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가유산청(청장 허민)은「가평 현등사 극락전(加平 懸燈寺 極樂殿)」등 부불전 6건과 「금산 영천암 무량수각(錦山 靈泉庵 無量壽閣)」등 요사채 4건을 국가지정 문화유산 보물로 지정하였다.
이번에 지정한 부불전과 요사채는 조선 중·후기(17~19세기)에 걸쳐 건립(建立) 및 중건(重建)된 것으로, 부불전*은 조선 후기 전통목조건축의 양식적 특징과 기법이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고, 요사채*는 사찰(寺刹)의 산중수행(山中修行)과 생활공간(生活空間)으로 건립되어, 시대에 따른 생활상 변화를 확인할 수 있어 역사적·예술적·학술적 가치가 높다.
* 부불전 : 부처·보살을 모신 중심불전과 이격되어 건립된 법당으로, 나한전, 영산전, 원통전, 비로전 등이 있음.
* 요사채 : 사찰에서 승려들이 거처하는 집(참선하는 선방, 예불 및 생활공간인 인법당 등)
국가유산청은 적극행정의 일환으로 불교계와 지방자치단체의 협력을 통해, 그동안 불교 건축유산 중에서 지정가치가 있음에도 불전(佛殿), 석탑(石塔), 석불(石佛)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소외되어 있던 부불전과 요사채에 대한 가치조사와 발굴을 진행하였으며, 이번 10건의 지정에 따라 향후 불교문화유산에 대한 국·내외 관심이 한층 높아지고, 나아가 지역 문화융성을 이끄는 새로운 동력이 되기를 기대한다.
▲ 가평 현등사 극락전(加平 懸燈寺 極樂殿)
가평 현등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봉선사의 말사(본사에서 갈라져 나온 절)로 정확한 창건연대는 기록으로 확인되지 않으나, 현재의 가람 배치는 1763년에 발생한 화재 이후 영조 41년(1765년) 중창된 것으로 추정된다.
극락전은 같은 해 중건된 건물로, 상량묵서*와 연륜연대 분석*을 통해 주요 목부재가 당시의 것임이 확인되었다. 관련 문헌*에 건립 계기와 과정, 참여 인물 등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고, 한국전쟁 이후 경기 북부 지역에 드물게 남아 있는 조선시대 불전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 ‘23년 해체보수 시 발견된 상량묵서: 건륭삼십년을유육월초칠일상량기문(乾隆三十年乙酉六月初七日上梁記文)
* 목부재 중 17점(기둥 9본, 보 4본, 도리 2본, 동자주 1본, 창호궁판 1본)이 1765년 사용 목재로 확인
* 『봉선본말사지 현등사 운악현등사사적(1772)』 및 『현등사 만취당 성조기(1767)』 등

▲ 괴산 각연사 비로전(槐山 覺淵寺 毘盧殿)
괴산 각연사(槐山 覺淵寺)는 『각연사 대웅전 상량문』 등의 기록과 보물 『괴산 각연사 통일대사탑』 및 『괴산 각연사 통일대사탑비』를 통해 고려 광종 때 유명한 고승인 통일대사(通一大師)에 의해 창건 또는 중창된 것으로 추정된다.
비로전은 정확한 창건 기록이 확인되지 않으나, 『중수상량문』의 기록과 건축 양식 및 세부기법 상 1499년에 중건된 건물로 판단되며, 이후 여러 차례 중수가 이루어졌다. 또한 『중수상량문』에는 화주(化主)와 시주(施主)자의 명단이 자세히 수록되어 있어 당시 중수 상황을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다포계 형식의 불전으로, 조선 전기 다포계 공포 특징을 잘 보여준다. 기둥에는 중심부가 굵고 위아래로 갈수록 가늘어지는 배흘림 기법이 나타나며, 지붕 용마루의 길이가 짧은 형태로 구성된 점 등은 고식(古式)수법을 잘 보여주고 있다. 건물 하부의 초석을 비롯한 석재의 가공 수법과 형태를 통해 고려 초기 양식의 부재가 재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으며, 이는 학술적·건축사적으로 높은 가치를 지닌다.

▲ 고창 선운사 영산전(高敞 禪雲寺 靈山殿)
고창 선운사(高敞 禪雲寺)는 577년(백제 위덕왕 24)에 창건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영산전은 1474년(성종 5) 2층의 장륙전(丈六殿)으로 조성한 이후, 정유재란(1597) 때 소실된 것을 1713년(숙종 39) 2층 각황전(覺皇殿)으로 재건하였으나, 1751년(영조 27) 화재로 다시 소실되어 이듬해 재건하였다.
이후 1821년(순조 21)에 2층 각황전이 퇴락됨에 따라 단층의 영산전(靈山殿)*으로 개축하였으며, 이러한 변화과정에 대한 기록이 잘 남아 있고 다른 건물에서는 보기 힘든 독창성을 보인다.
* 석가모니가 영축산에서 법화경을 설하는 법회 장면이 형상화되어 있는 불교건축물로 내부에는 석가모니와 나한상을 모시고 있음.

▲ 순천 선암사 원통전(順天 仙岩寺 圓通殿)
순천 선암사(順天 仙岩寺)는 2018년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태고종(太古宗) 수행총림으로 「순천 선암사 대웅전」 등 14건의 국가유산(보물)을 보유하고 있다.
원통전의 초창(初創) 기록은 없으나, 1597년 정유재란으로 소실되었고, 1698년(숙종 24) 중건 후 화재로 소실과 중건을 반복하다가 1828년(순조 28) 재건하였는데, 이 당시 왕실원당(王室願堂)*의 역할을 겸하였던 것으로 확인된다.
* 조선시대 선왕·선후의 명복과 안녕을 기원하기 위한 건물로, 1788년(정조 12) 선암사에 세자탄생 발원기도를 명하였고, 이후 세자(순조)가 6세에 직접 쓴 「대복전(大福田)」 글씨를 내렸는데, 순조 즉위 원년(1801) 원통전에 걸게 하여 현재도 원통각이라는 현판과 함께 걸려 있다.
선암사 원통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규모에 정면 1칸을 앞으로 돌출시킨 ‘丁’자형이고, 내부에 별도로 마련된 장에 불상을 모시는 감실형이며, 배면을 제외한 삼면이 개방된 보기 드문* 평면형식의 건물이다. 다만, 일제강점기 이후 벽체와 창호에 일부 변화가 확인되었다.* 꽃살문 창호와 호남지역의 특징이 반영된 푸른색 위주의 단청과 민화풍의 별화 등은 예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
* 유사한 평면 형식으로는 여수 흥국사 원통전(지방유형문화유산)과 2025년 3월 화재로 소실된 의성 고운사 연수전(보물)이 있음.
* 1930년대 사진 자료에 따르면 중앙의 불상을 모신 칸의 앞면과 양옆 칸이 모두 개방된 형태였으나, 현재는 벽체가 설치되어 있음.

▲ 순천 송광사 응진당(順天 松廣寺 應眞堂)
순천 송광사는 우리나라 삼보사찰(三寶寺刹) 중 승보사찰(僧寶寺刹)로서 국보 「순천 송광사 국사전」 등 20건의 국가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순천 송광사 응진당은 1504년(연산군 10)에 창건되었고 이후 1623년(인조 원년) 중수(重修)한 건물로, 내부에 보물「순천 송광사 목조석가여래삼존상 및 소조 16나한상」과 「석가모니후불탱·십육나한탱」이 봉안되어 있는 등 역사적 가치가 크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익공계 맞배지붕 건물로 다양한 고식(古式)기법이 잘 남아 있다.

▲ 경주 기림사 응진전(慶州 祇林寺 應眞殿)
경주 기림사는 불국사(佛國寺)의 말사로 신라 선덕여왕 때 창건하였다고 전해진다. 경주 기림사 응진전은 『기림사중창기』(1705) 등의 기록을 통해 1649년(효종 원년)에 중창되었음을 알 수 있으며, 1729년 오백나한을 봉안 후, 현재까지 큰 훼손이나 변형 없이 유지하고 있다.
응진전은 장대석을 한단 쌓은 기단 위에 정면 5칸, 측면 1칸, 겹처마 맞배지붕의 다포식 건물로 측면에 높은 기둥(高柱)을 사용하지 않고 내부와 같이 하나의 보로 구성한 것은 유례가 드물다. 공포는 조선 중기 건물의 특징이 잘 나타나고 있으며, 화려한 초각 장식은 조선 후기의 양식으로 예술적 가치가 높다.

▲ 금산 영천암 무량수각(錦山 靈泉庵 無量壽閣)
금산 영천암은 마곡사(麻谷寺)의 말사인 보석사(寶石寺)의 산내암자이고, 2000년 해체보수 과정에서 종도리에서 발견된 「진악산영천암중수상량문」과 상량묵서* 기록에 따라 영천암 무량수각은 1786년(정조 10)에 중수(重修)된 건물임을 알 수 있다.
* 건륭오십이년병오삼월십일일묘시입주, 이십일일묘시상량근봉(乾隆五十二年丙午三月十一日卯時立柱, 二十一日卯時上樑謹封)
영천암 무량수각은 산중수행과 생활이 가능하도록 온돌방에 불상을 안치하고 예불을 드릴 수 있는 공간을 구성한 인법당(因法堂)*으로, 당대 암자의 사회, 문화, 종교적 시대상을 반영함과 동시에 임진왜란 때 활동한 의병승장 영규대사와 깊은 관련*이 있는 장소로 역사적 가치가 크다.
* 큰 법당이 없는 사찰이나 암자에서 승려가 거처하는 방에 불상을 모신 집
* 1835년 낙봉대사가 영천암 서남쪽 기슭에 영규대사와 무경대사 및 제자들의 진영을 모신 의선각(영각)을 건립, 영천암은 불교와 유교적 요소가 결합된 춘추제향을 지내고, 지역사회에 교류하는 장소가 됨.
법당의 상부에 다락을 들여 공간을 입체적으로 사용하고, 법당 후면 퇴칸에 불단을 꾸미면서 불단 상부만 반자를 높여 닫집과 같은 느낌이 나도록 구성하는 등 한 동의 건물에 필요한 공간을 압축적으로 구성·사용하는 방식은 학술적 가치가 크다.

▲ 청양 장곡사 설선당(靑陽 長谷寺 說禪堂)
청양 장곡사는 마곡사(麻谷寺)의 말사로 850년(통일신라 문성왕 12)에 보조선사(普照禪師)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며, 장곡사 설선당은 사찰 승려의 생활 및 수행공간으로 창건시기를 알 수 있는 기록은 없으나, 2021년 해체보수 과정에서 실시한 연륜연대 분석*을 통해 비교적 이른 시기인 1569년(선조 2)에 중수(重修) 또는 중창(重創)된 것으로 추정된다.
* 기둥(6본), 동자주(2본), 다락귀틀(2본) : 1569년에 사용된 목재로 확인
설선당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으로 최초에는 정면 3칸, 측면 3칸이었으나, 생활의 변화에 따라 정면 2칸, 측면 3칸이 추가되었다. 이후 정면 3칸, 측면 1칸의 요사채가 배면으로 증축되어 “ㄴ”자형의 건물이었으나, 최근(2021~2022년) 수리과정에서 본채와 선방을 분리하였다.
공포는 주심포 양식이고, 최초 건립된 정면 3칸의 살미*는 조선 중기 이전의 양식을 갖추고 있으며, 이후 증축된 정면 2칸은 살미 위에 연꽃을 조각한 형태로 이와 같은 양식은 조선 후기의 특징이다.
* 살미: 공포를 구성하는 부재 중 기둥 머리 위에 보 방향으로 중첩해 설치한 직사각형(장방형) 단면의 긴 부재

▲ 부안 내소사 설선당과 요사(扶安 來蘇寺 設禪堂과 寮舍)
부안 내소사는 선운사(禪雲寺)의 말사로 633년(백제 무왕 34)에 혜구두타(惠丘頭陀)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며, 내소사 설선당과 요사는 임진왜란 이후 1640년(인조 18) 내소사를 중창할 당시 건립되었고, 1821년(순조 22)에 수리된 뒤 1893년(고종 30)에 요사를 증축한 것으로, 승려들의 생활공간의 변화 형태와 모습을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다.
설선당과 요사는 ‘ㅁ’자형 평면으로, 설선당은 정면 6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이고, 전체 ‘ㅁ’자형 중에서 가장 먼저 건립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두 개의 맞배지붕 건물을 연결한 독특한 구조로 산중생활의 다양한 기능을 수용한 공간구성 방식과 자연지형을 이용하면서도 위계적 구성을 온전하게 갖추고 있다.

▲ 익산 숭림사 정혜원(益山 崇林寺 定慧院)
익산 숭림사는 금산사(金山寺)의 말사로 1345년(고려 충목왕 원년)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며, 숭림사 정혜원은 1644년(인조 22) 건립*된 것으로 부분적인 증축과 수리를 거쳤으나 건물의 가구는 건립 당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건립과정에 대한 기록을 통해 목재의 수급 과정이 명확하고, 철물, 소금 등 공사에 필요한 자재 및 물품 등의 조달방식 또한 알 수 있다. 더불어 승려 장인과 민간 장인이 공동으로 참여한 사실 등 17세기의 건축공사 내용을 살필 수 있다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가 크다.
* 정혜원 상량기문(1644) : 1589년(만력 19)에 산불로 정혜원이 소실되어 1591년 중창하였고, 1642년 3중창을 시작하여 1644년(순치 원년) 2월에 상량
구조와 공포의 양식에서는 17세기 서남해안 지역 사찰건축의 특징을 확인할 수 있어 학술적, 예술적 가치가 높다.

국가유산청은 이번에 보물로 지정한 사찰 부불전과 요사채가 체계적으로 보존·관리될 수 있도록 앞으로도 각 관리단체 및 지자체와 적극적으로 협조해나가는 적극행정을 이어갈 것이다.

□ 종 별 : 보물
□ 명 칭 : 가평 현등사 극락전(加平 懸燈寺 極樂殿)
□ 지정내용
ㅇ 소 재 지 : 경기도 가평군 조종면 현등사길 34 산163(운악리)
ㅇ 구조/규격 : 목구조 / 정면3칸, 측면3칸 / 팔작지붕
ㅇ 수 량 : 1동
ㅇ 조성연대 : 조선시대
ㅇ 소유자(관리자) : 현등사(현등사)
ㅇ 지정면적 : 52.07㎡
□ 지정사유
ㅇ 가평 현등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봉선사의 말사로 정확한 창건연대는 기록으로 확인되지 않으나, 현재의 가람 배치는 영조 41년(1765년) 중창된 것으로 추정된다.
ㅇ 극락전은 1763년 화재 이후 1765년에 중건된 건물로, 상량묵서*와 연륜연대 분석*을 통해 주요 목부재가 건립 당시의 것임이 확인되었다. 또한 관련 문헌*에 건립 계기와 과정, 참여 인물 등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가 높다. 더불어 한국전쟁 이후 경기 북부 지역에 드물게 남아 있는 조선시대 불전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 ‘23년 해체보수 시 발견된 상량묵서: 건륭삼십년을유육월초칠일상량기문(乾隆三十年乙酉六月初七日上梁記文)
* 목부재 총 17점 분석(기둥(9본), 보(4본), 도리(2본), 동자주(1본), 창호궁판(1본)) : 1765년
* 『봉선본말사지 현등사 운악현등사사적(1772)』 및 『현등사 만취당 성조기(1767)』 등
ㅇ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다포계 불전으로, 외2출·내4출목 공포 구성과 절제된 제공 및 첨차, 보와 공포의 결합 방식 등에서 조선 중후기 불전의 전형적인 수법을 잘 보여준다. 특히 중도리 보강을 위한 구조적 장치와 덧걸이 연목 기법*은 기존 건축기술의 특징과 변화 양상을 함께 보여주는 사례로, 당시 건축 기술과 양식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근거가 된다는 점에서 학술적·예술적 의의가 크다.
* 덧걸이 연목 기법: 중도리 위 장연과 단연이 교차배치되는 것이 통상적이나, 특이하게도 장연머리 위로 덧도리를 추가로 올리고 단연의 아랫단을 걸어 두 연목이 교차하지 않게 설치한 형식
□ 종 별 : 보물
□ 명 칭 : 괴산 각연사 비로전(槐山 覺淵寺 毘盧殿)
□ 지정내용
ㅇ 소 재 지 : 충청북도 괴산군 칠성면 각연길 451(태성리)
ㅇ 구조/규격 : 목구조 / 정면3칸, 측면3칸 / 팔작지붕
ㅇ 수 량 : 1동
ㅇ 조성연대 : 조선시대
ㅇ 소유자(관리자) : 각연사(각연사)
ㅇ 지정면적 : 218.8㎡
□ 지정사유
ㅇ 괴산 각연사는 『보개산 각연사 삼세여래 및 관음개금기』와 『각연사 대웅전 상량문』등의 기록과 보물 『괴산 각연사 통일대사탑』 및 『괴산 각연사 통일대사탑비』를 통해 고려 광종 때 통일대사에 의해 창건 또는 중창된 것으로 추정된다.
ㅇ 비로전은 정확한 창건 연혁이 확인되지 않으나 『중수상량문』의 기록과 건축 양식 및 세부기법 상 1499년에 중건된 건물로 판단되며, 중건 이후 16세기와 17~18세기, 근대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 중수가 이루어졌다. 또한 『중수상량문』에는 화주(化主)와 시주(施主)자의 명단이 자세히 수록되어 있어 당시 중수 상황을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가 높다.
ㅇ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다포계 1고주5량 형식의 불전으로, 공포 부분은 내·외 2출목 형식을 보이며, 폭에 비해 춤(높이)이 높은 주두, 아래로 뻗은 수서형 제공 등은 조선 전기 다포계 공포 특징을 잘 보여준다. 기둥에서는 배흘림 기법이 나타나며, 용마루 폭이 좁은 팔작지붕의 구성 등에서 고식(古式)수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더욱이 건물 하부 초석과 고막이석의 형태와 가공수법을 볼 때 고려 초기 양식의 부재를 재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학술적·건축사적 가치가 뛰어나다.
ㅇ 건축물의 평면은 정면과 측면의 5:4의 비율을 지니고 있으며, 축부(건물의 몸통 부분)와 지붕부의 비례도 단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공포와 첨차, 내목화반, 창방 등 세부 부재에는 섬세한 조각수법을 살펴 볼 수 있어 예술적 가치도 우수하다.
□ 종 별 : 보물
□ 명 칭 : 고창 선운사 영산전(高敞 禪雲寺 靈山殿)
□ 지정내용
ㅇ 소 재 지 :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아산면 선운사로 250
ㅇ 구조/규격 : 목구조 / 정면3칸, 측면3칸 / 맞배지붕
ㅇ 수 량 : 1동
ㅇ 조성연대 : 조선시대
ㅇ 소유자(관리자) : 선운사(선운사)
ㅇ 지정면적 : 121.8㎡
□ 지정사유
ㅇ 고창 선운사(高敞 禪雲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로 577년(백제 위덕왕 24)에 창건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ㅇ「고창 선운사 영산전(高敞 禪雲寺 靈山殿)」은 1474년(성종 5) 2층 장륙전(丈六殿)을 조성하였으나, 정유재란(1597)때 소실, 이후 1713년(숙종 39) 2층 각황전(覺皇殿)으로 재건하였다.
ㅇ 1751년(영조 27) 화재로 소실되어 이듬해 재건하였고, 1821년(순조 21)에 2층 각황전이 퇴락됨에 따라 단층의 영산전(靈山殿)*으로 개축한 부불전으로 변화과정에 대한 기록이 잘 남아 있고, 중층건물의 부재가 다수 남아있어 학술적 연구 가치가 높다.
ㅇ 정면 5칸, 측면 3칸, 맞배지붕이고, 1고주 7량가로 가구를 구성하여, 내부공간을 넓게 하였으며, 어칸에는 과거, 현재, 미래 삼세불을 좌·우 협칸에는 나한상을 봉안하여 영산회상의 모습을 보다 충실히 재현함으로써 예술적 가치가 높다.
ㅇ 공포는 1출목 2익공 형식으로 쇠서를 물익공으로 처리하였고, 익공계 건물임에도 화반을 설치하지 않고 포벽을 목재로 처리한 것은 다른 건물에서는 보기 힘든 독창성을 보여주고 있으며, 1821년 중층에서 단층으로 개축 당시의 중층건물 기법이 현존하고 있어 건축적·학술적 가치가 높다.
□ 종 별 : 보물
□ 명 칭 : 순천 선암사 원통전(順天 仙岩寺 圓通殿)
□ 지정내용
ㅇ 소 재 지 : 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 선암사길 450(죽학리)
ㅇ 구조/규격 : 목구조 / 정면 3칸, 측면 3칸 / 이익공 / 겹처마 / 팔작지붕
ㅇ 수 량 : 1동
ㅇ 조성연대 : 조선시대
ㅇ 소유자(관리자) : 선암사(선암사)
ㅇ 지정면적 : 175.3㎡
□ 지정사유
ㅇ 순천 선암사(順天 仙岩寺)는 2018년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으로 세계유산에 등재된 태고종(太古宗) 수행총림 이다.
ㅇ 순천 선암사 원통전(順天 仙岩寺 圓通殿)의 초창(初創) 기록은 없으나, 1597년 정유재란(丁酉再亂)으로 소실되었고, 1698년(숙종 24) 중건 후 화재로 소실과 중건을 반복하다가, 1828년(순조 28) 재건하였는데, 이 당시 왕실원당(王室願堂)*의 역할을 겸하였던 것으로, 중창이후 관련기록과 왕실 관련 사찰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높다.
* 조선시대 선왕·선후의 명복과 안녕을 기원하기 위한 건물로, 1788년(정조 12) 선암사에 세자탄생 발원기도를 명하였고, 이후 세자(순조)가 6세에 직접 쓴 「대복전(大福田)」 글씨를 내렸는데, 순조 즉위 원년(1801) 원통전에 걸게 하여 현재도 원통각이라는 현편과 함께 걸려 있다.
ㅇ 선암사 원통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규모에 정면 1칸을 앞으로 돌출시킨 “丁”자형이고, 내부에 감실형으로 불상을 모셨으며, 배면을 제외한 삼면이 개방된 보기 드문 평면형식의 건물이다. 다만, 일제강점기 이후 벽체와 창호에 일부 변화가 있어 향후 원형회복이 필요하다.
ㅇ 공포는 1출목 2익공형식으로 우주와 귀포에는 귀한대를 사용하고, 외진주에는 평방이 없는 익공계 공포를 짜 올렸다. 내진주에는 평방위에 다포형식의 공포를 올리고 무량가구로 천장을 구성한 독특한 형식으로 학술적 가치가 높다. 또한 꽃살문 창호와 호남지역의 특징이 반영된 푸른색 위주의 단청과 민화풍의 별화 등은 예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
□ 종 별 : 보물
□ 명 칭 : 순천 송광사 응진당(順天 松廣寺 應眞堂)
□ 지정내용
ㅇ 소 재 지 :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송광사안길 100(신평리 12)
ㅇ 구조/규격 : 목구조 / 정면 3칸, 측면 3칸 / 익공계 / 겹처마 / 맞배지붕
ㅇ 수 량 : 1동
ㅇ 조성연대 : 조선시대
ㅇ 소유자(관리자) : 송광사(송광사)
ㅇ 지정면적 : 79㎡
□ 지정사유
ㅇ 순천 송광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21교구 본사로 우리나라 삼보사찰(三寶寺刹)중 승보사찰(僧寶寺刹)이며, 신라말 혜린(慧璘)선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ㅇ 순천 송광사 응진당(順天 松廣寺 應眞堂)은 1504년(연산군 10)에 창건(創建)* 되었고, 이후 1623년(인조 원년) 중수(重修)한 건물로 내부에는 보물로 지정된 「순천 송광사 목조석가여래삼존상 및 소조 16나한상」*과 「석가모니후불탱·십육나한탱」이 봉안되어 있는 등 역사적 가치가 크다.
* 2000년 해체수리공사 시 발견된 상량묵서 : ‘1504년 2월 13일 상량(上樑) 내용과 주지(住持) 숭은(崇隱) 등 공사 참여자 기록
* 17세기 전라도 지역에서 활동하던 조각승(彫刻僧) 응원(應元) 등이 1624년(인조 2)에 제작
* 1724년 제작된 “석가모니후불탱”은 응진당의 정면 중앙에 위치하며, 1725년에 제작된 “십육나한탱”은 불제자 16인의 모습을 그린 것.
ㅇ 응진당은 정면 3칸, 측면 3칸, 외1출목, 측면 2고주5량가 익공계 맞배지붕으로 공포형식은 간결하나, 첨차의 경사면을 연화두형으로 처리하고 팔각으로 치목한 도리와 굴도리 사용하였으며,
ㅇ 측면 고주 대들보에 파련대공과 솟을합장으로 종도리를 받는 등 고식(古式)기법이 잘 남아 있어 학술적, 예술적 가치가 크다.
□ 종 별 : 보물
□ 명 칭 : 경주 기림사 응진전(慶州 祇林寺 應眞殿)
□ 지정내용
ㅇ 소 재 지 : 경상북도 경주시 양북면 기림로 437-17
ㅇ 구조/규격 : 목조/다포/맞배지붕/겹처마
ㅇ 수 량 : 1동
ㅇ 조성연대 : 조선시대
ㅇ 소유자(관리자) : 기림사(기림사)
ㅇ 지정면적 : 64.89㎡
□ 지정사유
ㅇ 경주 기림사(祇林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 불국사(佛國寺)의 말사로 신라 선덕여왕 때 창건하였다고 전해진다.
ㅇ 경주 기림사 응진전(應眞殿)은 1705년 기림사중창기(祇林寺重創記), 1718년 신라함월산기림사사적(新羅含月山祇林寺事蹟), 1794년 개간신라함월산기림사사적(改刊新羅含月山祇林寺事蹟) 등의 기록에 의하면 1649년 영산전(靈山殿)으로 중창되었고, 1729년 오백나한(五百羅漢)을 봉안한 후, 부분적인 수리를 거쳤지만 현재까지 큰 훼손이나 변형없이 현상태를 유지하고 있어 역사적 가치가 높다.
ㅇ 또한, 영산전(靈山殿), 나한전(羅漢殿), 응진전(應眞殿) 등으로 명칭이 변경되었고, 1729년 조성된 오백나한상 등을 봉안하면서 나한신앙을 잇고 있어 역사적 가치를 더욱 높여 주고 있다.
ㅇ 응진전은 장대석을 한단 쌓은 기단위에 정면5칸, 측면1칸, 겹처마 맞배지붕의 다포식 건물로 측면에 고주를 사용하지 않고 내부와 같이 하나의 대량으로 구성한 것은 유례가 드물며 건축적 가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ㅇ 공포는 내·외가 동일한 2출목 다포 양식으로 수서형과 삼분두형 제공 등에서 조선 중기 건물의 특징이 잘 나타나고 있으며, 제공의 연봉당초(蓮峰唐草) 문양과, 생동감 있는 용두와 봉두 장식은 조선 후기적 양식으로 예술적 가치가 높다.
ㅇ 이처럼 경주 기림사 응진전은 나한신앙의 역사를 잇는 부불전으로, 관련 기록과 조선 중기양식을 잘 간직하고 있어 역사적, 건축적 가치가 크고, 내부의 파련형 대공과, 공포부재의 용두와 봉두 장식에서 예술적가치가 뛰어나 국가지정 보물로 지정가치가 충분하다.
□ 종 별 : 보물
□ 명 칭 : 금산 영천암 무량수각(錦山 靈泉庵 無量壽閣)
□ 지정내용
ㅇ 소 재 지 : 충청남도 금산군 남이면 보석사1길 148
ㅇ 구조/규격 : 목구조 / 정면 6칸, 측면 6칸 / 이익공 / 겹처마 / 팔작+맞배지붕
ㅇ 수 량 : 1동
ㅇ 조성연대 : 조선시대
ㅇ 소유자(관리자) : 영천암(영천암)
ㅇ 지정면적 : 131.72㎡
□ 지정사유
ㅇ 금산 영천암은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마곡사의 말사인 보석사(寶石寺)의 산내암자로 885년(신라 헌강왕 11)에 조구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하나,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은 없으며, 2000년 해체보수 과정에서 종도리에서 발견된「진악산영천암중수상량문」과 상량묵서* 기록에 따라 영천암 무량수각은 1786년(정조 10)에 중수(重修)된 건물임을 알 수 있다.
* 건륭오십이년병오삼월십일일묘시입주, 이십일일묘시상량근봉(乾隆五十二年丙午三月十一日卯時立柱, 二十一日卯時上樑謹封)
ㅇ 영천암 무량수각은 산중수행(山中修行)과 생활(生活)이 가능하도록 온돌방에 불상을 안치하고 예불을 드릴 수 있는 공간으로 구성한 인법당(因法堂)으로 당대 암자의 사회, 문화, 종교적 시대상을 반영함과 동시에 임진왜란 때 활동한 의병승장 영규대사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어 역사적 가치가 크다
* 1835년 낙봉대사가 영천암 서남쪽 기슭에 영규대사와 무경대사 및 제자들의 진영을 모신 의선각(영각)을 건립, 영천암은 불교와 유교적 요소가 결합된 춘추제향을 지내고, 지역사회에 교류하는 장소가 됨.
ㅇ 무량수각은 당초 정면 5칸, 측면 2칸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이후 생활상의 변화에 따라 증축이 이루어지는 구조적 다양성을 유지하고 있다. 법당의 상부에 다락을 들여 공간을 입체적으로 사용하고, 법당 후면 퇴칸에 불단을 꾸미면서 불단 상부만 반자를 높여 닫집과 같은 느낌이 나도록 구성하는 등 한 동의 건물에 필요한 공간을 압축적으로 구성, 사용하는 방식은 인법당의 건축구조, 구성 등에 있어서 학술적 가치가 크다.
□ 종 별 : 보물
□ 명 칭 : 청양 장곡사 설선당(靑陽 長谷寺 說禪堂)
□ 지정내용
ㅇ 소 재 지 : 충청남도 청양군 대치면 장곡길 241
ㅇ 구조/규격 : 목구조 / 정면 5칸, 측면 3칸 / 주심포 / 홑처마 / 맞배+부섭지붕
ㅇ 수 량 : 1동
ㅇ 조성연대 : 조선시대
ㅇ 소유자(관리자) : 장곡사(장곡사)
ㅇ 지정면적 : 150㎡
□ 지정사유
ㅇ 청양 장곡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마곡사(麻谷寺)의 말사로 850년(통일신라 문성왕 12)에 보조선사(普照禪師)가 창건한 것으로 전하나,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은 없다.
ㅇ 장곡사 설선당은 사찰 승려의 생활 및 수행공간으로 창건시기를 알 수 있는 기록은 없으나, 2021년 해체보수 과정에서 실시한 연륜연대 분석*을 통해 비교적 이른 시기인 1569년(선조 2)에 중수(重修) 또는 중창(重創)된 것으로 추정되어 역사적 가치가 크다.
* 기둥(6본), 동자주(2본), 다락귀틀(2본) : 1569년
ㅇ 설선당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으로 최초에는 정면 3칸, 측면 3칸이었으나, 산중생할의 변화에 따라 정면 2칸, 측면 3칸이 추가되었고, 이후 정면 3칸, 측면 1칸의 요사채가 배면으로 증축되어 “ㄴ”자형의 건물이었으나, 최근(2021~2022년) 수리과정에서 본채와 요사채를 분리하였다.
ㅇ 가구는 1고주 5량가로 공포는 외2출목 주심포 양식으로 최초 건립된 정면 3칸의 살미는 앙서형으로 연륜연대 분석결과와 같이 조선중기 이전의 양식을 갖추고 있으며, 이후 증축된 정면 2칸은 앙서위에 연꽃을 조각한 형태로 조선 후기의 양식적 특징을 나타나고 있다. 특히, 첨차의 경우 연꽃줄기와 꽃잎을 섬세하고 화려하게 투각하여 조각한 것으로 서해안 지역*에서 나타나는 건축적 특징을 보여주고 있어 학술적, 예술적 가치가 크다.
* 익산 숭림사보광전(보물), 부안 개암사 대웅전(보물), 논산 돈암서원 응도당(보물) 등
□ 종 별 : 보물
□ 명 칭 : 부안 내소사 설선당과 요사(扶安 來蘇寺 設禪堂과 寮舍)
□ 지정내용
ㅇ 소 재 지 :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진서면 내소사로 243(내소사)
ㅇ 구조/규격 : 정면 6칸, 측면 3칸, ‘ㅁ’자형 / 이익공+물익공 / 맞배지붕
ㅇ 수 량 : 1동
ㅇ 조성연대 : 조선시대
ㅇ 소유자(관리자) : 내소사(내소사)
ㅇ 지정면적 : 417.5㎡
□ 지정사유
ㅇ 부안 내소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 선운사(禪雲寺)의 말사로 633년(백제 무왕 34)에 혜구두타(惠丘頭陀)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며,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후 1633년(인조 11)에 청민선사가 중창하였다.
ㅇ 내소사 설선당과 요사는 임진왜란 이후 1640년(인조 18)에 내소사를 중창할 당시 건립하였으며, 1821년(순조 22)에 수리가 있었고, 1893년(고종 30)에 요사를 증축한 것으로 승려들 생활공간의 변화형태와 모습을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어 역사적 가치가 크다.
ㅇ 설선당과 요사는 “ㅁ”자형 평면으로 설선당은 정면 6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이고, 전체 “ㅁ”자형 중에서 가장 먼저 건립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이후 산중생활의 변화에 따라 시간차를 두고 서고동저(西高東低)의 대지지형 여건과 건물 위계(位階)에 맞춰 남측과 북측 3칸, 동측 6칸을 증축한 것으로 추정된다.
ㅇ 설선당 가구구조는 측면 2고주 5량가, 내부는 1고주 5량가로 공포는 이익공이고, 쇠서는 연봉형 문양을 새기고 외단을 사절하였다. 요사는 무고주 3량가로 공포는 물익공으로 마감하였고, 지붕은 눈썹지붕 형식이다.
ㅇ 설선당과 요사는 두 개의 맞배지붕 건물을 연결한 독특한 구조로 산중생활의 다양한 기능을 수용한 공간구성 방식과 자연지형을 이용하면서도 위계적 구성을 온전하게 갖추고 있어 학술적, 예술적 가치가 크다.
□ 종 별 : 보물
□ 명 칭 : 익산 숭림사 정혜원(益山 崇林寺 定慧院)
□ 지정내용
ㅇ 소 재 지 :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웅포면 백제로 495-57
ㅇ 구조/규격 : 정혜원 - 정면 5칸, 측면 3칸, 이익공, 5량, 팔작지붕, 겹처마
부속채 - 정면 2칸, 측면 1칸, 민도리, 3량, 맞배지붕, 홑처마
ㅇ 수 량 : 1동
ㅇ 조성연대 : 조선시대
ㅇ 소유자(관리자) : 숭림사(숭림사)
ㅇ 지정면적 : 86.9㎡
□ 지정사유
ㅇ 익산 숭림사(益山 崇林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 금산사(金山寺)의 말사로 1345년(고려 충목왕 원년)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 숭림사 보광전(보물)상량문(1957년) : 충목왕 원년 1345년 창건
* 숭림사 보광전 명문와당 : 지정 5년(至正五年) 을유년(1345년)에 행여선사(行如禪師)가 조성
ㅇ 숭림사 정혜원(崇林寺 定慧院)은 1644년(인조 22) 건립*된 것으로 부분적인 증축과 수리를 거쳤으나, 건물의 가구는 건립당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며, 건립과정에 대한 기록을 통해 목재의 수급 과정이 명확하고, 철물, 소금, 부연 등 공사에 필요한 자재 및 물품 등의 조달방식 또한 알 수 있다. 더불어 승려 장인과 민간 장인이 공동으로 참여한 사실 등 17세기의 건축공사 내용을 살필 수 있다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가 크다.
* 정혜원 상량기문(1644) : 1589년(만력 19)에 산불로 정혜원이 소실되어 1591년 중창하였고, 1642년 3중창을 시작하여 1644년(순치 원년) 2월에 상량
ㅇ 숭림사 정혜원은 당초 정면 3칸, 측면 3칸, 맞배지붕 이었던 것을 생활환경의 변화로 정면 5칸으로 확장하고, 뒤쪽에 정면 2칸, 측면 1칸을 덧달아낸 “ㄱ”자형의 요사채이다.
ㅇ 구조는 1고주 5량가이며, 정면에만 1출목 이익공을 두고 나머지는 민도리 형태이다. 공포의 형태는 곡률이 높은 앙서형으로 초각하였는데 17세기 서남해안 지역 사찰건축의 특징인 장식화 경향을 볼수 있어 학술적, 예술적 가치가 높다.
출처 : 국가유산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