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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통도사

노촌魯村 2006. 11. 5. 09:12

 영축산문

영축산

가지산 도립공원 구역 내에 있는 해발 1,059m인 영축산은 경관이 수려하여 영남알프스라 불리며 일명 취서산이기도 하다. 이 산은 가지산에서 남쪽으로 뻗은 줄기가 능동산에 이르러 두 줄기로 갈라지는데, 남서진하는 줄기는 밀양의 천황산에서 제약산으로 이어지고, 동쪽으로 내려와 배내고개를 건너서 남진하는 줄기는 간월산, 신불산을 지나서 영축산의 첫머리에서 높이 솟구쳐 계속 남쪽으로 치닫는 정상이 펑퍼짐한 산으로 광활한 능선의 억새밭은 천국을 이루고 있다. 산 아래 뻗어있는 계곡은 통도사 주변 암자와 연결되어 있어 산책하기 좋은 코스이기도 하다. 영축산 통도사는 양산8경의 제 1경이다. 그 밖의 8경으로는 천성산, 내원사계곡, 홍룡 폭 포, 배내골, 천태산, 오봉산 임경대, 대운산 탑골휴양림 등이 있다.

등산코스: (소요시간 4시간정도 / 해발1,059m) 1) 통도사산문 → 극락암 → 백운암 → 정상 2) 통도사산문 → 지산마을 → 산불감시초소 → 정상 3) 통도환타지아 → 산불감시초소 → 정상 (양산시 자료에서)

 통도사 들어 가는 보행로

 영축총림

 하마비

 당간지주 , 부도밭,  영축총림이 걸린 산문

 당간지주 및 당간(돌로 제작 됨)

 영축총림의 현판이 걸린 산문

 부도밭

 부도밭

통도사의 성보박물관 

무풍교 

  일주문

절에 들어갈 때 지나는 첫 번 째 문으로 기둥의 배열이 한 줄로 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일주문은 우리나라 고유의 양식으로서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이처럼 독특한 일주문의 양식은 사찰에 들어서기 전에 흐트러진 마음을 하나로 모아서, 진리의 세계, 깨달음의 세계, 부처님의 세계로 향하는 마음가짐을 올곧게 다지라는 깊은 뜻을 상징하고 있다.

일주문 정면에 걸린 현판 글씨인 ‘영취산 통도사’는 흥선 대원군 이하응'이 쓴 것으로 영취산의 장엄한 기상에 어울릴 만큼 매우 장중하다.

두 기둥의 주련에는 해강 김규진의 글씨로 ‘불지종가(佛之宗家) 국지대찰(國之大刹)’, ‘부처님의 으뜸가는 사찰이요, 나라의 큰 절이다.’라고 쓰여 있다. 이것은 석가모니의 진신 사리를 봉안하고 있는 불보 종찰(宗刹)임을 알려 주는 사격(寺格)을 잘 표방해 주고 있다.(통도사 자료에서)

 

 노천유물관

 

천왕문

일주문을 지나 오른편에는 성보 박물관이 있고, 개울을 따라 오르면 4천왕을 모신 천왕문으로 들어서게 된다. 천왕문은 4천왕과 금강 역사(力士)의 힘으로 절을 보호하고 악귀를 막아서 사찰을 청정한 도량으로 만들려는 데 있으며, 절을 찾는 이의 마음을 다시 한 번 엄숙하게 하려는 뜻도 담겨 있다. 지방 유형 문화재 제250호이다.

중앙 칸을 통로로 하고 좌우 칸에 나무로 만든 거대한 4천왕상을 배치하고 있다. 수미산 중턱의 동, 서, 남, 북에서 불국 정토의 외곽을 지키는 4천왕은 가장 대표적인 호법 천신이다. 신음하는 악귀를 발로 밟고, 눈을 부릅뜨고 무섭게 노려보고 있는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온몸을 오싹하게 만들지만 4천왕은 악한 사람에게는 벌을, 착한 사람에게는 복을 준다고 한다.

칼을 들고 있는 지국(持國) 천왕은 수미산의 동방을 지키는 신장이다.

수미산의 서방을 지키는 광목(廣目) 천왕은 비파를 들고 있다.

수미산의 남방을 지키는 증장(增長) 천왕은 용을 잡고 있다.

수미산의 북방을 지키는 다문(多聞) 천왕은 왼손에 보탑(寶塔)을 받들고, 오른손에 창을 들고 있다.(통도사 자료에서)

 

 

 범종루

천왕문의 좌측에 있는 가람각(한쪽 모통이에 있어 찾기가 어려움. 범종각에서 보면 찾기가 쉬움))

 가람각 내부

 범종루

  영산전

하로전(下爐殿)의 사상적 기반이 되는 곳으로서, 부처님이 계신 불국토를 형상화한 것이 바로 영산전(靈山殿)이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식 맞배 지붕으로 전면의 주칸이 다른 건물과 달리 아주 넓게 자리하고 있다. 지방 유형 문화재 제203호이다.

통도사의 전각 가운데 가장 오래된 영산전은 1704년에 건립된 것으로 단청 문양 및 색상도 원래의 모습에서 크게 변형되지 않았고, 내부 가구 형식도 조선 초기의 품격을 잘 나타내고 있다. 다보탑을 비롯하여 양류 관음, 나한상, 여러 가지 경전의 내용 등을 그린 벽화도 품격 높은 수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부처님의 일생을 압축하여 그린 8상도는 보물 제1041호로 지정될 만큼 당시의 불화 화풍을 이해하는 데 귀중한 그림이다.(통도사 자료에서)

통도사 삼층석탑

경상남도 양산국 하북면 지산리 소재. 通道寺 극락전(極樂殿) 앞에 있는 고려 초기의 삼층석탑. 높이 3.6m.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 18호.

2중기단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세운 일반형석탑이다. 하층기단(下層基壇) 면석(面石)에는 안상(眼象)이 장식되고, 上層基壇은 면석에 양우주(兩隅柱)와 탱주(撑柱) 1주가 모각되었으며 갑석에는 얕은 부연(副椽)이 있다.

탑신부는 탑신석과 옥개석(屋蓋石)이 각기 하나의 돌로 되었으며 옥개받침은 각층 4단씩이다. 상륜부(相輪部)는 노반(露盤)위에 몇 개의 부재가 있다. 기단부와 탑신부의 양식 수법으로 보아 고려 초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약사전

극락전과 마주하고 있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다포계 양식의 맞배 지붕 건물이다. 측면에는 공포(空包)가 생략되었으며, 앞뒤 면에만 공간포(空間包)를 배치한 점이 특색이다. 지방 유형 문화재 제197호이다.

내부의 천장은 층급(層級)을 둔 우물 정자 모양이며, 어간 후면에는 약사 후불 탱화를 봉안하였다.(통도사 자료에서)

 극락전

  불이문

불이(不二)란 둘이 아님을 뜻한다. 생(生)과 사(死)가 둘이 아니고, 번뇌와 깨달음, 선(善)과 불선(不善) 등 모든 상대적인 것이 둘이 아닌 경지를 의미한다. 불이문을 통과하여 불이의 진리로써 모든 번뇌를 벗어 버리면 부처가 되고 해탈을 이룬다고 하여 해탈문이라고도 부른다. 건물의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다포식 팔작집이며, 동향의 전면 3칸에 판문(板門)을 달아 출입하게 되어 있다. 지방 유형 문화재 제252호이다.

대들보 위에 두터운 솟을 합장재를 삼각형으로 짠 뒤, 그 부재 위에 장혀를 걸쳐 중도리, 하중도리, 종도리를 얹어서 서까래를 받치고 있다. 이는 고식(古式)의 가구법(架構法)으로 흔히 볼수 없는 형식이다.

중앙에는 대들보 대신 코끼리와 호랑이가 서로 머리를 받쳐 지붕의 하중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매우 독특하다.(통도사 자료에서)

통도사

영축산속에 자리한 통도사는 천년 고찰로서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모시고 있는 우리나라 3보 사찰 중 불보종찰로 꼽히는 명찰이다.

당나라에 수도를 떠난 자장율사가 석가의 진신사리를 모시고 와서 신라 27대 선덕여왕 15년(646년)에 이 절을 지었다고 하며, 그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1300여년동안 법등이 꺼진 적이 없는 사찰로 대웅전 안에 불상을 모시지 않고 불단만 마련해 놓고 있으며 대신 대웅전의 금강계단에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시고 있는 것이 이 사찰의 특징임.

또한, 통도사는 우리나라 사찰 중 유형불교 문화재를 가장 많이 보유(43종)하고 있으며, 1999년 4월 15일 신축개관한 통도사 성보박물관은 세계박물관을 통틀어 가장 풍부한 불교 유물을 자랑하는 국내 유일한 불교회화 전문 박물관이 있다.

특히, 절 주위 영축산기슭 울창한 숲 속에 20개 암자가 자리 잡고 통도사를 앞섶에 싸듯이 안고 병풍을 두른 듯한 연봉사이로 기암괴석의 절벽과 어우러진 영축산을 찾는 등산객이 많아 등산코스로도 이름난 곳이기도 하다.(양산시청 자료에서)

관음전

정면 3칸, 측면 3칸의 정방형 평면 건물로 다포계 주심포식 양식의 팔작집이다. 건물 내부에는 기둥을 세우지 않았고, 앞뒤 기둥 위에 직접 대들보를 걸어 넓게 트인 내부 공간을 꾸몄다. 관세음 보살상을 안치하였고, 내부 벽화에는 보타락가산에 머물고 있는 관음의 모습과 남순 동자의 형상, 32응신(應身)을 상징하는 여러 형태의 관음상을 표현한 벽화들이 있다. 지방 유형 문화재 제251호이다.(통도사 자료에서)

  용화전

대광명전과 관음전 사이에 위치한 용화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 지붕 건물이다. 1369년에 초창되었으나 현재의 건물은 1725년에 청성(淸性) 대사에 의해 중건되었다. 지방 유형 문화재 제204호이다.

내부에는 약 2미터나 되는 거대한 미륵불 좌상을 봉안하였다. 안쪽 공포는 5출목 형식으로서, 천장 높이까지 공포가 짜여져 11포의 화려한 공포 구성을 이루고 있는 것이 불당의 특징이다. 용과 관련된 전설이 전해 내려와 건물 내부의 담에는 용의 장식이 있다.(통도사 자료에서)

용화전 내부

 봉발탑

 해장보각

통도사를 창건한 자장(慈藏) 율사의 영정을 봉안한 조사당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 지붕으로 앞쪽에 툇간을 달은 형식을 취하고 있어 내부 앞쪽에 내진 기둥이 배치되어 있다. 내부에는 창건주 자장 율사의 영정과 함께 고려 대장경 1,234권이 봉안되어 있다. 해장보각이라는 전각 이름은, 경전이 용궁 속에 보관되어 있었다는 인도 고래의 전설을 따서 지은 것이라 한다. 또한 대장경의 내용이 바다 속의 수많은 보배와 같이 무궁 무진하다는 의미도 지닌다.(통도사 자료에서)

 

팔정도

 

  세존비각

이 비각은 1706년 계파 대사가 금강계단(金剛戒壇)을 중수하고 석가여래의 영골 사리비를 세우면서 건립한 것이다. 비석에는 자장 율사가 중국에서 부처님의 진신 사리를 가져 온 일과 임진 왜란 당시 사명 대사가 진신 사리를 적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두 개의 함에 담아 금강산에 계신 서산 대사에게 보냈더니, 서산 대사는 이 곳 영취산 통도사가 바로 문수 대성이 자장 스님에게 부촉한 승지이므로 이 곳에 다시 봉안하도록 했고, 한 개의 함은 태백산으로, 다른 한 개는 현재의 계단에 봉안하도록 하였던 사실들을 석비 전면에 기록하고 있다.(통도사 자료에서)

 

통도사 5층석탑

 통도사 대웅전.금강계단.적멸보궁(현판이 3개가 걸림)

대웅전

통도사의 중심 건물로서 정면 3칸, 측면 5칸의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다.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1645년 인조 23년에 우운(友雲)이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다른 전각과는 달리 정면의 너비가 측면보다 좁은 장방형을 이루고 있다. 불이문 쪽과 금강계단을 향하여 이중으로 정면성을 주기 위하여 합각(合閣)을 양 측면, 전면 3곳에 마련한 것이 이채롭다.

조선 중기 불당 건축의 특수형으로 불당 연구 및 목조 건축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서 주목받고 있으며, 국보 제290호이다. 사방을 둘러 가며 각각 다른 현판을 걸어 놓았다. 동쪽에는 적멸보궁, 서쪽에는 대웅전, 남쪽에는 금강계단 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그 중에서 정면에 있는 금당계단(金剛戒壇)이란 글씨는 일주문과 마찬가지로 흥선 대원군 이하응이 썼다.

통도사의 대웅전은 내부에 불상을 봉안하지 않은 것이 특이하다. 불상 대신 부처님의 진신 사리를 대웅전 북쪽의 금강계단에 봉안했기 때문에 대웅전은 불상이 없으며 예배를 올리는 배전(拜殿)의 기능만을 갖고 있다. 불당 내부에는 북쪽에 동서로 길게 불단만이 있으며, 그 앞쪽 중앙에 설법상이 있다.(통도사 자료에서)

 

 

 

대웅전 소맷돌

대웅전의 소맷돌

 기단의 문양

대웅전의 꽃창살

 대웅전의 연봉과 철기와(아래 부분의 암기와)

  명부전

정면 5칸, 측면 2칸의 긴 장방형 평면으로 다포식 팔작집이다. 낮은 기단에 위에 주초를 놓고 그 위에 두리기둥을 세웠으며 공포는 조선 말기에 흔히 볼 수 있는 세부(細部)가 많이 생략된 절충식 수법으로 짜여져 있다. 통도사내의 여러 건물 중 조선 말기인 고종 시대에 지어진 것으로 그 당시 건축 양식의 시대적 변모를 엿볼 수 있다. 지방 유형 문화재 제195호이다.

명부전(冥府殿)의 ‘명부’란 저승이나 지옥 세계를 의미한다. 명부의 주존(主尊)이 지장(地藏) 보살이기 때문에 지장전이라고도 한다. 중앙의 여섯 칸에는 저승의 염라 대왕 등 10대왕을 봉안하였고, 시왕의 탱화를 봉안했으나, 탱화는 경내에 있는 성보 박물관으로 옮겨서 보관하고 있다.(통도사 자료에서)

 

 삼성각과 구룡지

구룡지

전설에 의하면 통도사 터는 용이 사는 큰 호수였다고 합니다. 어느날 자장율사 (통도사 창건자)가 용이 호수를 떠나주도록 주술과 불경을 외었는데 용들이 거절했다고 합니다. 자장율사는 종이에 불을 뜻하는 火자를 써 하늘로 던지고는 동시에 그의 긴 지팡이로 호수의 물을 내리쳤습니다. 그러자 호수의 물이 끓기 시작했습니다. 호수의 용들이 뜨거워서 견디지 못하고 아직도 용들의 피자국이 남아있는 절벽으로 날아갔습니다. (용의 피자국이 있는 바위라 해서 용혈암이라 부름)

다섯 마리의 용이 사찰 넘어 서남쪽 계곡으로 날아갔으며 (이 계곡을 오룡곡이라 부름), 마지막 용은 눈이 멀어 자장율사에게 절을 하면서 영원히 사찰을 지키겠다고 맹세했습니다. 그리하여 현재 구룡지라 부르는 곳에 머무는 것을 허락받았다고 합니다.(여행정보에서)

응진전

지대석(地臺石), 면석(面石), 갑석(甲石) 등을 고루 갖추어 고풍스런 멋이 느껴지는 기단 위에 동향으로 앉아 있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주심포식 맞배집으로서, 비교적 간결하지만 주심포 형식으로 된 공포는 다포식을 많이 수용한 절충 양식을 보여 준다. 지방 유형 문화재 제196호이다.(통도사 자료에서)

법당 중앙에는 매우 우수한 기법으로 섬세하게 조성된 석가 여래 좌상과 좌우에 미륵 보살과 제화갈라 보살 등이 봉안되어 있다. 미륵 보살은 석가 여래의 일생(一生) 보처(補處)이고, 제화갈라 보살은 과거불로서 응진전내에는 3세(世)의 불상을 다 모시고, 주위에 16나한과 범천(梵天), 제석(帝釋)을 같이 봉안하였다

응진전 내부

삼성각

삼성각 내부

 

 

산령각

산령각 내부

금강계단

통도사 창건의 근본 정신을 간직하고 있는 최상의 성지이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7세기 중반에 처음 축조되었고, 그 뒤 일곱 번에 걸친 수리가 있어서 지금은 원래의 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현재의 금강계단(金剛戒壇)은 석종형의 부도, 각 상들의 조각 수법 등으로 미루어 보아 17세기 이후의 것으로 추정된다. 모습은 바뀌었지만 문헌 기록상 가장 오래된 계단이며, 같은 성격을 띤 금산사나 용연사의 것에 비하여 규모가 크고 조형미도 뛰어나기 때문에 우리 나라의 계단 가운데서도 첫손에 꼽히는 것이다. 계단 주변에는 석문(石門)과 석조 난간을 둘러 부처님의 진신 사리를 수호하고자 하였다. 석단 네 귀퉁이에는 4천왕의 입상이 있고, 기단의 상하 면석에는 비천상과 불보살상을 배치하였다. 계단의 하층 면석에는 총 32구의 불보살상을 새겨 놓았고, 상층 면석에는 불보살 및 비천상을 부조로 새겨 놓았다. 하층보다는 상층의 양식이 유연한 수법이 월등하다. 두 손은 무기 대신에 천의(天衣) 자락을 쥐고 있는 듯한 신장(神將)의 퉁방울눈이 인상적이다. 계단 상층 중심부에 위치한 석종형 부도는 복련과 앙련의 상하 연화대 위에 위치하며, 그 조각 수법이 다른 조각과는 달리 매우 우수하다. 동서 좌우에는 유연한 비천상을 부조로 나타냈고, 정면인 남쪽에는 구름 속에 보합(寶盒)의 향로를 조각하였다(통도사 자료에서)

 장경각

대광명전

경상남도 양산군 하북면 지산리 소재 통도사 경내에 있는 조선 중기의 목조건물. 정면 5칸, 측면 3칸의 겹처마 팔작지붕건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94호.

1725년(영조1)에 축환대사(竺環大師)가 중수하였다. 막돌을 바른층쌓기하고 상부에 장대석으로 갑석(甲石)을 만든 기단(基壇) 위에 막돌 초석을 놓고 약한 배흘림이 있는 두리기둥을 세웠다. 기둥 웃몸은 창방(昌枋)으로 결구하고 이 위에 평방(平枋)을 둘러 공포를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놓은 다포식(多包式)을 이루고 있다. 공포의 짜임은 외3축목(外三出目)·내4축목(內四出目)으로 제공(諸貢) 위에 놓이는 살미첨차의 끝은 강직한 앙설(仰舌)로 되어 잇고, 내부에서 판형(板形)으로 연꽃봉오리를 조각하여 장식하였다. 정면 어간(御間) 양측의 기둥머리에 용머리를 조각하여 꽂아놓은 것은 내공포의 판형이나, 연꽃봉오리 조각과 더불어 중기 이후의 말기적인 수법이라 할 수 있다.

가구(架構)는 후면 내진(內陣)에 세운 고주(高柱)와 전면 평주(平柱)에 대들보(大樑)를 걸고 이 위에 동자기둥을 세워 종보를 걸었으며, 우물천장을 가설하여 천장 속을 가리고 있다. 정면의 각 주간(柱間)에는 아름다운 빗살창호를 달고, 측면에는 정자살창호를 두 짝 달았다.(통도사 자료)

대광명전의 비로자불

노천유물관

 노천유물관 내부

 

 

 

 

 

 

寶物 334호  통도사 은입사동제향로 (경남양산시)

향로란 절에서 마음의 때를 씻어준다는 의미를 지닌 향을 피우는데 사용하는 기구를 총칭하는 말로 화완, 향완이라고도 한다. 향로는 모양에 관계없이 향을 피우는 도구를 총칭하는 말이고, 화완·향완은 밥 그릇 모양의 몸체에 나팔모양의 높은 받침대를 갖춘 향로만을 말한다. 높이 33㎝, 입지름 30㎝, 받침대 지름 24.7㎝인 이 향로의 전체는 굵고 가는 은·금실을 이용하여 연꽃무늬, 덩굴무늬, 봉황, 구름무늬로 가득차게 새겼다. 몸통 중앙 네 곳에 원을 두르고 그 주위에 꽃무늬가 있다. 현재 원 안에 범자를 찍은 둥근 주석판을 4개의 못으로 고정시켰는데, 이것은 나중에 보수한 것이다. 원 사이 공간은 덩굴무늬가 새겨 있으며, 몸통 아래에는 연꽃무늬가 돌아가며 새겨져 있다. 특히 몸통의 덩굴무늬 사이를 은판으로 채운 것은 이 향로의 두드러진 특징이다. 받침대는 3단으로 되어 있으며 윗쪽은 연꽃무늬, 아래쪽은 덩굴무늬, 중앙은 넓은 공간에 구름문과 봉황이 굵고 가는 선으로 배치되어 있다.
입 주위의 넓은 테인 전의 일부가 약간 휘어진 것이 흠이지만, 외형상 새긴 무늬가 매우 정교하고 세련된 것으로 보아, 고려 전기 작품으로 볼 수 있다.(문화재청 : 자료)

천년유물, 과학을 만나다2 벽화문화재보존처리팀

한국의 종교 유적지를 찾아서 : http://visit.ocp.go.kr/visit/cyber_new/serv04.j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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