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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성주

감응사

노촌魯村 2007. 5. 24. 21:35

 감응사 들어가는 오솔길

 감응사(경북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 영취산)

이 절은 지금부터 약 1200여년전 신라 40대 애장년 3년(802)에 채징이 왕명에 의하여 창건하였다. 전기에 의하면 태자가 심한 눈병으로 고생했으나 백약이 무효라, 왕비는 태자를 데리고 명산을 찾아 다니며 기도를 했다. 어느 날 아침 문 앞의 나무 위에 독수리가 나타났다. 그 독수리를 따라 이곳에 이르러 약수를 발견하여, 그 물로 눈을 씻고 마시니 태자의 눈병이 완치되었다. 애장왕은 이를 부처님의 은덕이라 생각하고 약수 앞에 절을 창건하고 감은사(후에 감응사로 개칭)라 하고, 독수리를 기려 영취산이라 명명하였다고 한다. 그 후 고려 때 1차 중창, 조선 숙종 때 재중창, 영조 28년(1752)에 이민수가 3차 중창, 1970년 4월에 주지 평타스님이 영선원 건립 1975년 10월 대웅전을 중창하였음, 지금도 법당 뒤에는 맑은 약수가 넘쳐 흐르며 영험 많은 기도 도량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부처님 오신 날 봉축 법요식의 탄생불

 감응사 대웅전

 대웅전의 불상

 대웅전 뒤편의 약수

 약수터의 절벽에 조각된 마애용왕상

 삼성각

 삼성각 내부의 칠성탱화

 삼성각 내부의 산신탱화

 삼성각 내부의 용왕탱화

 

 감응사의 연등과 지게(차가 들어가지 못하여 물건을 지게로 운반)

 

 

                                    감응사의 약수

영취산 중턱의 감응사는 약 1200년 전 신라 애장왕 3년(802) 보조국사 채증이 왕명으로 창건한 전통사찰이다. 전기에 의하면 애장왕이 늦게 아들을 얻었으나 날 때부터 심한 눈병으로 볼 수 없고 백약 또한 무효였다. 이에 명산을 찾아 기도하던 중 어느 날 꿈에 백발도인이 나타나 “내일 아침 문 앞에 있는 독수리를 따라 가면 약수가 있을 것인즉 그 약수로 왕자의 눈을 씻고 마시게 하면 눈병이 나을 것이다”했다. 이튿날 아침 과연 문 앞 나무 위에 독수리가 있었다. 날랜 군사를 시켜 쫓아가니 독수리가 이곳 감응사터까지 와서는 어디론지 사라졌다. 독수리를 놓친 군사는 계속 찾아 해매다 이곳 약수를 발견하고 이 약수를 떠다 왕자의 눈을 씻고 마시게 하니 병이 나았다. 이에 왕은 부처님의 은덕이라 생각하여 이 약수 앞에 절을 지어 ‘감은사(感恩寺)’라 하고 후에 ‘감응사(感應寺)’로 개칭했다. 이 약수는 절 뒤의 절벽 사이에서 나오는 물로 샘터를 ‘옥류정(玉流井)’이라 하며 지금도 그 물맛이 달고 차가와 약수로 이름 나있다. 산이름도 신령스러운 독수리란 뜻의 ‘영취산(靈鷲山)’이라 명했다. 감응사는 계속된 중수와 중건을 거쳐 숙종 때 재창건하고 영조 28년(1752) 이민수가 3창, 1970년 4월 주지였던 평타(平陀)스님이 신도들의 도움을 받아 대웅전, 영선원, 삼성각을 건립하여 지금에 이른다(경상북도:전설과 함께하는 경북관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