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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영천

하천재(夏泉齋)

노촌魯村 2009. 9. 1. 19:28

 

하찬재

 

하천재 현판 

하천재(夏泉齋.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73호(75.8.18).영천시 자양면 성곡리 산 78번지) 

이 묘재는 오천정씨(烏川鄭氏) 문중의 묘소와 강의공(剛義公) 정세아(鄭世雅)의 신도비를 수호하기 위하여 진주목사인 정호인(鄭好仁)이 조선인조 15년(1637년)에 창건하였다고 한다. 강의공은 임진왜란 때 의병대장으로 추대되어 많은 전공을 세웠으나 논공행상에 참여하지 않고 강호정사에서 제자를 기르며 학문을 닦아 덕망이 높았던 선비였다. 현재의 건물들은 후대에 중건된 것으로 보이며 영천댐 수몰지구로 편입되어 1976년 7월 현위치로 이건하였다. 경내에는 추원당(追遠堂), 신도비각등의 건물이 있는데 모두 단순하고 소박하게 짜여져 있다.

정세아(鄭世雅 1535~1612)
자는 화숙(和叔) 호는 호수, 본관은 오천(烏川)이다.
노촌 윤량(魯村 允良)의 아들로 태어났다. 임진왜란에 공이 분개하여 의병을 일으켜 박연(朴淵)에서 왜적을 대파하니 사졸의 기세가 대진(大振 )하는지라 다시 7월 27일 영천성 탈환에 혁혁한 공을 세우고 다시 경주의 적을 진공하여 승전하니 이로 말미암아 낙동강 왼쪽이 온전하였다. 명나라 구원병이 평양, 개성, 서울을 회복하니 공(功)과 벼슬을 사양하고자 양서재로 돌아와서 다시 학문의 길을 찾았다. 나라에서 수차 벼슬을 내렸으나 나가지 않다가 이원익의 청을 이기지 못하여 찰방을 잠시 지내고 돌아왔다. 그리하여 장여헌(張旅軒), 조지산 (曺芝山) 등과 학문을 논하며 조용히 여생을 마쳤다.

 추원당

 추원당 현판

 신도비각

 

 

호수  정세아선생 신도비                                        위의 사진 클릭하시면 원본 사진이 ... 

귀부 

 

 

 신도비각에서 본 광경

 호수선생 묘소

 

 

영천지방 3대 길지로 꼽히는 명당 중 하나인 영천시 자양면 성곡리 기룡산 자락의 정씨 문중 묘역(클릭하시면 원본크기의 사진이 나타납니다. 다음 지도 스카이뷰에서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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