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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밖(국외)/중국

성안토니오 성당(김대건 신부님의 목상이 모셔져 있음)1

노촌魯村 2006. 8. 9. 10:13

성바오르성당에서 성안토니오 성당으로 가는 골목길(작은 돌로 포장된 길)

 

 

"문구토지재신"이라는 패를 건물의 입구에 모시고 향을 피워 복을 비는 곳이라 함

 

성 안토니오 성당

 

 

 

 

김대건 신부님  (St. Father Kim)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 경축(이동)일인 7월 5일이 되면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대축일을 지낸다. 이날은 신부님이 복자위에 오르신 날로서, 신부님을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로 정하여 기념하고 있다. 그것은 한국인 최초의 사제이실 뿐 아니라, 박해 속에서도 굳건한 신앙으로 주님의 부르심에 충실하였던 착한 목자의 모습을 보여주셨기 때문이다. 
  김대건 신부님은 1821년 독실한 천주교 집안에서 태어나, 신앙의 깊은 가르침 안에서 성장하였다. 신부님의 가족들도 모두 순교의 영광을 받을 정도로 열심하였다. 1836년 모방 신부에 의해 신학생으로 선발되어, 사제의 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박해의 어려움 때문에 학업을 지속하고자, 유방제 신부의 인도로 길을 떠나 마카오 신학교에 들어갔다. 1841년 11월 조선교회가 박해 때문에 소식이 끊어지자, 고국의 양들을 걱정하여 여러 차례 의주 방면으로 입국을 시도하였지만 실패하였다. 
  1843년 중국의 `소팔가자`에서 최양업과 신학공부를 계속하다가, 조선 교구장인 페레올 주교의 명으로 두만강을 건너 입국을 시도하였지만 또 실패하였다. 다시 돌아가 1844년 부제품을 받고, 1845년 1월 1일 변문을 통해 서울로 들어오는 데 성공하였다. 고국에서 선교사 영입 준비를 마친 다음 상해로 되돌아와, 그해 6월 상해에서 페레올 주교에게 사제품을 받았다. 그리고 8월에 상해를 떠나, 10월 충청도 강경 나바위에 도달하였다. 
  새 사제로 입국하여, 숨어 지내는 교우들을 찾아 사목하였고, 조선교구 부교구장으로 임명되어 1846년 5월 선교사를 영입할 뱃길을 개척하려고 백령도에 도착하였다. 그러다가 6월 초 관헌에 체포되어, 해주를 거쳐 서울로 압송되었다. 3개월 동안 문초를 받고, 그해 9월 16일 반역죄로 군문효수형을 선고받아 새남터에서 참수되었다. 
  신부님은 1857년 가경자로 선포되고, 1925년 7월 5일 복자위에 오르셨다. 그리고 1984년 5월 6일 온 교회가 공경하는 성인이 되셨다

김대건 신부님의 목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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