 어색한 모양이 되었다.
기둥은 배흘림이 매우 약한 둥근기둥으로 전면의 각 기둥 사이에 정자살문[井字살門]을 달았는데 중앙 칸은 4분합, 좌우 협간(夾間)은 2분합으로 되어 있다.
후면 북쪽 협간에 한 짝의 정자살문을 단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 벽으로 처리하였다.
내부와 툇간 바닥에는 마루를 깔고 내부 중앙 칸 후면에는 조그마한 불단(佛壇)을 마련하여 그 위에 관음보살좌상을 안치하였다.
후불벽에는 석가모니 탱화를 걸어 놓았으며, 불상 위로는 간단한 형식의 닫집[唐家]이 가설되어 있다.
안동 개목사 원통전은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242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보물로 재지정 되었다. 현재 소유 및 관리는 개목사에서 맡고 있다.
안동 개목사 원통전은 전체적으로 조선 전기 건축 양식의 특징을 잘 간직하고 있어 건축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출처 : 한국학중앙연구원-향토문화전자대전)
안동 개목사 원통전(安東開目寺圓通殿.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태장리 888(개목사길 362))
개목사(開目寺) 원래 이름은 흥국사(興國寺)로, 통일신라 신문왕(神文王, ?~692) 때 의상대사(義湘大師, 625~702)가 지은 것이다.
전설에 따르면 의상대사가 천등굴에서 천녀(天女)의 도움으로 도를 깨치고 흥국사를 세웠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절의 이름을 개목사로 바꾼 것은, 안동 지방에 맹인이 많았는데 풍수지리설에 따라 개명비보(改名裨補)함으로써 맹인들이 눈을 뜨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안동 개목사은 1969년 중수할 때 나온 상량문에 ‘천순원년(天順元年)’이라고 적혀 있어 1457년(세조 3)에 지은 것으로 보인다.
과거에는 응진전(應眞殿) 중앙 칸은 법당이었고, 좌우 협간(夾間)은 돌방이었으며, 서쪽에는 1.5칸 크기의 부엌을 덧달았다고 한다. 그러나 1969년 해체, 보수하면서 부엌과 방 구조를 없애고 모두 마루를 깐 법당(法堂)으로 만들었다.
안동 개목사 원통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집로서 관음보살을 안치하고 있는 소규모 법당이다.
원통전은 툇간을 맞물린 전퇴간(前退間) 5량 구조에 주심포계(柱心包系) 양식으로 되어 있다.
기단은 잡석 위에 장대석을 돌렸으며 자연석으로 덤벙주초를 놓았다.
평면과 정면은 똑같은 넓이의 칸으로 되었으나, 측면은 본 칸 1칸에 전퇴 1칸을 덧붙여 매우 어색한 모양이 되었다.
기둥은 배흘림이 매우 약한 둥근기둥으로 전면의 각 기둥 사이에 정자살문[井字살門]을 달았는데 중앙 칸은 4분합, 좌우 협간(夾間)은 2분합으로 되어 있다.
후면 북쪽 협간에 한 짝의 정자살문을 단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 벽으로 처리하였다.
내부와 툇간 바닥에는 마루를 깔고 내부 중앙 칸 후면에는 조그마한 불단(佛壇)을 마련하여 그 위에 관음보살좌상을 안치하였다.
후불벽에는 석가모니 탱화를 걸어 놓았으며, 불상 위로는 간단한 형식의 닫집[唐家]이 가설되어 있다.
안동 개목사 원통전은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242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보물로 재지정 되었다. 현재 소유 및 관리는 개목사에서 맡고 있다.
안동 개목사 원통전은 전체적으로 조선 전기 건축 양식의 특징을 잘 간직하고 있어 건축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출처 : 한국학중앙연구원-향토문화전자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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