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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백마고지(白馬高地)

노촌魯村 2012. 6. 30. 17:42

 

 

백마고지/위령비와전적관

야트막한 395M의 야산을 두고 피아간 1만7000명의 사상자를 내고 수 없이 고지의 주인이 바뀌었다는 백마고지. 철원읍 북서쪽 약12km 지점인 휴전선 남쪽DMZ 내부에 있다. 심한 폭격으로 인해 온통 파괴되어 공중에서 보니 백마와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백마고지는 철원 효성 산의 한 기슭의 이름 없는 작은 고지 이었으나 역곡천 계곡 일대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곳으로 철원으로 이어지는 도로가 나있어 주보급로로 활용하기 좋은 장점으로 매우 중요한 거점이 되어 전투상황을 유리하게 위해 기득전 확보를 위해 치열한 전투를 실시했던 곳이다.백마고지 전투가 치열하게 된 것은 휴전회담의 유리한 고지를 얻기 위한 쟁탈전 이었다. 반복된 중공군의 대규모 공세는 오히려 국군과 유엔군에게 반격의 기회를 제공해왔던 결과다. 무리한 공격으로 중공군과 북한군은 치명적인 손실을 입어 부대정비를 할 시간은 벌고자 북한은 1951년 6월 25일 휴전 협상을 제의 하였으나 의견 대립으로 정체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었고 유엔군은 회담에서 유리고지를 점하기 위해 공세를 전개했으며 이는 정치적 측면도 있었지만은 들쑥날쑥한 전선을 바로잡겠다는 유엔군의 계산도 포함되었다. 이후 휴전회담은 재계와 반복을 하다 양측은 유리한 지점을 얻기 위한 2년간 끝없는 쟁탈전을 벌이게 된다. 백마고지 전투는 그 전투중의 일부이다.이 전투의 중요한 쟁점은 철의3각지대라고 불리는 철원 금화 평강을 지킬 수 있었고 동과서로부터 병력이 모일 수 있는 매우 중요한 고지이며 또한 이 고지를 선전함으로 인해 휴전협상에서 우위에 서게 됨으로 인핸 휴전 회담이 복격화 되면서 전선은 소강상태에 접어들었고 4년간의 걸친 6.25전쟁이 일단락되었다.특히 전투에 참가에 혁혁한 공을 세운 보병 9사단은 백마부대라는 이름으로 부르며 베트남 전에도 파병 되어 혁혁한 전과를 달성 한바있으며 특히 백마고지 사수를 위해 용감하게 싸우다 산화된 육군9사단 장병들은 넋을 추모하기위해 1990년5월3일에 전적비가 세워졌다. 또한 백마고지 주위에는 피의 500능선과 김일성 고지(고암산),오성산,저격능선,낙타고지,아이스크림고지 등 피어린 전투 상황을 짐작하는 각종 접전지가 모여 있다. 철의삼각지대 꼭지 점에 해당하는 평강고원 (북한지역)은 미군이 핵무기 가상표적으로 삼았던 곳이기도 하다.

 

 

 

 

 

 

 

 

백마의 얼 
                                                      <모윤숙>

풀섶에 누워 그날을 본다
하늘이 울리고 땅이 갈라지듯 적들이 몰려오는
저 산과 강에서
우리는 끓는 피로 용솟음 치며 넘어지려는 조국을 감쌌다.
이 한 몸 초개같이 받치려 숨찬 목소리로
다 - 같이 강물을 헤치고, 산을 부수며
달려오는 적들을 막았노라
수많은 적을 따라 소탕하고 조국의 얼로 내달려
떡갈나무 사이로 스며드는 원수의 고함을
눌러 버렸나니 쓰러지며 죽으면서도
다시 일어나 숨결을 돌리고 숨지려는 조국을 살리었노라
나의 조국. 영원한 땅이여 만세를 가도록
그 얼은 살았느니 . 지금도 그 때처럼 귀를 기울이고
저 몰려오는 적을 막고 있노라.
푸르러 푸르러 영원한 젊음
우리는 그 품에 안겨 안식하리라.
어머니 조국에 이 혼을 맡기며 후회 없이
더 강하게 앞으로 앞으로 달려가리라

 

 

 

 

 

 

 

 

 

 

 

 

    

자유의 종  

 

 

 

 

 

 

 

 

 

 

 

 

 

 

 

 

 

 

 

 

 

 

 

 

 

 

전선야곡

 

북한의 침략, 전쟁 6ㆍ25시리즈 - 6편 고지쟁탈전(피의능선. 백마고지전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