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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청도

운문사

노촌魯村 2007. 5. 21. 14:05

 운문사 들어 가는 길

 운문사 법종루

운문사는 청도군에서 동으로 약 40㎞ 지점에 위치한 대한불교 조계종 제9교구 말사이다. 서기 560년 (신라 진흥왕 21년)에 한 신승(神僧)에 의해 창건되어 원광국사, 보양국사, 원응국사 등에 의한 제8차 중창과 비구니 대학장인 명성스님의 제9차 중창불사에 의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경내에는 천연기념물 180호인 처진 소나무와 금당 앞 석등을 비롯한 보물 7점을 소장하고 있는 유서깊은 고찰로서, 사찰 주위에는 사리암, 내원암, 북대암, 청신암 등  4개의 암자와 울창한 소나무, 전나무 숲이 이곳의 경관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특히 이 곳은 신라 삼국통일의 원동력인 세속오계를 전한 원광국사와 삼국유사를  지은 일연 선사가 오랫동안 머물렀던 도량이다. 지금은 260여명의 학승들이 4년간 경학을 공부하는 우리나라 최대의 비구니 교육기관이 자리한 사찰이다

 

처진 소나무(천연기념물 제180호)

처진 소나무는 가지가 밑으로 축 처진 모습을 하고 있으며 매우 희귀하다 운문사의 처진 소나무는 운문사의 앞뜰에서 자라고 있으며 높이는 9.4m, 둘레는 3.37m이다. 나무의 모습이 낮게 옆으로 퍼지는 모습 때문에 한때 반송(盤松:키가 작고 밑동부터 가지가 옆으로 퍼지는 소나무)이라고 부르기도 했으나, 이 나무는 3m 정도의 높이에서 가지가 사방으로 퍼지면서 밑으로 처지기 때문에 처진 소나무로 본다. 운문사는 1,400년 전에 지었다고 하고 임진왜란(1592) 때 이 나무는 상당히 컸었다하니 나무의 나이는 약 400년 정도로 추정된다 이 처진 소나무는 고승(古僧)이 시들어진 나뭇가지를 꺾어서 심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으며, 스님들은 매년 봄·가을에 뿌리 둘레에 막걸리를 물에 타서 뿌려주는 등 정성을 다하여 가꾸고 있다. 운문사의 처진 소나무는 나무의 모양이 매우 아름답고, 전형적인 처진 소나무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생물학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크며, 문화적 자료로서의 가치도 있어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문화재청)

 원응국사비각

 원응국사비(보물 제316호)

 

 운문사 폐탑

 칠성각

 칠성탱화

 북두칠성탱화

 

 만세루

청도 운문사 만세루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됐다. 경상북도(도지사 김관용)는 2010년도 건축분과 4차 문화재위원회를 최근 열고 이같이 결정했다. 청도 운문사 만세루는 운문사 경내에 위치해 있으며, 정면 7칸, 측면 4칸의 일(一)자형 겹처마 팔작지붕 형태를 갖춘 거대한 규모의 전각이다. 만세루의 건립 시기는 17세기경으로 추정된다. 경북도 관계자는 “만세루는 건축적.역사적 내용이 풍부한 건축물이며 17세기를 전후한 시대적 건축표현을 담고 있다”며 “더불어 독특한 가구수법 등이 높이 평가돼 유형문화재로 지정하게 됐다”고 밝혔다.

 명부전

 명부전 지장보살

 관음전

 관음전 관세음보살

석조여래조상과 사천왕상석주 (클릭하시면 큰 사진...)

 운문사 석조여래조상(보물 제317호)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운문사에 모셔져 있는 높이 0.63m의 고려시대 석조여래좌상이다. 광배(光背)와 대좌(臺座)를 모두 갖추고 있는 완전한 형태의 불상이지만, 호분이 두껍게 칠해져 세부표현이 잘 나타나지 않는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그 위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분명하다. 신체 비례에 비해 얼굴이 큰 편인데, 가는 눈썹·작은 눈·오똑한 코·작은 입 등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평판적인 모습이다. 옷은 양 어깨에 걸쳐 입고 있으며 그 안에 비스듬히 표현된 속옷이 보인다. 오른손은 무릎 위에 올려 손끝이 아래로 향하고 있고 왼손은 배꼽 부분에 놓여져 있는데, 손이 작고 표현이 섬세하지 못해 투박한 모습이다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빛을 형상화한 광배는 투박한 모양이며 가장자리에 형식적인 불꽃무늬가 새겨져 있다.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는 크게 3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매우 특이한 양식으로 주목된다. 맨 윗부분은 평면 타원형으로 14개의 연꽃잎이 새겨져 있고, 가운데는 6각형이며, 아랫부분은 긴 6각형에 18개의 연꽃잎이 표현되어 있다 이 불상은 겉옷 안에 표현된 속옷, 전반적으로 투박해진 표현기법 등에서 9세기 불상을 계승한 10세기 초의 불상으로 보인다(문화재청)

 운문사 사천왕 석주(보물 제318호)

사천왕석주는 운문사 작압전(鵲鴨殿)안에 모셔진 석조여래좌상(보물 제317호)의 좌우에 각각 2기씩 모두 4개가 돌기둥처럼 배치되어 있다. 원래의 위치는 아니고, 이곳에 세워진 벽돌탑의 1층 탑신 몸돌 4면에 모셔져 있던 것으로 보인다. 모두 갑옷을 입고 무기를 들고 있으며, 머리 뒷쪽으로 둥근 광채를 띤 채 악귀를 발로 밟고 있다 사천왕은 부처를 모시는 단의 사방을 지키기 위해 두는 방위신(方位神)의 성격을 띠는데, 동쪽이 지국천왕(持國天王), 서쪽이 광목천왕(廣目天王), 남쪽이 증장천왕(增長天王), 북쪽이 다문천왕(多聞天王)이다 이 4개의 사천왕상 돌기둥은 신체가 큰 반면, 돋을새김을 뚜렷하게 하지 않아 양감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또한 체구도 약해보이고 얼굴 생김새도 부드러운 것으로 보아 시대가 내려가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880년에 만들어진 보조선사탑(普照禪師塔) 사천왕상이나 철감선사탑(澈鑑禪師塔) 사천왕상과 비슷하지만, 보다 크고 띠주름도 굵어지는 등 형식화된 면이 있어서 8세기 석굴암의 사천왕상과 비교하여 시대적인 차이를 느낄 수 있다 통일신라 후기 또는 후삼국시대인 900년경을 전후해 만들어진 작품으로 짐작된다(문화재청)

 

작압전의 옛 모습

지금의 작압전은 1941년에 지어졌다. 그 이전에는 위치는 같은나 모양은 지금과 판이하다. 전탑이나 모전석탑과 목조건물을 합쳐놓은 모습이다. 몸체는 감실이 있는 전탑이나 모전석탑의 모양이고 지붕은 맞배지붕의 목조건물이다.

작압전 기단(기단에 안상문이 있는 탑재가 있음)

 운문사 대웅보전 앞

운문사 삼층석탑(보물 제678호)

운문사는 고려시대의 승려 일연이『삼국유사』를 저술하였던 곳으로, 지금도 절 안에는 3층 석탑을 비롯하여 석등, 사천왕석주, 원응국사비, 석조여래좌상 등의 문화재들이 보존되어 있다. 대웅보전 앞에 동·서로 서 있는 이 두 탑은 2단의 기단(基壇)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으로 규모와 양식이 서로 같다 각 층의 기단에 기둥모양을 본떠 새기고, 특히 윗층 기단에는 8부중상(八部衆像)을 새겨 놓았는데 모두 앉아 있는 모습이다.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하나의 돌로 이루어져 있는데 몸돌은 모서리마다 기둥모양이 새겨져 있다. 지붕돌은 처마 밑이 수평을 이루며, 밑면의 받침은 5단이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의 각 부분들이 차례로 올려져 있는데, 모두 본래의 것들이다 기단의 가운데기둥이 아래층 기단에서는 2개이던 것이 윗층 기단에서는 1개로 줄어들고, 표면에 조각을 둔 점 등으로 보아 9세기에 세워진 것으로 여겨진다. 기단부가 몹시 부서져 무너지기 직전이던 것을 일제시대에 보수하였는데 이 때에 팔부중상 등 일부를 새로운 돌로 보충하였다(문화재청) 

 운문사 삼층석탑(동탑)

 

 

 

 

운문사 삼층석탑(서탑)

 

 

 대웅보전 앞의 삼층석탑과 정원

 오백전

 오백전 내부(클릭하시면 큰 사진...)

 오백전 내부

 오백전 오백나한

 운문사 석등

 운문사 대웅보전 앞 석등

석조문화재를 찾아서(진리를 밝히는 등불 석등. 통일신라시대 국가지정) : http://visit.ocp.go.kr/visit/cyber_new/serv03.jsp

 대웅보전(보물 제835호)

신라시대에 세운 운문사는 여러 차례 보수를 거쳤는데 지금의 절은 조선 숙종 44년(1718)에 있었던 네 번째 보수 때의 것이다. 대웅보전도 이때 세운 것으로 추정한다 앞면 3칸·옆면 3칸 규모이며 기둥 사이의 간격을 넓게 잡아서 같은 규모의 건물보다 크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조선 후기의 일반적인 다포계 건물들과는 달리 장식으로 치우치지 않았다. 앞면에는 꽃무늬를 넣은 문을 달았는데, 특히 가운데 칸은 넓어 5짝 여닫이문을 달았다. 안쪽은 큰 기둥을 하나만 세워 넓고 탁 트인 공간을 꾸미고 있다. 천장의 가운데는 우물 정(井)자 모양의 천장으로 꾸미고 화려하게 채색해 놓았다 건물의 짜임이 조선 중기 양식을 잘 나타내고 있어 건축사 연구에 소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문화재청)

 대웅보전 내부(비로자나불)

청도 운문사 대웅보전 관음보살·달마대사벽화(淸道 雲門寺 大雄寶殿 觀音菩薩·達摩大師壁畵)’ 보물로 지정 예고하였다.(2014년1월13일)

 거대한 흙벽 화면에 높고 험준한 바위산을 배경으로 온화하고 화려한 관음보살과 호방하고 대담한 달마대사를 대비시켜 그린 작품이다. 한 화면에 관음과 달마를 나란히 표현한 벽화의 유일한 사례이자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초반경의 불화양식을 보여주는 자료로서 가치가 큰 것으로 평가된다.

 대웅보전 벽화

 대웅보전 벽화

 대웅보전 벽화

 대웅보전 벽화

 대웅보전 벽화

 대웅보전 벽화

 운문사 법륜

 만세루 내부의 범종

 대웅보전(최근에 건립)

 대웅보전 내부

 응진전

 응진전 내부

 

 

 응진전 벽화(동자들의 놀이 모습이 잘 나타나 있음)

응진전 벽화(동자들의 놀이 모습이 잘 나타나 있음)

응진전 벽화(동자들의 놀이 모습이 잘 나타나 있음)

 응진전 벽화(동자들의 놀이 모습이 잘 나타나 있음)

 응진전 벽화(동자들의 놀이 모습이 잘 나타나 있음)

 

 

 응진전 벽화(동자들의 놀이 모습이 잘 나타나 있음)

 응진전 벽화(동자들의 놀이 모습이 잘 나타나 있음)

 응진전 벽화(동자들의 놀이 모습이 잘 나타나 있음)

 응진전 벽화(동자들의 놀이 모습이 잘 나타나 있음)

 응진전 벽화(동자들의 놀이 모습이 잘 나타나 있음)

 처진 소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