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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고란사 (皐蘭寺)

노촌魯村 2011. 11. 17. 08:27

 고란사 (皐蘭寺.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98호.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689외 1필지)

 고란사(皐蘭寺)는 부여읍 쌍부리 부소산(扶蘇山) 북쪽 기슭에 백마강변에 자리하고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 마곡사의 말사이다. 고란사는 절 뒤쪽 암벽에 고란초가 기생하는데서 절 이름이 연유한다고 전해진다.
고란초는 양치류에 속하는 은화식물로서 이끼류의 일종이며, 제주도에서는 불로초라고 부르는 희귀식물이다.
절 뒤곁 바위 담벼락 밑에는 고란천(皐蘭泉), 혹은 고란수라는 약수가 나온다. 이 물은 백제시대에 궁녀가 물동이에 고란잎을 띄워서 궁궐 내로 운반하여 썼다는 전설이 어려있다. 그 만큼 고란초가 유명했다는 이야기인데, 아닌게 아니라 이곳은 백제 때는 대왕포(大王浦)라는 포구가 있어서 왕들과 신하들의 유희장소로 정자가 있었을 법한 곳이다.
이러한 명승지에 사찰이 건립된 것은 백제 멸망 이후일 것이며, 이 때문에 권세가들이 모여들어 이 고장의 목민관은 이들을 대접하기에 힘에 겨워 절이름이 한 때 ‘골란사’로 부르기도 하였다고 한다.
1959년 중건시 발견된 상량문에서는 1797년(정조 21)에 작성된 것인데, 이에 따르면 고란사가 백제의 고찰임을 밝히고 있지만 그러한 사실을 입증할 만한 자료는 찾아지지 않는다.

   

현재로서는 고려시대의 석불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이르러 창건된것으로 추정된다. 1028년(현종 19)에 백제의 멸망과 삼천궁녀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하여 절을 창건하였을 것이다. 그 뒤 1629년(인조 7)과 1797년(정조 21)에각각 중수되었다. 고란사의 조선 중엽의 모습은 당시의 문인 서경(西坰) 유근(柳根)의 시에서 엿볼 수 있다. 1900년에는 부여군 은산면 각대리에 있던 숭각사(崇角寺)의 건물을옮겨 중수하였으며 불상도 이곳으로 이운하여 봉안하였다

                  

고란사 약수

 절 뒤곁 바위 담벼락 밑에는 고란천(皐蘭泉), 혹은 고란수라는 약수가 나온다. 이 물은 백제시대에 궁녀가 물동이에 고란잎을 띄워서 궁궐 내로 운반하여 썼다는 전설이 어려있다.

                

 고란사에서 본 백마강

조룡대(釣龍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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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고란사(扶餘皐蘭寺)에서

 <沈尙鼎 . 해동시선 . 몽오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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覇國山河數十州(패국산하수십주)

패국의 산하 수십 고을을

公然坐遣定方收(공연좌견정방수)

속절없이 소정방이 거둬갔구나.

 

靑娥墮盡岩留跡(청아타진암류적)

아리따운 궁녀 떨어진 바위엔 흔적 남았고

白馬沈來浪殺頭(백마침래랑살두)

백마는 허망하게 머리 잘려 물에 던져졌지.

 

蘭寺雨聲聞戰伐(란사우성문전벌)

고란사 빗소리 적군의 함성인 양 들리고

蘇堤春色想風流(소제춘색상풍류)

소정방의 강둑 봄빛은 풍류를 연산케 하네.

 

憐渠歌舞樓臺地(련거가무루대지)

어여뻐라, 저들의 가무가 있던 누대는

不念吳宮草露秋(불념오궁초로추)

오궁의 가을 초로가 생각나지 않는가.

낙화암 옛 사진
고란사 옛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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