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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안동

봉정사 영산암(鳳停寺靈山庵)

노촌魯村 2022. 2. 14. 18:29

우화루

봉정사 영산암(鳳停寺靈山庵. 시도민속문화재.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태장리 901[봉정사길 222])

천등산 기슭에 있는 봉정사는 신문왕 2년(682) 의상대사가 지었다고 한다. 부석사를 세운 의상대사가 부석사에서 종이로 봉황새를 만들어 날려 보냈는데, 그 새가 내려앉은 자리에 절을 짓고 봉정사라 이름 지었다는 전설이 전하여 온다.

봉정사의 영산암은 지조암과 함께 봉정사의 부속암자로 응진전, 영화실, 송암당, 삼성각, 우화루·관심당 등 5동으로 이루어져 있고, 건물의 구체적인 건립연대는 알 수 없으나 '봉정사영산암향로전창건기'와 봉정사영산전중수기'등의 사료로 볼 때 19세기 말로 추정된다.

건축적으로는 크게 주목할 만한 부분은 없으나 우화루와 송암당 등에서 폐쇄적인 공간을 개방적으로 처리한 것이나 삼성각 앞의 조경수법도 경직될 수 있는 공간을 부드럽게 유도한 것 등은 매우 뛰어난 공간처리 수법으로 볼 만하다.(출처 : 문화재청)

 

봉정사의 요사인 무량해회에서 동쪽으로 약 10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있다.

영산암의 '영산'이란 원래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법화경을 설(設)하시던, 인도 왕사성 근방에 있는 영축산을 말한다.

법화경을 설법하실 때의 그 모임을 일러 불교에서는 영산회상이라 이름하며 이 모임의 장면을 영산회상도라 하여 법당의 후불탱화로 많이 봉안된다.

봉정사를 찾는 많은 사람들이 덕휘루를 통하여 대웅전과 극락전을 둘러보고 대부분 이곳을 찾지 못하고 돌아서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마음의 문을 열고 자연에 동화되며 산사의 고즈넉함을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은 사립문을 지나 요사채 뒤쪽 산자락에 자리 잡은 이곳까지 발길이 닿는다.

영산암의 출입문인 우화루 밑을 지나 암자의 안마당에 닿으면 고건축의 미학을 전혀 모르는 문외한도 우리 한옥의 아름다움과 다양한 표정을 담고 있는 마당의 멋스러움에 넋을 빼앗기게 된다.

마당의 가장자리에 자그마한 동산을 만들어 기암괴석을 옮겨놓고 그 위에 멋스럽게 휘어진 고목인 향나무와 관상수를 비롯하여 계절을 다투며 다양하게 피어나는 꽃나무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또한 각 건물에는 툇마루와 누마루 등이 설치되어 서로 끊어질 듯 이어져 있다. 이러한 것들의 다양함은 혼돈 속에서 새로운 질서를 재창조하는 신비감마저 느끼게 한다.(출처 : 봉정사)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태장리에 있는 봉정사에 딸린 조선 후기 암자인 영산암은 자연 친화적이며 유가적 생활공간과 닮은 특이한 불교 암자이다.

영산암이라는 이름은 석가불이 『법화경』 등의 경전을 설법하였던 영취산에서 유래하는데, 보통 줄여서 영산이라 부른다.

석가불을 봉안하고 있는 대웅전의 「후불탱화」는 영취산 위의 『법화경』 설법 장면을 그린 것인데, 흔히 「영산회상도」라고 한다.

봉정사 영산암은 영취산에 모여 석가불의 설법을 듣는 나한에 초점을 두어 응진전을 중심 건물로 보기 때문에 영산암이라 하였다고 볼 수 있다.

봉정사 영산암의 구체적인 건립 연대는 알 수 없으나 「봉정사영산암향로전창건기」와 「봉정사영산전중수기」 등의 사료로 볼 때 19세기 말로 추정된다.

봉정사 영산암 입구 위에 걸린 ‘우화루’라는 현판은 원래 극락전의 입구에 달린 것이었는데, 1969년 보수 때 극락전 출입문과 담을 허물었기 때문에 현재의 위치로 옮겨 달았다.

2000년 봉정사 대웅전의 해체·수리·복원에 이어 봉정사 영산암도 대대적인 수리를 하여 최근 정돈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수리하는 과정에서 응진전 외벽의 불화가 없어졌으며, 우화루 아래층 좌우의 칸은 과거에 『화엄경』 등의 장판을 보존하였던 곳이었는데, 최근 장판들도 어디로 갔는지 알 길이 없다.

봉정사 영산암은 응진전, 송암당, 우화루, 삼성각 등 몇 개의 건물이 네 면을 울타리처럼 두른 모양으로 폐쇄적인 형상을 띠고 있다.

나한을 모시는 응진전, 산신·독성·칠성신을 함께 봉안한 삼성각, 앞면을 가로지르는 2층 누각형 건물인 우화루, 그 밖에 영화실과 승려들의 수행 및 거처인 송암당, 관심당 등 5동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우화루의 낮고 비좁은 누하문을 들어서면 구릉지의 자연적 모습이 그대로 봉정사 영산암의 뜰이 된다.

자연 공간을 내부로 끌어들여 그대로 암자의 분위기를 자연에 동화되도록 만들었다. 따라서 불교의 경건하고 엄숙한 분위기보다는 마치 유가 선비들의 생활공간 가까이에 만든 정자에 있는 기분이 든다.

봉정사 영산암 외곽은 우화루, 송암당, 관심당, 영화실이 모두 마루로 연결되어 영산암을 감싸고 있는 모습이다.

이것은 1969년 대대적인 보수 공사 이전의 봉정사의 모습과도 같다. 고금당, 화엄강당, 무량해회의 삼면이 모두 마루로 연결되어 마당에 내려서지 않고 건물 간의 이동을 용이하게 하였는데, 조선조 후반까지의 봉정사 가람 배치는 이와 같이 삼면을 마루로 서로 연결한 특징적 모습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봉정사 영산암은 봉정사 안의 또 다른 작은 봉정사라 할 수 있다.

2001년 11월 1일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126호로 지정되었다. 현재 소유자 및 관리자는 봉정사이다.

봉정사 영산암의 자연과 조화된 분위기와 공간 배치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건축적으로 크게 주목할 만한 부분은 없으나 삼성각 앞의 조경 수법은 경직될 수 있는 공간을 부드럽게 유도한 것으로 매우 뛰어난 공간 처리 수법으로 볼 만하다.(출처 : 한국학중앙연구원–향토문화전자대전)

                   

우화루의 낮고 비좁은 누하문을 들어서면 구릉지의 자연적 모습이 그대로 봉정사 영산암의 뜰이 된다.
송암당訟岩堂
관심당觀心堂

마당의 가장자리에 자그마한 동산을 만들어 기암괴석을 옮겨놓고 그 위에 멋스럽게 휘어진 고목인 향나무와 관상수를 비롯하여 계절을 다투며 다양하게 피어나는 꽃나무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또한 각 건물에는 툇마루와 누마루 등이 설치되어 서로 끊어질 듯 이어져 있다. 이러한 것들의 다양함은 혼돈 속에서 새로운 질서를 재창조하는 신비감마저 느끼게 한다.

         

영산전

영산암의 '영산'이란 원래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법화경을 설(設)하시던, 인도 왕사성 근방에 있는 영축산을 말한다.

법화경을 설법하실 때의 그 모임을 일러 불교에서는 영산회상이라 이름하며 이 모임의 장면을 영산회상도라 하여 법당의 후불탱화로 많이 봉안된다.

봉정사 영산암은 영취산에 모여 석가불의 설법을 듣는 나한에 초점을 두어 응진전을 중심 건물로 보기 때문에 영산암이라 하였다고 볼 수 있다.

              

영산전 불상
나한상
나한상
불상 머리 위 용 벽화
영산전 벽화
영산전 벽화(내부)

 

영산전 벽화(내부)
영산전 벽화(내부)
영산전 연등천장
영산전 외벽 벽화
삼성각三聖閣
산신탱화. 칠성탱화. 독성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