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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안동

의성김씨학봉종택(義城金氏鶴峰宗宅)

노촌魯村 2013. 11. 16. 18:06

 

 

의성김씨학봉종택(義城金氏鶴峰宗宅.경상북도  기념물 제112호.경북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 856) 

★ 조선 중기 문신 학봉 김성일(1538∼1593) 선생의 종가이다. 김성일은 선조 1년(1568) 과거에 급제하여 정언과 수찬 나주목사 등을 역임하였다. 임진왜란 때는 경상도 초유사로 관군과 의병을 화합시켜 의병의 전투력 향상에 큰 공을 세웠다. 퇴계의 제자로 뛰어난 성리학자이기도 한 그의 학문은 이후 영남학파의 학문 전통에 큰 영향을 미쳤다. 가옥은 一자형 안채와 사당, 문간채, 풍뢰헌, 운장각으로 구성되어 있다. 운장각은 유물의 보관과 전시를 위하여 세운 것으로 선생의 유품과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는 책과 옛 문서를 보관하고 있다. (출처: 문화재청)

 

★ 조선 선조 때의 명신이며 학자인 학봉 김성일 선생의 유물을 보관한 곳인 운장각은 선생께서 남기신 서적·물품·친필기록 제초고 및 선조전래의 전적·문서와 후손들의 유품 등 500여점의 보물을 영구히 보존코자 건립하였다.
- 규모
. 수량 : 5동 (3,458㎡)
- 시대구분
조선시대 (학봉종택은 원래 지금의 자리에 있었으나 지대가 낮아 침수가 자주 된다며 학봉의 8세손 광찬(光燦)이 1762년(영조 38) 이곳에서 100여미터 떨어진 현재 소계서당(邵溪書堂)이 있는 자리에 옮겨 살고 종택이 있던 자리에는 소계서당을 지었다 한다. 그러나 1964년 종택을 다시 원래의 자리인 현위치로 이건)
- 형태/방법/업적
학봉은 류성룡(柳成龍)과 더불어 퇴계의 고제(高弟)로 성리학에 조예가 깊었으며, 27세에 사마시, 1568년(선조 1) 중광문과 병과에 합격한 이후 여러 관직을 역임하다가 1577년(선조 10)에는 사은사의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1590년(선조 23)에는 통신부사로 일본에 파견되기도 하였으나 임란때에 왜적과의 전투를 독려하다가 병사하였다. 
- 문화재 지정여부
. 경상북도기념물 112호(1995년 12월 1일)
. 학봉김성일종손가소장전적 : 보물 제 905호(1987년 3월 7일)
. 학봉김성일종손가소장고문서 :보물 제 906호(1987년 3월 7일)
- 관련 인물 및 유적
학봉(鶴峰) 김성일(金誠一) : 운장각에는 선생이 남긴 서적, 유품, 친필기록, 고문서 56종 261점(보물 제905호), 제초고 및 선조 전래의 전적문서(보물 제906호)와 후손들의 유품 등 500여점의 유적. (출처 : 안동시청)

 

 

사당

운장각

 

학봉종택 내에 위치한 운장각은 유물을 보관․전시한 유물관이다. 운장이란 말은 ‘저 넓디 넓은 은하수, 하늘에서 빛나고 있네’라는 시경의 한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운장각에서 보존하고 있는 문서는 보물 905호와 906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그 중 보물 제 905호는 학봉김성일종손가소장전적(鶴峰金誠一宗孫家所藏典籍)으로 56종 261책이 지정되어 있다.
지정된 전적을 보면 임진왜란 이전에 간행된 『국조오례의』, 『삼강행실도』등 28종 156책이 지정되었고, 필사본 중에서는 『퇴계사전초』, 『북정일기』등 27종 85책이 지정되었다.
이 전적류들은 임진왜란 이전의 활자체를 연구하는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임진왜란사를 연구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또한 각종 고문서 중에서 보물 제 906호로 지정된 학봉김성일종가소장고문서는 17종 242점이 일괄 지정되어 있다. 종손가에서 보관하고 있는 것은 임금이 신하에게 내린 교지, 교서, 유서, 재산분배기록인 분재기 등 10,000여 점이나 되지만, 그 가운데 서간문과 제사에 쓰인 제문은 제외되었다. 지정된 문서를 보면 교서 1점, 교지 및 첩지 59점, 첩 4점, 시권 7점 등이다.   

 

 

 

 

                 

 

 

1577년 학봉이 중국에 사신으로 가서 가져온 우리나라 최초의 안경이다, 안경알은 옥돌이며, 안경테는 거북등뼈로 만들었다.

 

안경(眼鏡) :  시력이 나쁜 눈을 잘 보이게 하기 위해서나 바람, 먼지, 강한 햇빛 따위를 막기 위하여 눈에 쓰는 물건. 초창기 안경은 수정을 깎아서 만들었다. 중국에서 처음 만들어졌다고도 하고 유럽에서 만들어졌다고도 하며 중국에서 만든 것을 유럽에서 개량했다는 등 유래는 여러 설이 존재하나 분명한 것은 꽤나 오랜 역사를 가진 물건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정조가 애용했다고도 전해진다.

임진왜란 전에도 이미 몇몇 선비들이 착용한 것으로 보인다. 임진왜란 때의 인물인 김성일의 안경이 유물로 전해지고 있다. 이때에는 안경다리가 없어서 렌즈 양 쪽에 끈을 달아 착용했다.(출처: 엔하위키 미러)