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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영천

강호정(江湖亭)

노촌魯村 2009. 9. 1. 19:10

 


강호정(江湖亭.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71호(75.8.18).영천시 자양면 성곡리 산 78번지)

이 건물은 조선 선조 32년(1599)에 의병장 정세아(鄭世雅)가 임란후 고향에 돌아와 선조 32년(1599) 자호(紫湖) 언덕에 정자를 짓고 여러 교우와 학문을 강론하였던 곳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 홑처마 맞배지붕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양래간(兩來間)은 방이고 중앙칸과 전면 퇴간은 누마루 형식이며 기둥은 원주(圓柱)로 되어있는 익공계(翼工系)의 삼량(三樑)집이다. 1974년에 영천댐 공사로 수몰됨에 따라 용산동 751번지에서 현위치로 이건하였다. (출처:문화재청)
정세아(鄭世雅 1535~1612) : 자는 화숙(和叔) 호는 호수, 본관은 오천(烏川)이다.
노촌 윤량(魯村 允良)의 아들로 태어났다. 임진왜란에 공이 분개하여 의병을 일으켜 박연(朴淵)에서 왜적을 대파하니 사졸의 기세가 대진(大振 )하는지라 다시 7월 27일 영천성 탈환에 혁혁한 공을 세우고 다시 경주의 적을 진공하여 승전하니 이로 말미암아 낙동강 왼쪽이 온전하였다. 명나라 구원병이 평양, 개성, 서울을 회복하니 공(功)과 벼슬을 사양하고자 양서재로 돌아와서 다시 학문의 길을 찾았다. 나라에서 수차 벼슬을 내렸으나 나가지 않다가 이원익의 청을 이기지 못하여 찰방을 잠시 지내고 돌아왔다. 그리하여 장여헌(張旅軒), 조지산 (曺芝山) 등과 학문을 논하며 조용히 여생을 마쳤다.




 

 

정면 3칸, 측면 2칸 홑처마 맞배지붕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양래간(兩來間)은 방이고 중앙칸과 전면 퇴간은 누마루 형식이다.

 강호정 현판

 강호정에 걸린 자호정사 현판

 강호정에서 본 영천댐

기둥은 원주(圓柱)로 되어있는 익공계(翼工系)의 삼량(三樑)집이다 





 

장렬한 뜻으로 적장의 목 벨 것을 기약하였더니

壯志期梟賊將頭

 쇠잔해진 몸 도리어 귀밑털 센 것에 놀라노라

殘骸驚却邊秋

 밧줄이 있으나 한나라 종군(終軍)이

요청한 것처럼 뜻을 이루지 못하고

有纓未遂終軍請

 힘없는 사람이 공연히 당나라 노두(老杜)처럼

시름을 품는도다

無力空懷杜老愁

 노쇠하고 병든 몸이 어찌 벼슬길에 달려가리요

衰病豈宜馳世路

 물러나 한가로이 지내며맑게 흐르는

시냇물과 노님이 마땅하리

退閒端合玩淸流

 백구도 강호의 늙은이 싫어하지 않나니

白鷗不厭江湖

 이제는 반가이 백구와 죽는 날까지 즐기리라

靑眼從今至死休


강호정에 걸린 호수선생의 시

   

호수(湖叟)정세아(鄭世雅) 묘소(墓所)


영천댐 좌측의 기룡산 기슭 오천정씨 묘역



호수 정세아 묘

증贈 자헌대부資憲大夫 병조판서兵曹判書

행行 황산도黃山道 찰방 강의공剛義公호수湖叟
 정선생지묘 鄭先生之墓

정부인貞夫人 일직손씨一直孫氏 부 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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