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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랑유적지

홍효사(弘孝寺)터

노촌魯村 2009. 2. 12. 22:34

18) 홍효사(弘孝寺)터

경주시에서 서쪽으로 약 7km되는 경주시 현곡면에 손순의 효행 설화를 간직한 홍효사가 있었다. 현곡면 남사동의 안골짜기에 북골(鐘洞)이 있는데 이 곳이 돌북이 나온 곳이라 하며, 그 안에 종동사(鐘洞寺)터가 있어 , 그 곳이 홍효사(弘孝寺)터 인 듯 하나 최근 주민들이 밭을 갈다가 출토된 초석(礎石)들은 묻어 버렸다고 하여 확인할 수 없다. 또 남사의 동남 골에도 절터가 있으니 그 곳이 홍효사터이고 종동사터는 석종(石鐘)이 나온 곳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리고 그 부근에 순의정 혹은 순정이라고 부르는 곳이 있는데 여기에는 조선말기 학자 선재(性齋) 허전(許傳)이 쓴 손효자유허비(孫孝子遺墟碑)가 있었는데 근년에 어떤이가 없애버렸다고한다. 손순의 효행 설화는 우리 조상들이 가지고 있던 육친애(肉親愛)나 유교적 효(孝)사상이 새로 전래해 온 불교사상과 융합해가는 이러한 여러 사상의 포괄된 표현인 것이다. 삼국유사에 손순의 고사를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손순(孫順)은 모량리(牟梁里)인으로 부인과 함께 남의 집에 품을 팔아 곡식을 얻어 늙은 어머니를 봉양하였다. 그런데 그의 어린 자식이 늘 늙은 어머니의 음식을 가로채 먹음으로 이를 민망히 여겨 그 아내와 상의하였다. “아이는 다시 얻을 수 있으나 어머니는 다시 얻기 어렵소. 아이가 어머니의 음식을 빼앗아 먹으니 어머니의 굶주림이 심하오. 차라리 이 아이를 묻어 버리고 어머니의 배를 부르게 하는 것이 좋겠소.”하고 손순 내외는 아이를 업고 취산(醉山) 북쪽 골짜기에 가서 땅을 팠다. 자식을 묻기 위하여 판 구덩이에서 홀연 이상한 돌종을 얻었다. 두 사람은 이 종을 나무 위에 걸어 두고 두드려 보았더니 맑고 아름다운 소리가 났다. 그의 아내가 “이것은 기인한 일로 이 아이의 복 같으니 묻지 맙시다.”라고 하였다. 손순은 아이를 업고 종을 가지고 돌아왔다. 집에다 종을 달아 놓고 두드리니 그 소리가 대궐에까지 은은히 울려 퍼졌다. 흥덕왕이 듣고 좌우에 이르기를 “서쪽 교외에 이상한 종소리가 나는데 대단히 맑으니 속히 알아보라.”하였다. 왕의 사자가 와서 보고 종을 얻은 경위를 아뢰니, 왕이 듣고 크게 감동하여 상으로 집 한채를 주고 해마다 벼 50석을 주어 진순한 효도를 널리 알리게 하였다. 진성여왕 때 후백제가 쳐들어와서 종은 없어지고 절만 남았다. 그 종을 얻은 땅을 완호평(完乎坪)이라 이름하였는데 지금은 와전되어 지량평(枝良坪)이라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