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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랑유적지

용담정(龍潭亭)

노촌魯村 2009. 2. 12. 22:35

19) 용담정(龍潭亭)

 

 

경주시 북쪽 교외 현곡면 소재지에서 북쪽으로 약간 올라가다가 왼쪽으로 갈라지는 포장도로를 따라 약4km 쯤 가면 용담정이 있다. 이 용담정은 천도교의 총 본산이다. 천도교는 원래 동학(東學)으로서 1860년(철종11) 최제우(崔濟愚)가 창건하였다. 최제우는 화랑들의 활동 무대였던 고도 경주의 몰락한 양반 집안에서 태어났다. 1855년(철종6) 양산군(梁山郡) 내원암(內院庵)에서 수도 생활을 시작하여 1860년 4월 천주(天主) 강림(降臨)의 도를 깨달아 동학을 창시했다고 한다.

19세기 후반 안으로 어지러운 정치와 밖으로 서양 세력의 침투로 민심이 동요하고 사회가 불안하게 되어, 백성들이 믿고 의지할 새로운 종교를 희구하게 되었다. 종래의 종교는 부패하고 쇠퇴하여 민중들의 안식처 역할을 담당하지 못하였다. 이 때 경주에서 최재우가 제세구민(濟世救民)의 뜻을 품고 이질적인 서학(西學 : 천주교)에 대응하여 민중의 정서에 부합하는 동학을 창시하였던 것이다. 동학은 민족고유의 신앙에 바탕을 두고 풍수사상, 유(儒), 불(佛). 선(仙)의 사상과 융합하고 서학도 포용하였다. 이 동학의 근본이념은 인내천(人乃天)사상으로, 이것은 바로 인간존중의 정신이다. 동학사상이 고유신앙과, 유, 불, 선사상을 융합한 데에서 우리는 화랑정신과 상통하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화랑정신은 특정한 한 시대의 것이 아니라 민족사의 내면에 잠재한 줄기찬 흐름으로서, 이 민족의 고난과 시험을 당할 때는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인간을 중시하여 신분, 적서차별 등 봉건적 질서를 부정하는 동학은 민중들의 열렬한 호응을 받았으나, 집권자들에게는 용납될 수 없었다. 최제우는 포교를 시작한지 3년만인 1863년(철종14), 혹세무민(惑世誣民)이라 하여 체포되어 그 다음 해에 대구감영에서 순교당했다. 그 후 2대 교주 최시형이 비밀리에 교조(敎祖)의 유문(遺文)인 동경대전(東經大典)과 용담유사(龍潭遺詞)를 간행하고 교세를 확대시켰다. 1890년대에 일어난 동학농민전쟁은 반봉건, 반침략의 근대민족운동이었다. 그 후 동학은 손병희에 의해 천도교로 개명하고 민족종교로 발전되어갔다. 천도교는 1919년 민족적 의지가 하나로 결집되어 일어난 3.1운동을 주도하였다. 화랑정신은 동학사상을 거쳐 3.1정신으로 그 맥락이 이어지는 것이다.

 

 

 

 최제우 동상

 

 용담정 거북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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