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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의성

의성군 금성면 제오리 면작기념비. 공룡발자국화석.탑리 오층석탑

노촌魯村 2006. 5. 18. 13:10

공룡발자국화석

 

 

 

 

 

 공룡은 중생대의 쥐라기부터 백악기에 걸쳐 번성했던 길이 5∼25m의 거대한 파충류를 통틀어 말한다. 의성 제오리의 공룡발자국화석은 의성군 관내 지방도로 확장공사 중 산허리 부분의 흙을 깎아내면서 발견되었다. 화석은 중생대 백악기 때의 것으로 약 1억 1,500만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에서 발견된 공룡발자국화석은 4종류의 공룡발자국 316개가 확인되었으며, 발굽울트라룡, 발톱고성룡, 발목코끼리룡 등 3종류의 초식공룡발자국과 육식공룡인 한국큼룡발자국이 발견되었다. 이곳에서는 대·중·소형의 초식공룡과 육식공룡의 발자국이 동시에 발견되어 공룡의 서식지였음을 짐작게 한다. 의성 제오리의 공룡발자국화석은 발의 크기, 보폭, 걷는 방향 등을 알 수 있어 당시 공룡의 모습과 생활 등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로 학술적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울트라사우루스를 아시나요? 

 2017년 47일 대검찰청에서 타르보사우루스(Tarbosaurus)의 골격이 몽골로 돌아간다는 기사가 많은 언론사를 통해 보도되었다. 그런데 이 기사가 유독 어린아이를 가진 부모들의 관심을 끌었다고 한다.

 그 이유는 몽골로 반환된 첫 사례였기 때문이 아니라 기사의 주제가 공룡이었고, 그 중에서도 티라노사우루스의 사촌 격이자 우리에게 점박이 공룡으로 잘 알려져 있는 타르보사우루스에 관한 기사였기 때문이다. 타르보사우루스는 중생대 백악기 후기(7000만년 전) 아시아에 살았던 몸길이 10~12m 크기의 육식공룡으로 몽골에서는 민족혼으로 불리는 공룡이다.

 많은 이들이 몽골 공룡으로 알려진 타르보사우루스에 부러움의 시선을 보내고 있지만 우리나라에도 타르보사우루스 만큼 유명한 공룡이 있다.

 그 공룡의 이름은 울트라사우루스(Ultrasaurus)’이다. 울트라사우루스는 1973, 경북 의성군 탑리에서 발견되어, 우리나라 학자에 의해 첫 번째로 이름 붙여진 공룡이다. 이 공룡의 정확한 이름은 울트라사우루스 탑리엔시스(Ultrasaurus tabriensis)”의성 탑리에서 발견된 초거대 공룡이라는 뜻이다.

 이 공룡은 발견에서부터 이름이 붙여지고 어린이들의 공룡책에서 사라지기까지 얽힌 이야기가 너무 많다. 특히, 발견에 얽힌 이야기는 미국의 고생물학자 코프와 마쉬의 공룡화석 전쟁만큼이나 흥미롭고 이름에 얽힌 이야기도 매우 유명하다.

 이중 이름에 얽힌 이야기를 잠깐하자면, 미국의 젠센(J.A. Jensen)이 콜로라도의 중생대 지층에서 공룡뼈를 발견하여 울트라사우루스 매킨토시아이(Ultrasaurus macintoshi)”라 명명하여 1985년 발표하였다. 그러나 학명에는 선취권이라는게 있어 누가 먼저 발표하였는지가 중요하다.

 젠센은 울트라라는 단어를 자신이 발견한 공룡뼈에 붙이고 싶어 울트라사우루스를 울트라사우(saurus sauros)”로 바꾸어 발표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공룡책을 아무리 찾아도 울트라사우루스는 보이지 않는다.

 울트라사우루스는 어디로 사라진 걸까? 후속 연구에서 발견 당시 상완골(앞다리 위 팔뼈) 일부분만이 발견되어 새로운 공룡으로 명명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하여, “울트라사우루스라는 이름은 동일한 종류로 확인 가능한 더 많은 뼈가 발견되기 전까지는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우리나라 어딘가에 아직도 잠들어 있을 울트라사우루스의 더 많은 뼈를 빨리 찾아 다시 멋지게 부활하기를 기대해 본다. 이 공룡뼈는 대전에 있는 천연기념물센터 전시관에서 볼 수 있다(사진).

 국립문화재연구소 공달용 학예연구관 

한국의 공룡 탐구 : http://visit.ocp.go.kr/visit/cyber_new/serv07.jsp

 

제오리 면작 기념비

삼우당 문익점선생 면작 기념비(三憂堂 文益漸先生 綿作 紀念碑)  

고려 공민왕때 삼우당 문익점선생이 원나라 사신으로 갔다가 3년후 귀국할 때 금주성(錦州城)에서 면화종자를 필관(筆管)에 넣어 귀국하여 그의 장인 정천익(鄭天益)으로 하여금 경남 산청(山淸)에 시험재배한 것이 우리나라 면작의 시초가 되었다. 그후 조선 태종때 그의 손자 승로가 의성현감으로 부임하여 금성면 제오리에 면화를 파종하여 오늘에 전하게 되었으며 1909년에 지역주민들이 파종한 원전(元田)에 기념비를 건립하였다.

 

 

제오리 앞 경작지와 금성산

금성산 : 의성군 금성면 수정리

금성산은 의성의 명산으로 숱한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해발 531m의 국내최초 사화산으로 태백산 맥 남쪽 일부이다. 옛 삼한시대 부족국가인 조문국시대에 조성한 길 이 2,730m, 높이 4m의 금성산성을 배경으로 등산로가 개설되어 있으며 산성을 따라 가면서 흔들바위, 조문전망암, 아들딸바위, 동굴, 솟대바위 등이 있으며 해발 671m의 비봉산과 쌍벽을 이루고 있다. 금성산은 산정에 무덤을 쓰면 석달 동안 이 지역에는 비 한방울 내리지 않는 가뭄이 들고, 묘를 쓴 사람은 운수 대통하 여 큰 부자가 된다는 전설을 간직한 영산으로서 신라시대 의상조사가 창건한 유서깊은 고찰 수정사와 산운 대감마을을 함께 둘러보며 등산하기에 좋은 곳이다.

 


탑리 오층석탑

탑리 마을에 세워져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5층 석탑이다. 낮은 1단의 기단(基壇) 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세운 모습으로, 돌을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 쌓아올린 전탑(塼塔)양식과 목조건축의 수법을 동시에 보여주는 특이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기단은 여러 개의 돌로 바닥을 깐 뒤, 목조건축을 본떠 가운데 기둥과 모서리기둥 모두를 각각 다른 돌로 구성하였다. 탑신은 1층이 높으며 2층부터는 높이가 급격히 줄어드는 모습을 보이는데, 1층 몸돌에는 불상을 모시는 방인 감실(龕室)을 설치하였다. 지붕돌은 전탑에서 보이는 모습처럼 밑면 뿐만 아니라 윗면까지도 층을 이루고 있는데 윗면이 6단, 아랫면이 5단이다. 지붕돌은 네 귀퉁이가 살짝 들려있어 목조건축의 지붕 끝을 떠올리게 한다. 각 부분에서 목조건축의 양식을 응용하는 한편, 곳곳에서 전탑의 조성기법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러한 독특한 특징으로 인해 분황사석탑(국보 제30호)과 함께 통일신라 전기의 석탑양식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일제시대 수리 후 남긴 글씨

 

 

 

 

 

 

 

 

 

 

 

석조문화재를 찾아서(석탑여행.삼국 통일신라시대) : 

http://visit.ocp.go.kr/visit/cyber_new/serv03.j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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