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석사는 통일신라 효소왕 1년(692) 의상대사가 지금의 자리보다 서쪽에 신광사라 이름지어 세웠다. 그 뒤 고려 공민왕 10년(1361) 나옹대사가 지금 있는 자리로 옮겼다. 당시에 새로운 절터에서 큰 바위가 나왔다 하여 터닦는 다는 뜻을 가진 ‘선(禪)’자를 넣어 선석사라 했다. 영조 1년(1725) 서쪽 옛 터로 옮겼다가 순조 4년(1804) 지금 있는 자리로 다시 옮겨 현재에 이르고 있다. 절 경내에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명부전, 칠성각, 산왕각 등이 남아있다
선석사(사진 클릭하시면 원본 크기의 사진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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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석사대웅전(禪石寺大雄殿.문화재자료 제113호 (성주군).경북 성주군 월항면 인촌리 217)
이 전각은 월항면 인촌리의 선석산(742.4m)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선석사의 경내에 위치하고 있으며, 국가지정 문화재인 세종대왕자태실이 있는 태봉에서 약 200m 떨어진 곳에 있다. 선석사는 신라 효소왕(孝昭王) 1년(692)에 의상대사(義湘大師)에 의해 창건되었는데 처음에는 지금의 자리보다 서쪽에 건립되었으며 “신광사(神光寺)”라 하였다. 고려 공민왕(恭愍王) 10년(1361)에 나옹대사(懶翁大師) 혜근(惠勤)이 신광사의 주지로 부임한 뒤 절을 현재의 자리로 옮겼는데, 그때 새 절터를 닦던 중 큰 바위가 나왔다 하여 “선(禪)”자를 넣어 사찰의 이름을 선석사라 고쳤다 한다. 그 바위는 지금도 대웅전 앞뜰에 묻힌 채 머리 부분이 지상에 나와 있다. 임진왜란으로 전소된 후 숙종 10년(1684)에 은현(?玄), 혜묵(惠默), 나헌(懶軒)이 중창하였다. 영조 1년(1725)에 옛터로 옮겼다가 순조 4년(1804)에 동파(桐坡) 서윤대사(瑞允大師)가 지금의 자리로 다시 옮겨 현재에 이르고 있다. 문화재로 지정된 대웅전은 전체적으로 조선 후기적 수법을 잘 보여주고 있는 건축물이라 할 수 있으며, 정면 3칸, 측면 3칸의 규모이다. 기단은 장대석을2단 쌓고 그 위에 장대갑석을 돌렸는데, 전체 높이가 약 90㎝ 가량 되며, 자연석의 초석 위에 굵직한 원기둥을 세운형태로 되어 있다. 공포는 다포양식으로 되어 있고 맞배지붕이다. 선석사는 조선 초기에 근처에 세종대왕자태실이 조성되면서 태실의 수호사찰로서 유지된 듯 하며 영조로부터 어필(御筆)을 하사받기도 하였다. 현존건물은 대웅전을 비롯하여 명부전(冥府殿), 칠성각(七星閣), 정법료(正法寮), 산신각(山神閣), 요사(寮舍)가 있다. (성주군청 자료)
대웅전 내부
절터를 닦던 중 큰 바위가 나왔다 하여 “선(禪)”자를 넣어 사찰의 이름을 선석사라 고쳤다 한다. 그 바위는 지금도 대웅전 앞뜰에 묻힌 채 머리 부분이 지상에 나와 있다.
명부전
명부전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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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부전 벽화
명부전 벽화
칠성각
칠성탱화
나반존자
태실법당
산신각
산신탱화
성주선석사영산회괘불탱(星州 禪石寺 靈山會 掛佛幀.보물 제1608호)
1702년(숙종 28) 탁휘(卓輝)·법해(法海)·설잠(雪岑)·성징(性澄) 등이 제작된 괘불탱이다. 화면 중앙에 크게 묘사된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좌우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서있고, 화면의 상단에는 아난과 가섭, 2명의 제자가 합장한 모습으로 상반신만 표현되었다. 좌우협시는 본존불보다 한 발짝 앞서 겹쳐 표현하여 공간감과 입체감을 드러내고 있다. 본존 석가여래의 수인은 통상의 항마촉지인이나 설법인이 아닌 오른손을 어깨로 들어 연꽃가지를 들고 있다. 그림의 화기(畵記)에 “영산회도일부봉안(靈山會圖一部奉安)”이라고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이 도상은 선종의 염화시중과 조선시대에 성행한 선교합일(禪敎合一)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이해된다. 특히 이 작품은 현재까지 알려진 불화 중에서 염화시중(拈華示衆)의 내용을 표현한 불화 중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작품이다. 선석사 영산회괘불탱은 제작시기가 비교적 빠르고 연꽃을 든 석가여래 도상의 선구적 위치에 있다는 점, 이 그림을 모본으로 하여 예천 용문사 영산회괘불탱(1709년, 보물1445호)가 현존 한다는 점 등에서 불화도상의 계승을 살펴 볼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또한 색채감각이나 필선이 매우 세련되고 뛰어나 18세기 전반기를 대표하는 괘불화이다. (문화재청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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