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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나라사랑 태극기 바로알기" 전시회 -2025년 3·1절 106주년-

노촌魯村 2025. 2. 28. 22:26

"나라사랑 태극기 바로알기" 전시회

 전시 기간 : 2025.2.28(금)부터 3.6(목)까지

장소 :  대구 중구 노인복지관 4층

  2025. 2. 28(금)은 대구행정동우회 봉사단원들이 대구중구노인복지관에서 급식봉사하는 날입니다. 그리고 내일은 제106회 3.1절 기념일입니다.
  이러한 뜻깊은 기념일을 앞두고 '광복소나무사랑모임 봉사단 회장으로 있으면서 2012년부터 대구 동구 평광동 '광복소나무' 관리. 홍보와 보물 등 태극기 사진 전시회를 비롯하여 애향, 애국활동을 실천하고 있는 최주원 회장께서 대구중구노인복지관에 보물. 문화재 태극기 전시를 할 것을 복지관 측과 협의하여 2025년 2월 28일(금) 부터 3월 6일(목)까지 전시하기로 하였습니다.
  대구행정동우회 급식봉사단 일행과 복지관 여명화 부장이 참여한 가운데 간소한 전시회 행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이 자리에는 대경상록자원봉사단 김성호 단장 등 영상반 일행도 자리를 같이하여 이처럼 훌륭한 행사를 동영상과 사진 등으로 기록을 남기게 되어 봉사단으로서는 매우 뜻깊게 생각합니다.

행정동우회 이영순 봉사단장 인사
복지관 여명화 부장 축하 인사
최주원 회장 인사 및 전시물 안내
데니 태극기(보물. 데니 太極旗)

데니 태극기(보물. 데니 太極旗.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로 137 (용산동6가, 국립중앙박물관))

  ‘데니 태극기’는 고종의 외교 고문으로 활동한 미국인 오웬 니커슨 데니(Owen Nickerson Denny, 1838∼1900)가 소장했던 것으로, 1891년 1월 본국으로 돌아가면서 가지고 간 것을 1981년 그의 후손이 우리나라에 기증해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학계에서는 이 태극기가 데니의 유품 중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에, 그가 조선에 마지막으로 머문 해인 1890년을 제작의 하한연대로 보고 있다.

  데니는 1886년 이홍장(李鴻章)의 추천을 받아 묄렌도르프의 후임으로 조선 정부의 외교 및 내무 담당 고문으로 부임해 4년 동안 고종의 휘하에서 외교ㆍ법률ㆍ경제 분야의 정책을 입안하고 추진하는 실무를 담당하면서 대한제국의 주권을 주장한 외교관이다.

  우리나라에서 국가를 상징하는 국기를 처음 만들어 사용한 시기는 1882년 9월이다.

  1883년 3월 6일 고종이 전국에 국기를 사용토록 공식적으로 선포하였으나, 당시 제작된 태극기 실물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데니 태극기’는 우리나라 국기 변천사를 연구하는데 매우 귀중한 자료가 된다.

  ‘데니 태극기’는 제작기법 측면에서도 근대문물이 밀려오던 19세기 말 정세가 반영되었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다. 즉, 당시 서양 국기를 제작하는 방법을 참조한 것으로, 전통적인 손바느질이 아닌 상하 90cm 정도 크기의 넓은 폭의 면직물을 바탕재료로 하여 재봉틀을 사용해 박음질했다는 점, 청색ㆍ홍색 태극과 청색의 4괘(四卦)를 부착하는 데 있어 바탕천을 오려내고 두 줄로 박음질해 멀리서도 문양이 또렷하게 보이도록 시각적 효과를 꾀한 점 등 초창기 국기 제작법을 적용해 매우 정교하고 정성껏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데니 태극기’는 국기를 제정해 독립국임을 세계에 알리고자 했던 대한제국 외교적 노력을 증명하는 유물이자, 일제강점기 독립을 향한 열망의 상징이 된 태극기의 기원을 보여준다는 점, 세로 182.5cm, 가로 262㎝로 현재 우리나라에 있는 옛 태극기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클 뿐 아니라 우리나라 국기 제정의 초창기 역사를 보여주는 가장 오래된 태극기라는 점에서 뜻깊은 자료이다.(출처 : 국가유산청)

데니 태극기(보물. 데니 太極旗)
김구 서명문 태극기(보물. 金九 署名文 太極旗 )
김구 서명문 태극기(보물. 金九 署名文 太極旗 )

김구 서명문 태극기(보물. 金九 署名文 太極旗.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독립기념관로 1 (목천읍, 독립기념관))

  ‘김구 서명문 태극기’는 1941년 3월 16일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위원회 김구(金九, 1876∼1949) 주석이 독립의지를 담은 글귀와 서명을 써 친분이 있던 벨기에 신부 매우사(梅雨絲, 본명 샤를 미우스 Charles Meeus)에게 준 것이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간 매우사 신부는 도산 안창호 선생의 부인 이혜련 여사에게 이 태극기를 전달했고, 후손들이 보관해오다 ‘안창호 유품’ 중 하나로 1985년 3월 11일 독립기념관에 기증되었다.

  세로 44.3cm, 가로 62cm 아담한 크기의 비단 천에 청색과 홍색 천으로 태극을 만들어 붙이고, 흑색 천으로 4괘를 덧대어 제작한 태극기이다.

  깃대는 오른쪽에 천을 덧대어 만들었으며, 괘는 가로 상단에 건괘(乾卦)와 감괘(坎卦), 하단에 이괘(離卦)와 곤괘(坤卦)가 배치되어 있다.

  깃대와 괘의 사이에는 김구 선생 친필로 묵서 4줄 143자가 쓰여 있고 마지막에 ‘김구(金九)’라고 새겨진 작고 네모난 인장이 찍혀 있다.

  이 태극기의 가장 큰 역사적 의의는 김구와 안창호로 대표되는 일제강점기 해외 독립운동가들의 활동과 한국인들의 광복에 대한 염원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는 사실이다.

  서명문에서 김구는 망국의 설움에서 벗어나 자유와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 광복군을 도와줄 것을 강하게 호소하였다.

  ‘김구 서명문 태극기’는 지금까지 알려진 19세기∼20세기 초 제작 태극기 중 정확한 제작시기가 알려진 유일한 자료라는 점, 대한민국의 독립을 열망한 독립운동가들의 간절한 신념이 대표적으로 담겨 있다는 점, 1942년 6월 대한민국임시정부가 태극기의 제작규정을 통일하기 직전에 제작되어 태극기의 변천 과정을 살펴보는 데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출처 : 국가유산청)

* 김구 서명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매우사 신부에게 부탁하오. 당신은 우리의 강복 운동을 성심으로 돕는 터이니 이번 행차의 어느 곳에서나 우리 한인을 만나는 대로 이 의구(義句, 올바른 글)의 말을 전하여 주시오. 지국(止國, 망국)의 설움을 면하려거든, 자유와 행복을 누리려거든, 정력ㆍ인력ㆍ물력을 광복군에게 바쳐 강노말세(强弩末勢, 힘을 가진 세상의 나쁜 무리)인 원수 일본을 타도하고 조국의 독립을 완성하자. 1941년 3월 16일 충칭에서 김구 드림”(출처 : 국가유산청)

김구 서명문 태극기(보물. 金九 署名文 太極旗 )
서울 진관사 태극기(보물. 서울 津寬寺 太極旗)
서울 진관사 태극기(보물. 서울 津寬寺 太極旗)

서울 진관사 태극기(보물. 서울 津寬寺 太極旗. 서울특별시 은평구 진관길 73 (진관동, 진관사))

  ‘서울 진관사 태극기’는 2009년 5월 26일 서울시 은평구 진관사의 부속건물인 칠성각(七星閣)을 해체ㆍ복원하는 과정에서 내부 불단(佛壇) 안쪽 벽체에서 발견된 것으로, 태극기에 보자기처럼 싸인 독립신문류 19점이 함께 발견되었다.

  신문류는 「경고문」ㆍ『조선독립신문』ㆍ『자유신종보(自由晨鐘報)』ㆍ『신대한(新大韓)』ㆍ『독립신문』 등 5종으로, 1919년 6월 6일부터 12월 25일까지 발행된 사실로 미루어 진관사 소장 태극기 역시 3.1만세운동이 일어나고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된 1919년 즈음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학계에서는 태극기를 숨긴 인물로 진관사 승려였던 백초월(白初月) 혹은 그와 밀접한 연관이 있던 승려로 추정하고 있다.

  진관사 태극기의 가장 큰 특징은 일장기 위에 태극과 4괘의 형상을 먹으로 덧칠해 항일(抗日) 의지를 극대화했다는 점이다. 특히, 왼쪽 윗부분 끝자락이 불에 타 손상되었고 여러 곳에 구멍이 뚫린 흔적이 있어 만세운동 당시 혹은 그 이후 현장에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따라서 현재 1919년에 제작된 태극기가 거의 알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이 태극기는 1919년에 제작된 실물이라는 자체만으로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 아울러 진관사 태극기와 함께 발견된 독립신문류에도 태극기와 태극문양 및 태극기 관련 기사가 실려 있어 더욱 의의가 있다. 특히, 태극과 4괘가 우주 만물의 기본 요소나 만물의 생성ㆍ변화ㆍ발전하는 모습을 의미한다는 기존의 견해와 달리, ‘힘과 사랑’을 토대로 ‘자유와 평등’을 온 세상에 실현해나가는 뜻으로 새롭게 해석한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처럼 독립신문은 당시 태극기에 대한 인식을 함께 살펴볼 수 있어 ‘진관사 태극기’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뿐 아니라 더 나아가 태극기의 변천사와 그 의미를 밝히는 데 중요한 근거를 제공해준다.

  ‘진관사 태극기’는 우리나라 사찰에서 최초로 발견된 일제강점기의 태극기로, 불교 사찰이 독립운동의 배후 근거지나 거점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형태상으로도 일장기 위에 태극의 청색부분과 4괘를 검정색 먹물로 덧칠해 항일 독립의지와 애국심을 강렬하게 표현했으며, 일장기 위에 태극기를 그린 유일하고 가장 오래된 사례라는 점에서 독립운동사에서 차지하는 상징적 의미가 매우 크다.(출처 : 국가유산청)

서울 진관사 태극기(보물. 서울 津寬寺 太極旗)
한국전쟁 피난민 태극기(韓國戰爭 避難民 太極旗)
한국전쟁 피난민 태극기(韓國戰爭 避難民 太極旗)

한국전쟁 피난민 태극기(韓國戰爭 避難民 太極旗. 경기도 등록문화유산. 경기도 동두천시 평화로2910번길 96-63 (상봉암동, 자유수호평화박물관))

∘ 동두천 자유수호평화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태극기는 한국전쟁기에 피난민이 구해준 미군에게 제공한 후 동두천시에 기증된 것으로 현존하는 태극기들은 대체로 태극문양이 선명하게 남아 있는 것과 달리 자유수호평화박물관 본은 붉은 색(양)이 거의 남아 있지 않고, 푸른 색(음)은 처음부터 검정색 물감으로 칠해져 있었던 점이 특이함.

∘ 태극에 사용된 검정색은 푸른 음 부분과 4괘 부분에 동일하게 사용되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시각적으로는 다르게 보이는데 이는 가운데 태극 부분이 일장기를 바탕으로 해서 제작한 것이기 때문에 먼저 칠해져 있는 붉은 부분에 덧바르면서 나타나는 결과로 보이며 건곤감리 4괘의 검정 색 안료와 동일한 안료를 사용했을 가능성이 커 보임.

∘ 바탕 천은 가운데 가지런히 이어붙인 손바느질 자국이 선명하고, 태극, 4괘에 밑그림용 연필자국이 보이며 천안 독립기념관 소장의 태극기 목판처럼 거의 정사각형에 가까운 비율인 점이 특징임.

∘ 한국전쟁 당시 북녘으로 부터 탈출하기 위해 피난민이 간직한 태극기로서 당시 긴박했던 역사적 비극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수 있는 것으로서, 상징과 역사적 의미. 그리고 콘텐츠를 제공해줄수 있다는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님.(출처 : 국가유산청)

남상락 자수 태극기(南相洛 刺繡 太極旗 )

남상락 자수 태극기(南相洛 刺繡 太極旗. 국가등록문화유산.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남화리 230)

독립운동가 남상락(1892~1943)이 1919년 4월 4일 독립만세 운동에 사용하기 위하여 부인과 같이 만든 전체가 손바느질로 제작된 희귀한 태극기이다. (출처 : 국가유산청)

남상락 자수 태극기(南相洛 刺繡 太極旗 )
‘불원복(不遠復)’ 태극기(不遠復 太極旗)

‘불원복(不遠復)’ 태극기(不遠復 太極旗. 국가등록문화유산. 충남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남화리 230번지 독립기념관)

  ­조선 말 전남 구례 일대에서 활약한 의병장 고광순(1848~1907)이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태극기로 '머지않아 국권을 회복한다'는 "不遠復" 글자가 수놓아져 있어 항일 독립운동과 관련하여 사료적 가치가 크다. (출처 : 국가유산청)

배설 유품(배설 遺品) 태극기

배설 유품(배설 遺品. 국가등록문화유산. 서울 종로구 세종로 139 동아일보 신문박물관)

「배설 유품」은 태극기 1점과 영국기 1점이다. 태극기는 배설의 사망 시기인 1909년 5월 이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발이 고운 옥양목 바탕에 오려 메우기 박음질 기법이 사용되었다. 가로 : 세로 비율 3 : 2 와 태극(음,양), 4괘(건, 곤, 이, 감)가 배치되어 태극기 형태를 제대로 갖추고 있다.

영국기는 대한매일신보 사옥에 게양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명주 바탕에 너비 35cm와 75cm 두 쪽을 이어 박음질하였다. 깃대면 쪽의 상, 하에 약 2cm 정도 크기의 가죽을 대고 그 안에 깃대 끈을 손바느질로 단단히 고정하였으며, 끝자락은 손상되었다.

배설 사망 후 배설의 부인인 마리 모드 게일(Mary Maude Gale)이 영국으로 가져갔던 것인데, 며느리 도로시(Dorothy Bethell) 여사가 보관하고 있던 것을 1987년 정진석이 배설의 유족으로부터 입수하여 동아일보 신문박물관에 기탁한 것이다.

「배설 유품」은 구한말 태극기 제작기법의 연구 자료이며, 일제강점기 항일운동 및 언론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출처 : 국가유산청)

배설 유품(배설 遺品 ) 영국기
명신여학교 태극기

명신여학교 태극기·현판·완문(明新女學校 太極旗·懸板·完文. 국가등록문화유산. 서울특별시 강남구)

순헌황귀비 엄씨가 1906년 5월 설립한 명신여학교(明新女學校)의 설립 초기 교사 자료인 태극기, 현판, 완문 3점의 유물로 교육사적 가치가 큰 유물이다.

태극기는 ‘明新女學校’라는 묵서와 함께 4괘와 태극문양을 틀을 사용하여 찍어낸 기법으로 제작한 것으로 당시로는 흔하지 않은 물감 사용 태극기라는 점, 4괘의 배치가 특이한 점, 교육현장에서 발견된 최초의 태극기라는 점에서 사료적 가치가 크다.

현판은 ‘明新女學校’ 글자를 양각으로 새겼고 네 가장자리는 조선시대 궁중 현판의 일반적인 형식에 따라 액틀을 붙였으며 채색으로 화초문(花草紋)과 운두문(雲頭紋)을 장식했다.

완문(完文)은 1907년 5월에 영친왕궁(英親王宮)에서 명신여학교의 운영자금을 마련해 주기 위해 토지를 하사한다는 내용의 공문서로 대한제국기 황실에서 근대교육 초창기에 설립된 학교의 재정을 후원했음을 증명하는 황실문서이다.(출처 : 국가유산청)

명신여학교 완문
명신여학교 완문
명신여학교 현판
명신여학교 태극기
강릉 선교장 소장 태극기(江陵 船橋荘 所藏 太極旗)

강릉 선교장 소장 태극기(江陵 船橋荘 所藏 太極旗. 국가등록문화유산.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강릉지방 청소년들 대상으로 근대지식 보급과 인재 양성 목적으로 설립한 동진학교에 민족의 정체성 상징이었던 태극기를 손수 제작하여 사용하였던 것으로 추정되는 태극기이다. 당시의 태극기의 형태, 제작기법, 게양한 모습 등을 알 수 있으며 태극기 변천사와 함께 민족 정체성 정신교육 자료로 가치가 매우 크며, 역사적 유래, 4괘와 양의 위치와 제작 방식, 게양 방식 등을 종합적으로 고찰할 때, 역사성과 희귀성이 높다. (출처 : 국가유산청)

강릉 선교장 소장 태극기(江陵 船橋荘 所藏 太極旗)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태극기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태극기(2013)(大韓民國 臨時議政院 太極旗(2013). 국가등록문화유산. 경기도 파주시 헤이리로 30 (탄현면, 국립민속박물관 파주))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의장과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위원 등을 역임한 김붕준(金朋濬, 1888∼1950) 일가가 소장하고 있는 태극기 3점은 대한민국임시정부정부공보 제75호(대한민단 24년 8월 20일)에 게시된 태극기와 유사한 형태다.

특히 재봉틀 박음질 제작기법이나 제작구도를 볼 때 중경 임시정부 시절 제작된 국가등록문화유산 '김구 서명문 태극기'와 비슷하여 일제강점기 항일운동사의 국가 표상적인 맥을 함께 할뿐 아니라 국기 변천사를 알 수 있어 역사적 가치가 크다. (출처 : 국가유산청)

태극기 목판(太極旗 木版 )

태극기 목판(太極旗 木版. 국가등록문화유산.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독립기념관로 1 (목천읍, 독립기념관))

­태극기를 찍어내기 위해 목재에 4괘와 태극문양을 새긴 목판으로 희귀할 뿐 아니라 당시 제작기법과 상황을 헤아릴 수 있는 것으로서 사료적 가치가 크다. (출처 : 국가유산청)

태극기 목판(太極旗 木版 )
한국광복군 서명문 태극기

한국광복군 서명문 태극기(국가등록문화유산.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독립기념관로 1 (목천읍, 독립기념관)

­광복군 제3지대 2구대에서 활동하던 문웅명(일명 문수열)이 간직한 태극기로 바탕에 결의를 다지는 글귀와 서명이 빼곡하고 나라사랑과 자유에 대한 굳건한 열망이 담겨있다. (출처 : 국가유산청)

한국광복군 서명문 태극기
제14회 런던올림픽 참가 페넌트

제14회 런던올림픽 참가 페넌트(第十四回 런던올림픽 參加 페넌트. 국가등록문화유산. 서울특별시 노원구 화랑로 727-00)

제14회 런던올림픽대회에 한국대표선수단이 가져간 페넌트(Pennant)로 약 150cm길이에 삼각형 모양을 하고 있으며, 페넌트의 좌측에 ‘KOREA’, ‘1948’이 적혀있고 태극기가 새겨져 있다.

중앙에는 ‘조선올림픽대표단’, 그 아래에 영문으로 ‘KOREAN OLYMPIC TEAM’이라고 써넣었다.

런던 올림픽 대회에서 우리나라를 당당히 KOREA라는 이름과 태극기를 알린 유물로 체육사적·역사적 가치가 높은 유물이다. (출처 : 국가유산청)

제14회 런던올림픽 참가 페넌트
제14회 런던올림픽 참가 페넌트
제14회 런던올림픽 참가 페넌트
제14회 런던올림픽 참가 페넌트
건국법정대학 학도병 서명문 태극기

건국법정대학 학도병 서명문 태극기(국가등록문화유산.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남화리 230)

­1950년 9월 1일 제3차 학도병 자원 시 부산의 건국법정대학 법률과 학생이 주축이 되어 서명한 태극기이다. 학도병들이 조국을 위해 몸바칠 것을 맹세하고 생사를 넘나드는 전쟁터에서도 고이 간직해 온 태극기로 가치가 크다. (출처 : 국가유산청)

건국법정대학 학도병 서명문 태극기
경주 학도병 서명문 태극기

경주 학도병 서명문 태극기(국가등록문화유산.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독립기념관로 1 (목천 읍, 독립기념관)

­한국전쟁 당시 경주에서 자원한 학병 19용사 등이 출정 전에 태극기에 각자 소감을 적고 서명 한 태극기로 학도병들의 굳은 의지와 각오가 표현되어 있다. (출처 : 국가유산청)

경주 학도병 서명문 태극기
유관종 부대원 태극기

유관종 부대원 태극기(劉官鍾 部隊員 太極旗. 국가등록문화유산.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남화리 230)

­유관종 소위가 1950년 10월 초 호남지구 진격 작전시 사용한 태극기로 바탕에 무운장구를 염원하는 글귀와 서명, 지명이 기록되어 있어 당시 전투 경로 등을 연구할 수 있다. (출처 : 국가유산청)

유관종 부대원 태극기
이철희 ‘사변폭발’ 태극기

이철희 ‘사변폭발’ 태극기(李鐵熙 事變爆發 太極旗. 국가등록문화유산.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독립기념관로 1 (목천읍, 독립기념관))

­한국전쟁 당시 특무상사 이철희의 태극기로 국군의 애국정신과 투철한 군인정신이 생생하게 표출되어 있고 치열했던 남·북의 진군경로 등이 기록되어 있어 한국전쟁사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이다. (출처 : 국가유산청)

이철희 ‘사변폭발’ 태극기
미 해병대원 버스비어 기증 태극기

미 해병대원 버스비어 기증 태극기(美 海兵隊員 버스비어 寄贈 太極旗. 국가등록문화유산. 경기도 하남시 덕풍동로 30 (덕풍동, 하남역사박물관))

­미 해병대 출신 버스비어(A. W. Busbea)가 한국전쟁 당시 우리시민에게 받아 전쟁기간 내내 군용트럭에 꽂고 다니다 귀국 시 갖고 돌아가 보관한 태극기이다.(출처 : 국가유산청)

미 해병대원 버스비어 기증 태극기
대경상록자원봉사단 영상반과 최주원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