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지혜와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마음의 눈으로 보고자, 눈에 보이는 것은 물론 보이지 않는 것까지 기록하고자합니다.

경주/남산자료실

경주남산 상서장(최치원선생 집터)

노촌魯村 2006. 3. 5. 01:22

상서장

경상북도 기념물 제46호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인왕동

 이곳은 최치원 선생이 임금께 글을 올리던 곳으로 지금은 선생의 영정을 모시고 향사(享祀)를 지내고 있다. 최치원 선생의 호는 고운․해운으로 신라 헌안왕 원년(857)에 태어나 12세에 당나라에 유학, 18세에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하였다. 헌강왕11년(885)에 귀국하여 당시 어지러운 국정을 바로잡기 위해 애썼는데, 특히 진성여왕에게 시무10조를 올린 것은 유명하다. 후에 벼슬을 버리고 가야산 등 명산을 찾아 자연과 벗삼고 해인사에서 평생을 마쳤다. 신라 말의 문장가이기도 한 선생은 『계원필경』,『석군응전』등의 저서와 숭복사비 등 많은 비문을 남겼다. 특히 그의 「난랑비서문」은 신라 화랑도를 설명해주는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고려 현종 때 문창후에 추봉하고 문묘에 배향하도록 하였다. 이곳에는 영정각, 상서장, 추모문 등이 세워져 있고 조선 고종 때 건립된 비가 남아 있다.(문화재안내문에서)

 

 

 

 

 

 

 

 

                    금오산

           (당나라 고운이 최고운께 드리는 글)

        내 일찍 금오산 들렀더니

        금자라 머리 같은 높고 높은

        산마루여

        구슬 궁궐 황금 전각의

        산기슭이여

        금빛 물결치는 벌 넓기도 한데

        한점 계림이 곱게 깔리어

        금오에 안긴 채로 갸륵히 자란다네 (태허 역)

 

 고운 최치원 선생 초상

 

신라 역사 인물 특별전 : 최치원

국립경주박물관은 신라新羅를 세우고, 일구고. 가꾼 역사상의 인물들을 되돌아보는 ‘신라 역사 인물 특별전’을 기획하였습니다. 그 두 번째로, 우리나라와 중국에서 문장文章으로 이름을 떨쳤던 최치원崔致遠을 살펴보는 특별전시를 9월 18일(화)부터 11월 18일(일)까지 개최합니다.
전시는 최치원의 삶과 업적을 다채롭고 종합적으로 살피기 위해 네 부분으로 나누었습니다. 첫 번째는『삼국사기三國史記』, 『삼국유사三國遺事』, 『해동역사海東繹史』등으로 최치원의 탄생과 당나라 유학, 당나라에서의 생활 등을 살펴보았습니다. 특히 881년 당나라에서 일어났던 민란 황소난黃巢亂 때 고병高騈의 관역순관館驛巡官으로서 황소에게 항복을 권하기 위해 보낸 <격황소서檄黃巢書>는 『동문선東文選』에 소개된 전문全文을 영상으로 소개합니다. 두 번째는 최치원이 신라로 돌아와 당나라에서 저술했던 시문집을 묶어 헌강왕에게 받쳤던 책과 왕실에서 작성한 표表 등의 자료들을 모았습니다.『계원필경桂苑筆耕』,<사산비명四山碑銘>탁본,『고운선생문집孤雲先生文集』 등입니다. 세 번째는 왕실에서 나와 세상을 등지고 은둔한 내용을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과 『파한집破閑集』등의 기록을 통해 은퇴隱退 뒤의 행적行蹟을 다루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당대當代와 후대 사람들이 최치원을 어떻게 평가하고, 어떻게 계승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전시품은 『계원필경桂苑筆耕』, <사산비명四山碑銘>탁본, <숭복사탑비 귀부>, <최치원 진영> 등 100여점을 전시하였습니다.(출처 : 국립경주박물관)

 

 

 

 

 

고운 최치원 표준 영정(이규선.1981년. 국립현대미술관) 

 

 

 

 

 

 

 

 

 

 

 

 

 

 

 

 

 

 

 

 

 

 

 

 

 

 

 

 

 

 

 

 

 

 

 

 

 

 

 

 

 

 

 

 

 

 

 

 

 

 

 

 

 

 

 

 

 

최치원설화 바로가기

http://www.seelotus.com/gojeon/gojeon/seol-hwa/choe-chi-won.htm

 

 

 

상서장1.ppt
2.67M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