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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상주

남장사(南長寺)

노촌魯村 2010. 5. 20. 07:39

 

 남장사일주문(南長寺一柱門문화재자료 제442호 (상주시).경북 상주시  남장동 502)

이 건물은 잡석(雜石)으로 낮게 쌓은 축대위에 자연석 주초(柱礎)를 양 쪽에 놓고 세웠다. 건물의 특색은 양쪽 기둥 앞뒤로 모난 기둥을 붙여 세우고 다시 또 하나씩의 활주(活柱)를 고여서 중압을 받쳐 주고 있는데 그 주두(柱頭)가 용(龍)의 모양을 하고 있으며 대단히 사실적이다. 정면 추녀 밑에는 '광서8년(光緖八年)'(1882)에 '노악산남장사(露嶽山南長寺)'란 편액이 해강(海岡) 김규진의 글씨로 쓰여져있다. 이 건물의 양식은 ㅡ자형에 정면 1칸(4m), 측면 1칸(2.6m)형태의 3평으로서 전체적으로 건축 외형에서 균형감과 볼륨감이 있으며 특히 구조적인 면을 고려한 까치발의 조각수법이 특이하다. (문화재청 자료)

정면 추녀 밑에는 '광서8년(光緖八年)'(1882)에 '노악산남장사(露嶽山南長寺)'란 편액이 해강(海岡) 김규진의 글씨로 쓰여져있다.

활주(活柱)를 고여서 중압을 받쳐 주고 있는데 그 주두(柱頭)가 용(龍)의 모양을 하고 있으며 대단히 사실적이다.

 

 뿔이 긴 용이 한마리에 짦은 용이 세마리 있음

 

 

남장사는 상주시 남장동 502번지에 소재하는 조계종 산하의 전통사찰로 상주 4장사(尙州 四長寺, 북장사, 갑장사, 승장사 - 현재는 없음)의 하나이다. 830년(흥덕왕 5) 당나라에서 귀국한 진감국사가 개창하여 최초로 머문 사찰로 당시의 절 이름은 장백사(長栢寺)였다. 1186년(고려 명종16) 각원화상이 장백사를 남장사로 개칭하면서 중창하였다. 진감국사는 중국 종남산에서 범패를 배워 830년인 57세때 귀국하여 장백사에 머물면서 832년에는 무량전(현, 보광전)을 창건하고 범패(불교음악, 부처님의 공덕을 찬양한 노래)를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보급한 곳이다. 이 범패는 판소리, 가곡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성악곡중의 하나이다. 종전에는 경남 하동의 지리산에 있는 쌍계사가 최초 보급지로 알려 졌으나 쌍계사에 있는 '진감선사 대공탑비(최치원이 지음)'의 비문에 상주 장백사로 되어 있어 상주 장백사가 범패의 최초 보급지로 알려지게 되었다. 주요 유물로, 철불 좌상(보물 990호)과 목각 후불 탱화(보물 922호) 등의 불교 예술의 걸작품을 보존하고 있으며, 일주문은 지방문화재자료 442호(2003)로 지정되어 있어, 불교 예술의 보고라 일컬을만 하다. 경내에는 1797년(정조 21)에 창건된 관음선원이 있는데, 이곳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각 후불탱(보물 923호)을 보존하고 있다. 이는 화주승 '희선'이 1694년(숙종 20)에 북장사 뒷편 상연암에서 제작되었다가 1819년에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한다.(북장사 사적기) 당초 도지정문화재 58호로 지정되었다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각탱으로 평가를 받아 보물로 승격되었다.  또한, 노악산 기슭에는 1624년(인조 2)에 창건한 중궁암이 있다.

 

 극락보전

 

 극락보전 아미타불

 

 극락보전 천장

 

극락보전 포벽에 그려진 ‘이백기경상천(李白騎鯨上天)’. 수묵담채화 형식. 술과 달을 너무 좋아하여 강에 뜬 달을 잡으려하다가 빠져 죽었다는 전설이 있는 이백은 벽화에서 기마자세로 고래의 등 위에 서서 목적지를 응시하고 남루한 행색에 초췌한 얼굴이다.

발밑엔 술병이 있고, 고래는 잉어에 가깝고, 필치 역시 해학적으로 표현됐다.    

                                                            

 범패와 관련된 벽화

 

별주부전 그림

 

 해치. 입에 불을 품어내고 있다.

 

 코끼리 상

 

 보광전 

 

 남장사보광전목각탱(南長寺普光殿木刻幀보물  제922호)

탱화란 천이나 종이에 불화를 그려 족자나 액자형태로 만들어 거는 그림인데, 이 탱화는 종이나 비단이 아닌 나무를 조각해서 만든 목각탱이다. 이 목각탱은 가로 236㎝, 세로 226㎝, 두께 10∼12㎝로 비로자나불을 모시는 보광전의 후불탱화로 사용되고 있다. 길쭉한 나무판 8장을 연결하여 연꽃 위에 앉아있는 본존불을 중심으로 좌우 4단씩 3열로 10대보살과 10대제자, 사천왕을 계단식으로 배치한 독특한 구조를 보여주고 있다. 보살상들은 모두 머리에 보관을 쓰고 꽃가지를 들고 있으나 한 분만 합장하고 있으며 관음과 대세지 보살은 연꽃 위에 앉았고 다른 인물들은 서거나 무릎을 꿇고 있다. 각 인물들 사이에는 연꽃과 꽃봉오리 등으로 장식하였고 가운데 있는 본존의 머리 위에는 상서로운 구름이 솟아올라 2줄기로 갈라져 있다. 몸에 비해 큰 방형의 얼굴은 앞으로 약간 숙여 사바세계를 굽어 살피듯 평담하게 묘사되었다. 명문이 남아있지 않아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조선 후기 불화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는 작품으로 회화적이면서도 조각적인 매력을 간직한 귀한 작품이다. (문화재청 자료)

 

 상주남장사철불좌상(尙州南長寺鐵佛坐像.보물  제990호)

경상북도 상주시 남장사 보광전에 모셔진 철조비로자나불좌상으로 지금은 불신만 남아있다. 얼굴은 단아하며 어깨에 닿을 듯 긴 귀는 목에 3줄로 새겨진 삼도(三道)와 잘 조화를 이루어 위엄을 자아낸다. 양 어깨에 걸쳐 입은 옷은 부드럽게 흘러내려 양쪽 무릎을 덮고 있는데, 주름은 팔과 다리의 끝부분에만 나타났을 뿐 대담하게 생략하고 단순화시켰다. 손은 오른손 검지를 왼손으로 감싸고 있는 모습으로 일반적인 비로자나불상과 비교하여 손의 위치가 바뀐 것을 알 수 있다. 엄숙한 얼굴 표정, 치마를 묶은 띠매듭, 왼쪽 어깨에 드리워진 U자형 옷자락, 단아한 얼굴, 장대한 체구 등은 조선 초기의 불상임을 알려주는 것으로 조선 철불상의 귀중한 예로 높이 평가된다. (문화재청 자료)

보광전 주련

報化非眞了妄緣 (보화비진료망연)   보신과 화신이 참이 아닌 망연된 인연인줄 요달(了達)하면
法身淸淨廣無邊 (법신청정광무변)   청정한 법신은 가이 없이 넓고 넓네
千江有水千江月 (천강유수천강월)   천갈래 강마다 물이 있다면 천강마다 달이 떠 오르고 
萬里無雲萬里天 (만리무운만리천)   만리 하늘에 구름이 없다면 청청 하늘은 만리에 뻗네

 

금륜전

 

치성광여래

 

 산신탱화

 

 나반존자

 

 명부전

 

 명부전 내부(지장여래 대신 조사상이 모셔짐)

 

 영산전

 

 영산전 내부

 

 남장사관음선원목각탱(南長寺觀音禪院木刻幀.보물  제923호)

탱화란 천이나 종이에 불화를 그려 족자나 액자형태로 만들어 거는 그림으로, 대개 사찰 전각 안의 본존불 뒤에 위치한다. 이 작품은 특이하게 나무를 깎아 만든 것으로, 관음전의 주존인 관음보살상 뒷편에 부조로 새겨져 있으며, 가로 184㎝, 세로 165㎝이다. 사각형의 판목 중앙에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네 보살이 배치되었고 그 주위로 2대 제자인 아난·가섭과 사천왕을 배열한 구도이다. 하단의 연꽃 줄기에서 나온 연꽃이 대좌를 이루어 본존불과 두 보살이 앉아있는 모습이다. 본존불은 두 손을 무릎에 올려놓고 엄지와 중지를 맞댄 손모양을 하고 있고 협시보살들은 손에 연꽃가지를 잡거나 합장한 모습이다. 불상들의 얼굴과 신체 등이 모두 네모난 형태로 비사실적 인체 표현이 드러나 있으며 이와 함께 두꺼운 옷에 간략화된 주름은 당대의 불상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이 목각후불탱은 목각탱을 회화적으로 표현한 17세기 작품을 대표하는 수준작으로 뛰어난 목조기술을 보여주고 있다.(문화재청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