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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이치전적지 (梨峙배티재戰蹟地)

노촌魯村 2011. 10. 27. 07:30

忘戰必危

전쟁을 잊으면 반드시 위태롭다

 이치전적지 (梨峙戰蹟地.전라북도 기념물 제26호.전북 완주군 운주면 산북리 산12-1외 3필지 )

이치는 완주와 금산의 경계를 이루는 고개로,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 때 광주목사 권율(權慄)과 동복현감 황진(黃進)이 관군 1,500명과 함께 적장 고바야카와가 이끄는 부대를 격퇴함으로써 임진왜란의 첫 승리를 장식한 전적지이다. 이치전투는 이순신의 한산도대첩, 권율의 행주대첩과 함께 임진왜란의 3대 대첩으로 손꼽히고 있다.
이른 아침부터 시작되어 해질무렵까지 계속된 치열한 전투에서 우리보다 우세한 적을 대항하여 승리로 이끌 수 있었던 것은 장수들의 성실한 진두지휘와 향토병들의 불굴의 투지, 험한 지세를 이용한 철저한 대비, 차질없이 진행된 군수품 보급에 있었다.
이치전투는 거의 같은 시기에 벌어진 웅치전투와 더불어 왜적의 기세를 꺾어 전라도 땅을 침범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정유재란(1597) 때까지 7년 동안 군량보급과 병력보충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문화재청 자료)

황진(黃進) :  본관은 장수(長水). 자는 명보(明甫), 호는 아술당(蛾述堂). 황희(黃喜)의 5세손이며, 아버지는 증좌의정(贈左議政) 황윤공(黃允恭)이다.

 1576년(선조 9)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宣傳官)을 거쳐 1591년(선조 24) 조선통신사(朝鮮通信使) 황윤길(黃允吉)을 따라 일본에 다녀와 미구에 일본이 내침(來侵)할 것을 예언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壬辰倭亂)이 일어나자 동복현감(同福縣監)으로 근왕병(勤王兵)을 이끌고 북상하여 경기도 용인(龍仁)에서 패전하였다. 이후 전라북도 진안(鎭安)에서 왜적의 선봉장을 사살한 뒤 적군을 안덕원(安德院)에서 격퇴하고, 훈련원판관(訓練院判官)이 되어 이치(梨峙) 전투에서 적을 무찔렀다. 그 공으로 익산군수겸충청도조방장(益山郡守兼忠淸道助防將)에 오르고, 절도사(節度使) 선거이(宣居怡)를 따라 경기도 수원(水原)에서 싸웠다.
1593년(선조 26) 충청도병마절도사(忠淸道兵馬節度使)에 승진하여 패퇴하는 적을 추격하였고, 경상북도 상주(尙州)에 이르는 동안 연승(連勝)을 거두었다. 적의 대군이 진주성(晉州城)을 공략하자 창의사(倡義使) 김천일(金千鎰), 절도사 최경회(崔慶會)와 함께 성중에 들어가 9일 동안 분전하다 장렬하게 전사하였다.

 

 

 

      

      

  

      

     

이치(梨峙)

이치(梨峙)에서 본 대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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